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②]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경고, 이미 늦었다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그래서, 누가 죽인 거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 중 절반은 어리둥절하며 수군댈 수도 있다. 선과 악, 믿음과 불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면서 만들어내는 156분의 이야기가 관객들을 완전히 홀려 버린다. 영화가 끝나면 눈을 가리고 본 장면들 때문에 줄거리를 다 이해하진 못했더라도, ‘대단한 영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이다.

줄곧 비가 내리고 음습한 기운이 가득한 마을 곡성에 동기를 알 수 없는 살인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한다. 일가족을 모두 죽인 가장이 피칠갑된 채 눈이 하얗게 뒤집혀 발견되는가 하면, 귀신에 홀린 듯 비 오는 날 ‘전라’로 돌아다니던 여자도 가족들을 모조리 죽인다.

이 모든 기이한 일들이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마을에 온 이후 벌어졌다고 의심하게 된 경찰 종구(곽도원)는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불쑥 나타난 여인 무명(천우희)는 외지인이 사람들을 죽였다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던진다. 


사건에 점점 다가가던 종구는 딸 효진(김환희)의 온몸에 수포가 생기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등 사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자 다급해진다. 아내(장소연)와 장모의 권유로 박수무당 일광(황정민)을 불러 굿을 해보지만 딸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한국의 토속신앙과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적인 색채와 초자연적인 오컬트, 좀비 장르까지 다양한 요소를 섞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묘한 공포 분위기가 관객을 압도하는 이유다. 나홍진 감독은 이 모든 것들을 기가 막히게 한 영화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시작하자마자 스크린 위에 새겨진 성경 속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장37절)”라는 구절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심오한 메시지다.

영화는 초반 유유한 강가에서 낚싯바늘에 미끼를 꿰는 사람의 모습을 비추며 주제를 단박에 드러낸다. “불행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다”는 것이다.

3일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나홍진 감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도대체 어떤 연유로 피해를 입게 된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며 “길거리에서 우연히 가해자를 만난 것 이외에도 뭔가 있지 않겠나, 그 원인을 찾고 싶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불행은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어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것과 아주 무관한 이유로 피해자를 찾아가는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나 감독의 전작 ‘황해’(2010)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배우 곽도원이 ‘곡성’에서는 원톱 주연으로 변신했다.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겁 많고 소심하지만 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범인을 찾는 부성애 연기를 뽐냈다. ‘1000만 보증수표’ 황정민은 영화 시작 1시간20분여 뒤에나 등장하지만 영화 전체를 흔드는 남다른 무게감이다. 천우희도 사건의 키를 쥔 오묘한 여인으로 분했다.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은 미스터리한 인물인 외지인을 오싹하게 표현해 긴장감을 높였다. 종구의 딸 효진 역의 아역배우 김환희도 귀신에 씌인 소름끼치는 연기를 완성했다.

‘곡성’은 11일부터 진행되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칸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예술성은 물론 상업성, 장르적 특성이 강한 작품을 엄선해 매년 5편 내외의 영화를 비경쟁부문에 초청하고 있어 ‘곡성’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진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세션 초청(2008), ‘황해’의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2011)에 이어 세 번째 칸 행(行)이다.

한 번 봐서는 완전한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영화에 숨겨진 메시지나 복선을 알고 싶다면 두 번 관람을 권한다. ‘15세 관람가’지만 쫄깃한 긴장감과 ‘피칠갑’은 19금 영화 못지않다.

12일 개봉. 15세 관람가. 156분.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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