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준의 크로스오버] 배우 조진웅의 은퇴… 과거의 그림자와 우리가 마주한 질문

조진웅
조진웅[연합 자료사진]

배우 조진웅이 청소년기 비행 논란이 제기된 직후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과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어떤 부분이 왜곡되었는지는 앞으로 더 밝혀져야 한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논란이 단순한 ‘연예 뉴스’ 하나로 소비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선택은 한국 사회가 오래도록 붙들고 있던 질문, ‘과거는 어디까지 용서될 수 있는가’를 다시 공론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조진웅의 소속사측은 “미성년기 일탈이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일부 중대한 범죄 혐의는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연예인의 이미지는 사실관계보다 ‘대중이 받아들이는 느낌’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그가 맡아온 역할들이 ‘선’과 ‘법’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이번 논란은 단순한 과거 폭로가 아니라 ‘이미지 충돌’로 이어졌다.

조진웅이 빠르게 은퇴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난 6일 소속사를 통해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고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중단,배우의 길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며 “앞으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고교 시절 범죄를 저질러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책임을 지는 방식이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너무 성급한 자기 말살”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논란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군가의 과거를 어디까지 끌어올 권리가 있는가?”

이 질문은 세계적으로 수많은 ‘재활과 재기의 서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는 학교를 중퇴하고 도박, 마약 거래, 강도짓을 일삼다가 20세에 절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그는 감옥 도서관에서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며 지적으로 각성했고, 종교(이슬람)를 접하며 사상가로 거듭났다.

프로농구 NB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적인 가드 앨런 아이버슨은 고교 시절 최고의 유망주였으나, 볼링장 집단 난투극에 휘말려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사면으로 풀려나 농구에 매진했다.

프로복싱 최연소 세계헤비급 챔피언인 마이크 타이슨은 불우한 청소년기를 운동으로 이겨낸 대표적인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소매치기와 싸움을 일삼으며 13살 때까지 무려 38차례나 체포돼 소년원 생활을 했고 재능을 알아본 전설적인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에 의해 세계복싱계를 풍미했다.

찰스 S. 더튼은 소년원에서 시작해 브로드웨이 무대로 나아가 연극을 통해 인생을 바꾼 대표적인 배우다. 그의 삶은 ‘처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소년사법의 취지를 보여준다.

대니 트레호는 폭력과 약물로 얼룩진 젊은 시절을 끝내고,재활 프로그램을 거쳐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상징적 인물이다.지금은 오히려 자신과 같은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활동가로 더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의 톱스타 마크 월버그는 10대 시절 폭력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켰지만,이후 가수·배우·사업가로 커리어를 확장하며 “과거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세운 사례다.

톰 하디는 10대 초반부터 알코올과 마약에 손을 댔고, 15세 때는 차를 훔치고 총기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돼 징역형을 살 뻔했다.재활원에 들어가 완전히 약을 끊은 뒤 연기에만 몰두,대영제국 훈장을 받는 등 오늘날 영국의 대표하는 배우로 성공했다.

이들 외에도 불우한 성장기를 갖고도 성공한 유명인사는 적지 않다.그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과거의 그림자가 그들을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사회 역시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줬다.

조진웅이 정말로 어떤 청소년기를 보냈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가 오늘날까지 이뤄온 성취가 단 하루 만에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사실’과 ‘감정’을 얼마나 구분했는지,그리고 그에게 돌아갈 기회는 애초에 존재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 비행을 둘러싼 인식은 여전히 이중적이다. 처벌하자니 가혹해 보이고, 용서하자니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따른다.이번 논란은 그 모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조진웅의 은퇴는 그의 몫이지만,그가 남기고 간 질문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삶을 무한대로 규정해야 하는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가. 유명인이기 때문에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가. 우리는 흠결 있는 과거를 지닌 사람이 ‘이미 달라진 현재’를 살아갈 권리를 인정할 수는 없는가.

조진웅이 무대를 떠난 순간,대중은 한 사람의 과거를 심판했는지, 혹은 변화의 가능성을 걷어찼는지 판단해봐야 한다. 공은 이제 우리에게 넘어왔다.

2025120801000009400000282황덕준/미주 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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