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1000만 감독’ 왕관을 쓰게 된 류승완(42) 감독은 예상 외로 차분했다. “기록 경쟁을 하려고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닌데, 숫자 얘기가 자꾸 나오다보니 불편함이 있다”고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그는 관객 수보다는 ‘영화를 보고 통쾌했다’, ‘극장을 나서는데 현실이 답답했다’ 등의 반응에 더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베테랑’의 흥행은 사법 정의에 대한 관심의 표명일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흘러봐야 알겠지만, 현실과 거리가 멀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권력을 상대로 저항하고 시원하게 싸운 것에 대한 쾌감도 있겠죠. 관객들에게 현실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대기업 하청업체 소속인 화물차 운전기사가 추락 사고로 중태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광역수사대의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은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가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눈치챈다. 서도철은 그의 악행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달콤한 회유는 물론,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까지 마주한다. 그저 ‘미안하다’는 한 마디면 될 일을, 갖은 위력을 동원해 무마하려는 재력가들의 행태에 서도철은 분노한다. 그와 함께 공분하던 관객들은, 조태오를 마침내 법의 심판대에 세운 서도철의 집념에 환호한다.
물론, 현실이라면 조태오가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세상에 나올 것이 뻔하다. 그 때문에 일각에선 조태오가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만으론 ‘반쪽짜리 응징극’에 그친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완전히 정의가 구현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결말은 사실 류승완 감독이 의도였다. 서도철의 역할은 조태오를 체포해 심판대에 세우는 것까지고, 그 다음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불합리한 현실에 나서긴 힘들지만,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 만으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현실을) 포기하고 외면하는 순간 또 다른 패배를 경험할 수 밖에 없어요. ‘니들이 어디까지 하는지 보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쁜 짓하는 인간들을 적어도 ‘쫄게’ 만들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베테랑’이라는 제목이 숙련된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거죠.”
‘베테랑’은 조태오를 단순히 일탈적 개인이 아닌, 주위의 방관과 동조 속에 만들어진 악인으로 그린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조 회장(송영창 분)은 아들 조태오가 어떤 인간으로 성장하느냐보다, 그가 일으킨 분란을 수습해 성공적으로 권력 승계를 이루는 데만 관심이 있다. 조태오의 오른팔인 최 상무(유해진 분)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를 완벽하게 보필해 자신의 야욕을 이루고자 한다. ‘뒷일을 봐주겠다’는 조 회장의 약속에 조태오의 죄를 뒤집어쓰기까지 한다. 결국 조태오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인 셈이다.
“조태오를 보면 자라온 환경을 짐작할 수 있죠. 어린 시절부터 잘못했을 때 혼나보지 않고, 책임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가되고…. 실제 사회에서 그런 인물이 거대 조직을 이끌도록 권력 승계가 이뤄지고, 준비가 안된 사람들이 그 위치에서 권력을 행사하잖아요. 그들이 벌받지 않고 활개치는 가운데, 사회도 천천히 함께 몰락하고 있다는 위험성이 영화를 통해 전달되길 바랐어요.”

류승완 감독은 조태오가 패배하는 결말이, 평범한 다수들에게 작은 승리감이나마 안겨줄 수 있길 원했다. 동시에 가난은 분명히 불편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돈’이란 것에 삶의 가치를 저당잡힐 수 없다는 신념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희망이 집약된 것이, 의식을 찾지 못하던 운전기사의 회복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의 결말은 우리가 지지 않는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어요. 더 나아가 한 개인이 깨어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배 기사를 둘러싼 온 세상이 깨어나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요. 탈무드에 이런 말이 나와요.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게 세상을 구원하는 것과 같다’고. 모두가 바쁘고 힘들다 보니,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이들에게 관심을 못 주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죠. 한 사람을 응원하고 따뜻한 시선을 주는 것 만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ham@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