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사 담합조사에 최고가 지정…‘유가잡기’ 총력전

공정위, 가격담합 여부 현장조사 착수
이번주 최고가격제, 1997년후 첫개입
유류세·손실보전·매점매석 관리 검토


정부가 치솟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고유가 주유소 모니터링과 정유사 네 곳에 대한 담합 조사에 이어 이번 주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도 추진한다. 중동 사태 여파로 국제 유가 상승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이를 틈탄 과도한 가격 인상과 폭리는 차단해 물가 상승 압력을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1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기준 서울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ℓ)당 1949원을 넘어섰다. 경유 가격은 1971원으로 휘발유보다 더 높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발생하기 전날인 지난달 27일과 비교하면 휘발유는 약 11%, 경유는 18% 이상 올랐다.

중동 정세 불안 확산으로 국제 유가가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일부 주유소가 재고 확보와 수익 보전을 이유로 판매 가격을 선제적으로 올리면서 국내 유가 상승폭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석유 가격 급등 과정에서의 시장 교란 행위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 공정위는 전날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최근 국제 유가 상승 국면에서 정유사가 석유 제품 가격을 밀약했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거래법은 사업자들이 담합 등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거나 유지·변경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시정조치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별도의 수사와 재판을 거쳐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형이 내려질 수도 있다.

공정위는 전국 주유소 가격 모니터링도 병행하고 있다. 지역사무소를 총동원해 고유가 주유소를 중심으로 가격 동향을 점검하고 있으며 가격 담합이나 눈속임 판매 등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가 확인될 경우 즉시 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가격 정보를 공개해 시장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전날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는 가격 남용행위를 규제할 수 있지만 주유소의 가격을 직접 제재할 수단은 없다”면서 “다만 공정위에서는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비자에게 안내해 높은 가격의 주유소를 피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주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도 예고한 상태다. 제도가 시행되면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정부가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첫 사례가 된다.

구체적인 시행 방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현재 국내 정유사들은 아시아 시장 벤치마크인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에 환율 등을 반영해 공급가를 산정한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몇주간의 싱가포르 현물 시장 가격 평균에 일정 마진을 더해서 정유사가 팔 수 있는 최고가를 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국제 가격 변동을 반영하되 과도한 이윤을 제한해 폭리를 막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주유소 판매가격 대신 정유사 공급가격을 겨냥한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주유소는 직영·자영·알뜰주유소 등 운영 형태가 다양하고 지역별 임대료와 물류비 차이가 커 일괄적인 가격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공급가에 상한을 두면 유통 단계의 원가 부담을 낮춰 소비자 가격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최고가격제는 일정 주기로 조정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날 “기본적으로는 2주 주기로 설계하려고 한다”며 “첫 번째 최고가격은 지금 시중에서 소비자가 맞닥뜨리는 가격보다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사 손실 보전 방안도 마련된다. 석유 최고가격제의 법적 근거인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에는 가격 통제로 발생한 사업자 손실을 국가가 보전할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공급 부족을 막기 위한 관리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매점매석 고시’를 통해 정유사가 생산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 시장에 판매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가격 상한제를 피해 물량을 쌓아두거나 수출로 돌리는 행위를 차단하려는 조치다.

유류세 추가 인하와 소비자 직접 지원 방안이 병행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가 상승에 따른 민생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제 조정과 소비자 지원 대책을 함께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2021년 11월부터 유류세 한시 인하 조치를 시행해 왔으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는 인하율을 최대 37%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양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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