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관계자들이 휴식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가운데 간호사 등 보건의료 노동자마저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 불편을 고려해 파업 개시를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간호사, 의료기사 등이 속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이달 19∼23일 61개 병원 사업장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찬성률 91%로 총파업을 가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신청서를 제출해 현재 조정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조정에 실패하면 투표 결과에 따라 오는 29일 오전 7시부터 동시 파업에 들어간다.
61개 병원이 이번 쟁의행위 투표에 참여했다. 국립중앙의료원, 한국원자력의학원, 경기도의료원 등 공공병원 31곳과 강동경희대병원, 고려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등 민간병원 30곳이다.
다만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주요 대형병원 노조는 이번 파업에 불참한다. 빅5 병원 중 보건의료노조에 속한 병원은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이지만 이들 두 곳은 노동쟁의 조정신청 대상 사업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보건의료노조는 파업시에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업무에는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우려는 크다. 의료현장은 지난 2월 전공의들의 집단이탈 이후 발생한 인력 공백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최근 온열질환 급증과 코로나19 유행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응급실은 인력 부족 등으로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진료 제한 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의료노조가 파업하게 되면 기존 인력의 업무 부담은 가중된다. 환자 불편 역시 커질 수 밖에 없다.
간호사들은 그간 전공의들의 공백을 상당 부분 메워왔다. 하지만 이들이 파업에 참여할 경우 의료현장에서 체감하는 영향력은 클 것으로 의료계는 예상하고 있다.
각 병원은 파업이 예고된 오는 29일 전까지 지속해서 노조와의 합의를 시도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집단이탈 후 경영 사정이 좋지 않은 터라 이들의 요구를 완전히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현재 보건의료노조의 요구사항은 ▷ 조속한 진료 정상화 ▷ 불법의료 근절과 업무 범위 명확화 ▷ 주4일제 시범사업 실시 ▷ 간접고용 문제 해결 ▷ 총액 대비 6.4%의 임금 인상 등이다.
정부는 필수진료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이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제60차 회의를 열고 보건의료노조 파업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조규홍 본부장은 “노조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전공의 이탈 상황에서 파업하게 될 경우 환자와 국민의 불안과 고통을 생각해, 파업과 같은 집단행동보다는 사용자와의 적극적인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또 “전공의 이탈이 6개월째 접어들고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의료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하고 계신 보건의료인 여러분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간호사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고, 보건의료인의 처우개선을 위한 정부 대책을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노조 파업 시 응급환자의 차질 없는 진료를 위해 응급센터 등의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또 파업 미참여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상진료를 실시할 예정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를 중심으로 의료기사, 요양보호사 등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가입한 산별노조다. 2021년 이후 매년 노동쟁의조정 신청을 했고, 지난해는 19년 만에 총파업을 단행했다. 지난해의 경우 147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노동쟁의조정신청을 했다. 파업에는 140개 사업장에서 4만5000명이 참여했다. 당시에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업무 인력은 현장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