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국 혁명, 중국의 운명을 비틀다

천국의 가을 / 스티븐 플랫 지음 / 임태홍 옮김 / 글항아리

“확산하는 큰 화재로 첫 연기 기둥이 하늘로 올라갈 때, 그날 일어난 일을 좀 더 깊이 돌아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파괴와 방화의 고삐 풀린 기쁨이 누그러지면서 두려움과 후회가 뒤섞인 이상한 기분이 싹텄다. 어떤 이의 표현에 따르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파괴해 놓고 기뻐하는’, 자신들 내면의 본성이 보여준 어두운 면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었다. 붉은 화염 속에서 춤추는 악마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

미국의 역사학자 겸 작가 스티븐 플랫의 신간 ‘천국의 가을’은 1851년부터 1864년까지 중국을 집어삼킨 태평천국 전쟁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 통념과 달리 19세기 중국은 이미 세계사에서 중요한 존재였고, 태평천국의 반란은 하나의 ‘혁명’이었다고 평가한다.

저자가 ‘반란’ 대신 ‘내전’으로 명명하는 태평천국 전쟁은 광저우 주변 마을에 살던 홍수전으로부터 출발한다. 과거 시험에 세 번이나 낙방한 그는 환영을 보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만주족(청나라)을 몰아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믿은 홍수전은 유교라는 국가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공부한 뒤 종교 운동을 벌인다.

해당 지역에서 하카족 정착민과 원주민 사이에 폭력사태가 일어나자 청의 관리들은 하카족 탓으로 돌리며 홍수전을 체포하려 한다. 그를 추종하는 ‘배상재회(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은 무장 후 지도자를 구했고, 홍수전은 1851년 태평천국의 수립을 선포하며 스스로 천왕이 됐다. 태평천국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홍수전의 사촌동생 홍인간이다.

홍인간의 대척점에 있는 핵심 인물은 증국번이다. 청나라의 유학자이자 상군(의병) 지휘관인 그는 무너져 가는 제국과 유교를 지키기 위해 태평천국을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저자는 두 인물을 이중 전기로 서술하는 한편, 중국과 서구열강의 관계에도 주목한다. 홍인간의 얘기를 들은 영국 선교사는 유럽에 책을 출간해 태평천국이 자신들과 같은 신을 믿는다고 알리고 반란군에 대한 외국 지원을 끌어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개입하면서 영국, 프랑스, 미국은 결국 청나라와 손을 잡고 군을 동원해 태평천국 학살을 돕는다. 그간의 중립 정책을 저버리고 방향을 선회한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이익을 얻으려는 엘리트 계층의 야욕 때문이었다. 특히 영국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희생을 고의로 외면하며, 기독교적 성향을 지닌 태평천국을 지지하는 대신 아편전쟁에서 적대시했던 청나라를 지지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결국 14년간의 내전으로 최소 2000만~3000만명이 사망했다. “외세의 개입과 태평천국의 몰락은 잘못된 확신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1853년 카를 마르크스는 태평천국의 반란이 “엄청난 혁명”이라며 중국에서 서구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만약 태평천국이 꿈꾼 개혁이 성공했다면 중국은 일본보다 먼저 근대화되고, 더 빨리 강대국이 됐을 수 있다. 중국이 미국과 패권전쟁을 하는 지금, 중국의 운명을 바꾼 사건을 다룬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 읽힌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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