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수사 악행, 끝내 사과없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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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이근안 전 경감이 발인이 진행된 서울 동대문구의 한 장례식장 분향실의 모습. 정주원 기자 |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국가폭력을 상징했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 씨의 마지막 길은 조용했다. 지난 25일 사망한 그의 발인이 2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분향소 안내화면에는 이씨의 아들과 며느리, 손자 등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고인의 이름 뒤에는 ‘목사’라는 직업이 적혀있었다.
당초 이씨의 발인은 오전 5시20분으로 예정됐다. 하지만 유족의 요청으로 1시간가량 시간을 앞당겼다. 서둘러 발인 준비를 마친 유족들은 기자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발인 현장에는 가족 6명 외에는 별다른 조문객이 보이지 않았다. 발인 절차를 마친 유족은 곧바로 장지인 서울시립승화원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언론 취재나 생전 고인과 안 좋은 관계의 사람들이 올 것을 우려해 가족이 특별히 요청했다. 최대한 조용히 치르고 싶다는 뜻이었다”고 전했다.
민주화 운동 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등 악명이 자자했던 이씨는 향년 88세 나이에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순경으로 경찰에 입직한 그는 1970~19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하며 공안사건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주도한 인물이다. 1985년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고문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피해자들은 이후 오랜 기간 후유증을 겪었고 일부는 재심을 통해 불법적 수사로 혐의를 조작한 정황이 인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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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안 전 경감이 향년 88세 나이로 25일 숨졌다. [연합] |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그의 고문 악행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듬해 수배령이 떨어지자 도피 생활을 하다 1999년 자수했다. 고문 및 불법 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만기 출소했다. 출소 이후에는 목사로 종교 활동을 하며 공개적으로 반성을 표명했다고 밝혔지만, 고문 행위에 대해 끝내 명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이어지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고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고문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