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악성 앱으로 휴대폰 장악·금융사 사칭…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 1.2조 ‘사상 최대’

피해액 사상 첫 1조 돌파…2년 새 약 3배 불어나
대출사기형은 절반 줄고, 기관사칭형은 5.7배 폭증
셀프 감금부터 디지털 감옥 만드는 신종 수법 다양
7월부턴 계좌 실시간 공유…피해금 환급 가능성↑


악성 앱으로 휴대전화를 장악해 금융사 전화까지 가로채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고도화하면서 지난해 피해액이 사상 최대인 1조2578억원을 기록했다. 기관사칭형 범죄가 전체 피해의 약 80%를 차지했다.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서면서 범죄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제도권 대출을 이용하기 어려운 서민층을 노리는 ‘대출사기형’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검찰·금융감독원 등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속여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기관사칭형’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가 범정부 대응과 관련 법 개정 등 총력 대응에 나서지만, 악성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한 범죄 수법이 나날이 고도화하면서 피해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피해액·피해건수 모두 최고치…기관사칭 피해 ‘쑥’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조257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것은 물론, 전년(8545억원)보다 47.2%나 증가한 수치다. 2023년만 해도 4782억원에 불과했던 피해액이 2년 만에 3배 가까이 불어났다.

총 발생 건수와 검거 인원도 각각 2만3360건, 3만2370명을 기록해 전년 대비 12.1%, 48.3%씩 늘었다. 발생 건수는 2021년 이후 4년 만에, 검거 인원은 2020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많았다. 건당 피해 규모도 4100만원에서 5384만원으로 31.3%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범죄 유형의 변화다. 과거 제도권 대출이 어려운 이들을 겨냥한 대출사기형 범죄가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기관사칭형 범죄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출사기형 피해액은 최근 5년(2021~2025년)간 6003억원에서 2694억원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반면 기관사칭형은 같은 기간 1741억원에서 9884억원으로 약 5.7배 폭증했다. 지난해 피해액 중 78.6%가 기관사칭형에서 발생한 셈이다.

경찰청은 “단순 대출 유도보다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속인 정교한 수법이 기승을 부린다”며 “고도화된 사칭 수법에 대한 주의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URL 누르는 순간, 내 정보 빠져나간다


금융권 일선 현장에서도 피해 급증을 체감하고 있다. 관련 업무 관계자들은 보이스피싱이 은행을 넘어 보험사 등 제2금융권까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법도 진화했다. 악성 앱이나 원격제어 앱으로 피해자의 휴대전화 자체를 장악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수법은 문자 속 출처 불명의 링크(URL)를 통해 악성 앱을 설치하게 한 뒤 휴대전화 정보를 탈취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범죄자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되는데, 스스로 모텔에 들어가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수일간 돈을 보내는 ‘셀프 감금’ 사례도 적지 않다. 통화 가로채기, 문자 차단, 화면 조작 등도 흔해졌다. 단순 기망을 넘어 피해자의 스마트폰을 ‘디지털 감옥’에 가두는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금융권의 한 보이스피싱 대응 담당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URL을 누르는 순간 휴대전화 안의 정보가 빠져나가는 통로가 열린다”고 경고했다. 이어 “악성 앱에 감염되면 금융사에 전화한다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범죄자에게 연결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환경에선 피해자가 사기를 인지하기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반기부턴 의심 계좌 정보 실시간 공유


정부는 보이스피싱을 ‘민생 침해 범죄’로 규정하고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 범정부 통합대응단을 출범시킨 데 이어, 10월에는 금융·통신·수사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인공지능(AI) 플랫폼(ASAP)을 가동했다. 범죄이용 전화번호 10분 내 긴급차단, 안면인증제도 시범 운영 등도 도입했다.

특히 이달 국회를 통과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7월부터 시행되면 피해 구제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그동안 금융회사들은 자기 은행의 사기 의심 계좌만 파악할 수 있어 여러 은행을 거쳐 빠르게 이체되는 피해금을 막는 데 한계가 있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 정보를 전 금융권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 계좌 인출을 신속히 차단할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돈이 빠져나가기 전에 의심 계좌를 빠르게 지급 정지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피해금을 돌려줄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해 총력 대응 중이며, 올해 관련 교육과 홍보 활동도 지속해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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