그가 오랜 동반자였던 교복을 벗고 제 나이에 맞는 옷을 입었다. 시대적 배경도 1970년대로 훌쩍 넘어갔다.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권력층은 가뜩이나 부른 배를 더 채워가고, 서민들은 그나마 있던 집 한 칸마저 뺏기고 거리로 나앉던 때다. 영화 ‘강남 1970’(감독 유하ㆍ제작 ㈜모베라픽처스,쇼박스㈜미디어플렉스)에서 이민호는 제 몸 하나 누일 곳 없어 거리를 떠도는 모습부터, ‘땅’에 대한 욕망으로 불타는 모습까지 폭넓은 연기를 펼친다. 그간 연기했던 작품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다양한 얼굴을 이 한 작품에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쏟아지는 시나리오 마다한 이유는…”=이민호는 ‘꽃보다 남자’(2009)의 성공 이후 영화 시나리오도 숱하게 받았지만 지금까지 고사했다. 대신 드라마 몇 편을 더 했다. 그 속내는 이랬다.
“개인적으로 남자 성향을 더 많이 가진 편이예요. ‘상속자들’ 할 때 오글거리는 대사가 많아서, 메이킹필름을 보면 ‘으’ 하고 몸서리치는 리액션도 하고 그래요. 영화라는 장르는 제가 좀 더 성숙해서 한 영화를 책임질 수 있을 때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27살 때 유하 감독님을 만났고, 다행히 ‘상속자들’을 다 찍을 동안 기다려 주시겠다고 하셨죠. 주위에서 영화를 한 번 하면 계속 하고 싶다고들 하고, 저도 배우로서 욕심나는 건 사실이예요. 하지만 제가 드라마 황금기의 수혜를 입은 배우로서 드라마에서 할 역할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트렌디한 드라마로 필모그래피를 쌓다보니, 그간 배우로서의 진면목을 대중에 각인시키진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점이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언론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지금까지 기다리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며 “이미지를 생각했다면 로맨틱 코미디나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오락영화를 택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배우로서 색깔을 가져야 될 시기라고 생각했고 그동안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도전해 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답했다.

▶“종대 연기, 평범한 20대 입장에서 생각했죠”= 유하 감독은 남자 ‘스타’들을 ‘배우’로 성장시키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권상우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였고, ‘비열한 거리’는 조인성이 연기파 배우로 성장하는 데 디딤돌이 됐다. 배우로서의 성장을 갈구하는 이민호 역시 유하 감독의 작품을 선택했다.
“어떻게 하다보니 유하 감독의 영화를 그 나이 대에 맞게 봐왔어요. ‘말죽거리 잔혹사’ 때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일탈에 대해 꿈꿀 때라 속시원함을 느꼈죠. 20대에 본 ‘비열한 거리’는 남자들의 의리나 배신을 다루니까 재미있었죠. 남자 배우들이라면 대체로 유하 감독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어요. 저 역시 영화를 고민하던 시기에 운 좋게 감독님을 만난 거죠.”
이민호가 연기한 ‘종대’는 극중 외모적인 변화도 많지만 내적으로도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다. 가난의 서글픔부터 친형처럼 지낸 용기(김래원 분)를 향한 애정과 배신감, 땅에 대한 욕망 등 다양한 감정을 오가며 번민한다. 촬영에 앞서 유하 감독은 이민호에게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함’을 강조했다. 그 스스로도 캐릭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누아르라는 생각보다는 드라마 만을 생각했다”며 “종대는 따뜻한 밥 한끼와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집 등 소박한 삶을 꿈꾸는 청년이다. 내가 20대인 만큼 보통의 20대들이 겪는 미래에 대한 부담감을 떠올리려고 애썼다”고 설명했다.

▶“정말 거지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아쉬워요”=이민호는 낙관적이었다. 촬영 당시 어려웠던 점을 물으면 으레 앓는 소리가 돌아오는데, 이민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제가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 선배보단 편했던 것 같다”며 “유하 감독 작품 중에 ‘강남 1970’이 드라마가 가장 강하다. ‘비열한 거리’는 조폭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캐릭터의 할 일이 많았다면, 종대는 상황 속에서 힘을 받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좀 더 좋은 조건에서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왕년에 꽃미남 ‘F4’였던 그이지만 이번 작품에선 ‘넝마주이’(헌 옷이나 폐품 등을 주워 모으는 일이나 그런 일을 하는 사람) 변신도 주저 없었다. 검댕 묻힌 얼굴에 산발한 머리로 잡동사니를 주우러 다니고, 누군가 버린 듯한 음식을 주워먹기도 한다. 그는 “저도 제 모습에 놀랐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이내 “최대한 표현한다고 했는데, 정말 거지처럼 보이지는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욕심을 드러냈다.
소위 ‘조각같은 외모’가 연기에 걸림돌이 될 때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좀 튀게 생기긴 한 것 같다”고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이미지로 변신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외모적인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고 그 경계에 있다”며 “외모 때문에 배우로서 아쉽거나 짜증이 나거나 그런 것은 없다”고 웃어 보였다.

끝으로 이민호는 ‘한류스타’, ‘톱스타’가 아닌, 스물아홉 청년 이민호로서의 바람도 내비쳤다.
“작년에 한창 바쁠 때는 좋은 일이 생겨도 많이 기쁘지 않고, 감정이 일직선을 달리는 것 같았어요. 계속 이렇게 산다면 감정의 폭을 표현하는 입장에서 치명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원래는 집에서 게임하며 시간을 보내는 스타일인데, 이젠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생활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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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