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대한‘미’국 연구자


학생들에게 해외 유학을 위한 추천서를 써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학과 교수님이 계셨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해당 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필자는 그 이유를 상당 부분 공감하였기에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분은 “우수한 학생을 해외로 유학 보내 박사를 만들고, 그런 박사가 (인생의 가장 생산적인 시간을 해외에서 보낸 후) 다시 국내에서 교수로 대거 임용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언론 기고 등을 통해 “국내에서 공부한 박사를 교수로 임용하지 않을 거면 뭐하러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시키느냐”는 사이다 발언도 공개적으로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해외 학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국내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학문으로 ‘자기 집’을 지어야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펼쳤던 것 같다. 지난해 말, 그 교수님이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졸업 후 학회 활동을 잠시 함께하면서 약간의 면식 정도만 쌓았던 관계였지만, 그분의 이른 부음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당시 100여 년 전 태어나 활동한 대한민국 초기 과학자들의 일대기를 모은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이라는 벽돌 책을 읽으면서 그분의 혜안에 다시 한번 크게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노벨 과학상은 새로운 이론의 첫 관문을 연 연구에 주어지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책에서는 이휘소 교수의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미국 유학 중 뛰어난 연구 능력을 인정받아 졸업 이후에도 현지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갔던 분이다. 사람들은 이휘소 교수가 교통사고로 요절하지 않았다면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분의 성과(게이지 재규격화, 참 입자 탐색 등)가 뛰어난 건 맞지만, 새로운 이론의 첫 관문을 연 것은 아니기에 현실적으로 노벨상 수상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중론이다. 더군다나 그분의 성과는 모두 미국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대한민국의 성취와는 무관한 개인적 성과일 뿐이었다. 반면 이분의 별명이 노벨상 제조기였는데, 이분의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미국 연구자들의 최초 기여가 노벨 물리학상감으로 인정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해서, 이것을 한국의 노벨상 성과로 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다시 지난해 말, 미국 국무부 산하 연구소에서 발간한 ’미국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현황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에 따르면, 인도 출신 유학생은 33만을 상회해서 1위를 차지했고, 중국은 28만여 명 수준으로 2위였다고 한다. 3위는 놀랍게도 한국인데 4만 명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미국과 바로 붙어 있는 캐나다 출신이 3만 명이 안 되는 것을 참고할 때 충격적인 수준이다. 20년 전에도 한국은 변함없이 3위의 인재 수출국이었고, 총인구로 나누어보면 명실상부하게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은 1만 4천여 명으로 13위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최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라는 모욕적인 얘기가 계기가 되어 캐나다 총리가 사퇴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캐나다가 보유한 천연자원을 탐낸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의도적 언사였다. 미국의 첨단기술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가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옮겨간 남아공 출신의 유학생이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하기 꺼려지는 말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인적자원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게 없는 나라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인생의 가장 생산적인 시기에 있는 고급 연구인력을 미국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주요 국가로 남게 될 것이다. ‘대한“미”국 연구자’가 이 글의 제목인 이유다.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전기응용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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