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 기자의 채널고정]시시껄렁한 ‘썰’은 가라…‘좁고 깊은 ’떼토크’ 전성시대

‘한우물 판다’집중형
연예인 신변잡기에 식상한 시청자들
‘집단토크’형식의 참신한 프로에 쏠려
하나의 주제에 집중, 깊이있게 접근

‘토크의 진화’융합형
새로운 장치 통해 융·복합형 예능 창조
퀴즈·요리 등 통해 각자의 캐릭터 부각
‘누구’보다 ‘무엇을·어떻게·왜’가 중요

‘말의 홍수’ 시대다. 어디에서나 정보를 구할 수 있는 때에 시청자는 너무 오랜 시간 ‘같은 말’만 들었다. 아무리 채널을 돌려봐도 연예인들은 출연작 홍보에 급급했고, 그들의 사생활은 저절로 줄줄 외울 수준이었다. 지상파 토크 프로그램들이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만을 끈질기게 고집할 때, 변방의 반격이 시작됐다. 소위 ‘떼토크’(집단토크) 형식으로 방송가에 치고 들어와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중견 연예인들과 스타를 꿈꾸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해 세분화되고 특화된 소재를 다뤘다. 건강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껏 장수 중인 JTBC ‘닥터의 승부’(2012) 등이 그 시작이었다.

지난 몇 해 사이 방송가 사람들의 용어로 ‘좁고 깊은’ 스튜디오 토크가 부활했다. 리얼 버라이어티와 관찰예능이 대세인 때에 말 많은 방송은 피곤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시청자는 다만 “두서없이 흐르는 연예인들의 사생활 토크에 싫증이 났을 뿐 취향별로 토크쇼를 골라보게”(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됐다. 단지 “플랫폼의 프리미엄을 이용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던 지상파 방송사들이 콘텐츠가 아닌 연예인의 이름값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 시절이 길었던 탓”(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에 ‘토크쇼의 몰락’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토크 프로그램은 습관성이 강해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보게 만드는 저력”(정형진 CJ E&M 방송콘텐츠 전략담당국장)이 있다. 토크의 변화와 진화가 시작된 지점이다.


천편일률적이었던 연예인 토크쇼는 한 우물을 파기 시작하며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최근 방송가에서 주목받는 토크 프로그램의 공통점이다.

성 담론에 집중한 JTBC ‘마녀사냥’, 정치와 연예 평론을 겸하는 ‘썰전’이 2012년 두각을 드러냈다면 현재의 ‘한 우물형 토크쇼’는 아이템을 보다 세분화했다. 매회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외국인들이 전하는 그들의 문화를 통해 우리와의 차이점(JTBC 비정상회담)을 발견하고, 한 가지 음식을 정해놓고 그 유래와 요리법, 맛집 탐색의 기쁨(tvN 수요미식회)을 나누는 데까지 확장됐다. 누구라도 배워왔던 역사의 한 장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스토리텔링하는 방식(KBS2 역사저널 그날)은 훌륭하고 흥미로운 역사교과서가 된다. 이 프로그램들이 오로지 하나의 주제에 집중, 깊이 있는 접근으로 안방을 찾는 대표적인 ‘좁고 깊은’ 토크쇼다.

정덕현 평론가는 “지상파 토크쇼의 위기는 형식이 아닌 같은 소재를 담아냈던 데에서 왔다. 최근의 토크쇼는 연예인의 이야기를 빼버리고 특화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새로운 집단을 끌어들였다”며 “토크쇼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습득이다. 차별화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토크쇼를 통해 시청자들의 기본적인 니즈가 해소됐다”고 분석했다. 

토크쇼의 변화 과정 중 흥미로운 부분은 토크의 묘미를 살릴 새로운 장치를 통해 융ㆍ복합형 예능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와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대표적이다. 두 프로그램은 토크쇼를 기반으로 각각 퀴즈와 요리를 섞으며 심심한 스튜디오형 예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뇌섹시대-문제적 남자’는 머리 좋고 스펙 뛰어난 남자 연예인들이 출연해 상위 0.01%만이 풀 수 있다는 문제 혹은 삼성전자 면접이나 항공사 입사 문제 등의 정답을 맞추기 위해 혈안이 된다. 주입식 교육의 총아들에게 내놓는 문제들은 독창적인 매력을 자랑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비단 퀴즈에만 집중하는 쇼는 아니다. 토크쇼를 바탕한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퀴즈라는 장치를 통해 각자의 캐릭터를 부각시킨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쿡방시대’의 도래와 함께 요리가 두드러져 보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애초의 출발 자체가 ‘요리’는 아니었다. 성희성 PD는 “토크쇼의 세트인 T자형 테이블을 활용해 요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을 통해 나오는 연예인들의 사는 이야기가 요리와 만난 포맷”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셰프가 만드는 요리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레시피)를 제공하니 시청자들의 욕구가 충족된다.

방송관계자들은 새로운 방식의 토크쇼의 출연을 통해 ‘어떤 소재를 어떻게 확장할 것이냐’가 ‘성공키워드’라고 주목한다. 더이상 ‘누구(WHO)’, 즉 톱스타의 입이 중요치 않은 때가 됐으며, 이젠 무엇(WHAT)을 어떻게(HOW) 다루느냐, 그런데 이것을 왜(WHY)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한 때가 됐다는 것이다.

정형진 국장은 “요즘의 토크쇼는 사람들이 알고 싶고,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들려줄 것인지가 성공의 관건이 됐다”며 “누가 출연하느냐 보다 설득력이 있는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유용한 정보를 요구하고,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사족이라 여기는 진화한 시청자들과 만나기 위해선 지적인 캐릭터, 즉 자기만의 정보와 노하우를 전달할 수 있는 출연자가 필요하게 됐다”며 이는 “지상파를 위주로 한 TV콘텐츠가 톱스타 섭외에만 집착하다 불거지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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