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권제인 기자] 정부가 오는 4일 고려아연이 보유한 전구체 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심사한다. 심사 당일 최종 판정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어 그 결과에 따라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의 경영권 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된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산업부는 오는 4일 오후 모처에서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를 열고 고려아연이 자사 보유 기술에 대해 신청한 국가첨단전략기술 및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 안건을 심의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문위는 당일 의사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판정을 내리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추후에 다시 위원회를 열어 논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 보유 기술이 복잡한 기술이 아니어서 심사 당일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달 24일 자사의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판정해달라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고려아연이 산업부에 판정을 신청한 기술은 ‘리튬이차전지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재의 양극 활물질 전구체 설계, 제조 및 공정 기술’이다. 고려아연은 이 기술이 전체 공정 시간 단축, 공정 비용 절감, 라인 편성 효율 개선 등을 통해 전구체 생산성을 높이고 우수한 품질의 전구체 제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은 그동안 중국에 전구체를 비롯한 양극재 소재를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왔는데, 고려아연은 국내에서 하이니켈 전구체 대량 양산을 준비 중이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 보장 및 국민 경제 발전에 중대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규정해 특별 관리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조선, 원자력 등 분야의 70여건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정부 예산이 투입된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인수·합병(M&A) 등 방식으로 외국 기업에 매각될 때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정부 예산이 들어가지 않은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도 정부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인수 금지 또는 원상회복 등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이미 정부가 발주한 ‘2024년도 소재부품 기술개발 사업’ 관련 과제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10개 산학연 기관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정부가 183억6000만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한다.
고려아연 보유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판정 여부가 이번 경영권 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MBK파트너스는 자사를 ‘한국 토종 사모펀드’로 규정하면서 일각에서 자신들을 ‘중국계 자본’으로 ‘마타도어(흑색선전)’하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MBK가 고려아연 공개 매수에 활용되는 바이아웃6호 펀드서 중국계 자본 비중은 5% 안팎이다.
다만, MBK가 만일 고려아연 인수에 성공한 뒤 중국 등 해외로 재매각을 해 이익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MBK는 중국 매각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고려아연은 매각 외에도 핵심기술 판매·공유 등을 통해 고려아연의 핵심 자산을 빼가거나 수익화할 방안이 많다는 점을 MBK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중 부회장(최고기술책임자·CTO)은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에서 “투자 회사들이 돈만 놓고 보면 고려아연에서 팔아먹을 기술이 엄청 많을 것”이라며 “공정마다 수백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고, 어떤 것은 몇천억원짜리도 있다 보면 된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