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동떨어진 발자취 같지만 모두가 ‘1970년대’를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다. 올해 첫 천만 기록을 세운 ‘국제시장’은 우리시대 아버지의 노고를 재조명하며 70년대를 불러왔다. ‘강남 1970’과 ‘쎄시봉’은 아예 70년대를 주 무대 삼았다. 같은 시대지만 극의 분위기는 극과 극이다. 전자는 인물들의 절박함과 탐욕, 배신 등을 그렸고, 후자는 청춘의 사랑과 낭만, 그리움 등을 담는다. 이는 70년대가 곧 정의와 불의, 감성과 이성, 낭만과 삭막함이 뒤섞인 시대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70년대, 같은 시대, 다른 풍경=‘국제시장’의 1970년대는 우리시대 아버지들의 눈물과 피땀으로 얼룩진 시대였다. 덕수는 동생들 뒷바라지에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든다. 60년대엔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독일 광산으로 파견 근무를 떠난다. 돌아온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70년대엔 전쟁 중인 베트남에 기술 근로자로 파견돼 외화벌이에 나선다. 덕수에게 그 시대는 욕망도 낭만도 품을 엄두를 못 내던,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한 때였다. 당시 어지러운 정치 상황은 등장하지 않는다.
‘강남 1970’의 1970년대는 부동산 투기가 횡행하기 시작한 ‘욕망의 시대’였다. 영화는 당시 영등포의 동쪽이라고 ‘영동’으로 불리던 황무지땅 강남이, 어떻게 서울의 금싸라기 땅이 됐는 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 과정은 불의와 꼼수로 얼룩져 있다. 당시 선거자금이 궁했던 일부 정치인들은 ‘남서울개발계획’ 정보를 미리 접한 뒤, 강남 거주민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비싸게 되팔았다. 이후 개발 과정에서 지역 원주민들은 거리로 나앉았고, 강남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가진 자들에게 욕망의 시대인 동시에, 가지지 못한 자들에겐 야만의 시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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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를 무대 삼은 한국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시장’, ‘강남 1970’, ‘쎄시봉’은 1970년 대를 가져오면서도 각각 베트남 파견근로, 부동산 투기 붐, 포크 열풍 등 저마다 다른 소재를 녹여냈다. |
‘쎄시봉’의 1970년대는 그럼에도 낭만이 있었다고 말한다.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쎄시봉’은 먹고 살 고민에 바쁜 청년에게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품은 청년에게도 열린 공간이었다.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조영남 등 걸출한 포크 가수들이 이 곳에서 배출됐고,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웨딩케익’ 등의 명곡 또한 그 시절 탄생했다. 아울러 ‘쎄시봉’은 청춘들 사이에 묘한 감정이 싹트는 곳이기도 했다.
▶왜 ‘1970년대’에 주목하나=최근 ‘복고 열풍’의 진원지를 찾는다면,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를 꼽을 수 있다. 2013년을 뒤흔든 ‘응사’ 열풍은 서태지의 ‘너에게’를 비롯한 90년대 인기 가요를 20여 년 만에 음원 차트로 불러냈다. 가요계에서도 최근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를 통해 90년대 인기 가수들과 그들의 히트곡이 재조명 받았다. 극장가에서도 ‘오늘의 연애’를 제외한 세 편의 한국영화가 과거를 무대로 한다. 특히 영화계가 ‘1970년대’에 유독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1970년대는 ‘고도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던 시절이었다. 공익이나 대의를 이유로 절차가 무시되고, 개인의 인권과 노동권이 짓밟히기도 했다. 물론 이같은 사회 현실을 스크린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제작된 영화의 90% 이상이 검열에서 ‘칼질’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극장에 걸린 영화는 주로 사극이나 순수 문학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다. 정치적 암흑기였던 유신시대를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70년대를 찬찬히 되짚어볼 여유가 생겼다. 반독재 정서가 꿈틀대고,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고, 낭만과 저항정신을 담은 포크음악이 유행하는 등 스크린으로 옮길 소재는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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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를 무대 삼은 한국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시장’, ‘강남 1970’, ‘쎄시봉’은 1970년 대를 가져오면서도 각각 베트남 파견근로, 부동산 투기 붐, 포크 열풍 등 저마다 다른 소재를 녹여냈다. |
‘국제시장’, ‘히말라야’의 제작을 맡은 JK필름의 길영민 대표는 “결국은 공감가는 드라마를 찾다보니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것 같다”며 “어릴 때부터 영화를 많이 접하고 문화를 소비하는 데 익숙한 30~40대를 겨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70~80년대를 조명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1970년대 배경 영화들이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응사’나 ‘토토가’가는 30~40대 뿐 아니라 10~20대 시청자까지 TV 앞으로 불러모았다. 극장가의 ‘큰 손’인 20대 관객은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겪은 고난에 공감하며 ‘국제시장’의 1000만 행렬에 숫자를 보탰다. 1970년대 강남의 옛 모습과 당시를 주름 잡았던 히트곡 역시 젊은 관객층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Back to the past!’=‘복고 열풍’이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극장가에도 이 흐름에 부합하는 시대극이 꾸준히 등장할 전망이다. 아울러 중장년 관객층의 티켓 파워가 커지면서 이들을 겨냥한 시대물도 더욱 자주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콕 찍어 1970년대는 아니지만 올해 개봉 예정작의 상당 수가 과거를 무대 삼았다.
우선 엄홍길 대장이 후배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떠난 여정을 그린 ‘히말라야’(감독 이석훈)는 200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정우는 ‘응답하라 1994’, ‘쎄시봉’에 이어 ‘히말라야’에서도 과거로 돌아가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복고’의 아이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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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를 무대 삼은 한국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시장’, ‘강남 1970’, ‘쎄시봉’은 1970년 대를 가져오면서도 각각 베트남 파견근로, 부동산 투기 붐, 포크 열풍 등 저마다 다른 소재를 녹여냈다. |
1980년대와 현재가 교차하는 형식의 ‘시간이탈자’(감독 곽재용)는 중년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950년대에 시계를 맞춘 영화는 현재 상영 중인 ‘허삼관’(감독 하정우)과 개봉 예정인 ‘서부전선’(감독 천성일) 등이다.
친일파 암살 작전을 그린 ‘암살’(감독 최동훈)과 막대한 유산 상속자 아가씨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아가씨’(감독 박찬욱), 경성의 요양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물 ‘소녀’(감독 이해영) 등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가 배경이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감독 김석윤), ‘사도’(감독 이준익), ‘도리화가’(감독 이종필), ‘순수의 시대’(감독 안상훈) 등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응사’, ‘토토가’ 등으로 불 붙은 복고 열풍이 영화 쪽에서 ‘쎄시봉’으로 이어진다면, 향후 1970-80년대 향수를 겨냥한 영화들이 더 많이 기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