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귀스타브 도레 : 곡예사들
‘서커스’ 가족의 비극
슬픔은 이제 시작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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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스타브 도레, 곡예사들(일부 확대), 1874, 캔버스에 유채, 225x184cm, 클레몽페랑 미술관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여성이 아이를 안고서 운다.
광대 차림의 남성은 이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강아지의 눈과 몸짓에도 슬픔은 덕지덕지 묻어있다.
이들은 곡예사 가족. 무슨 일이 있었을까.
화가 귀스타브 도레에 따르면 “이 아이는 상처를 입은 채 죽어가고 있다”(Appletons‘ Journal, 1874년, 276-301호 참고). 그러고 보면, 아이의 머리에선 피가 쏟아지고 있다. 아이는 이날 서커스 무대에 함께 섰을 것이다. 아마 줄타기 또는 공중그네 묘기를 선보이려고 했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아이가 완벽할 수 있는가. 어른조차 발이 꼬이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어떻게 매번 해낼 수 있겠는가. 아이는 발을 잘못 딛고 말았고, 그 결과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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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스타브 도레, 곡예사들, 1874, 캔버스에 유채, 225x184cm, 클레몽페랑 미술관 |
어머니 눈에선 후회의 감정이 방울져 흐른다.
조악한 황금 왕관 아래 보헤미안풍 옷을 두른 그녀도 곡예사, 우스꽝스러운 광대 화장을 한 채 눈물을 쏟는 남편(어쩌면 그가 곡예 중 아이를 떨어뜨렸을지도 모른다) 또한 곡예사였다. 이 두 명의 곡예사로는 차마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었기에 세 명의 곡예사가 된 것이었다. 단지 그랬을 뿐이었는데, 머지않아 받아든 미래는 이처럼 참혹하고, 참담했다. 두 마리의 개가 함께 슬퍼한다. 남편 옆 강아지의 눈은 투명하게 젖었다. 아내 곁 강아지는 아이를 함께 보듬고 싶은 듯 다리에 매달린다. 사슬에 묶인 올빼미의 담담한 표정. 체념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위험천만한 곡예 생활을 이어가는 한, 이 운명은 곧 찾아올 수밖에 없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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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스타브 도레, 곡예사들(일부 확대), 1874, 캔버스에 유채, 225x184cm, 클레몽페랑 미술관 |
여인 앞에 놓인 트럼프(trump)를 점괘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반원으로 펼쳐진 카드 중앙에는 스페이드 에이스가 펼쳐져 있다.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스페이드 에이스를 종종 죽음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때때로 검, 악마의 창, 무덤을 팔 때 쓰는 삽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곡예사 부부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예측하고서도 아이를 무대에 올렸는가. 부부도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차오르는 물가, 벌어지는 빈부격차, 불확실한 오늘과 더 두려운 내일. 이 모든 게 부부를 몰아세워 선택을 강요했을 것이다. ‘에이, 설마’라는 말. 이 정도의 말만을 유혹하듯 흔들어대며. 사실 이들에게 매일 밤 밥을 주고, 방을 내어주는 건 반복되는 위험이었다. 그러니 삶의 구슬림에 쉽게 넘어갔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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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스타브 도레, 거리 공연가의 가족(과거 작품), 1853, 캔버스에 유채, 194.9×130.8cm |
도레는 이 그림에 대해 긴 설명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에도 과정 없이 결과만 남겼을 뿐이다. 처연한 상상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왼편의 다른 단원들은 벌써 다음 무대를 준비하려고 한다. 이들 모두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지만, 굳이 끼어들 생각은 없어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사람은 오늘 더는 웃을 수 없는데. 이들은, 곡예사 가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