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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희 그린피스 캠페인 전문위원.[그린피스 제공] |
‘나프타(Naphtha) 대란’이 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국내 나프타 가격은 2월 말 640달러/톤에서 3월 중순 1000달러대를 돌파하며 급등했다. 치솟는 원가 부담에 공급 차질까지 겹치면서, 주요 석유화학 공장들은 불가항력을 선언하거나 가동을 중단·축소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 여파는 종량제 봉투 제한 판매부터 배달 용기, 과자 봉지, 화장품 용기 등 포장재 수급 비상까지 실물 경제의 타격으로 직결됐다. 이는 단순한 물가 불안이 아니라, 화석연료에 기대 ‘생산-소비-폐기’를 반복해 온 플라스틱 선형경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신호다.
이 혼돈의 공급망 위기는 영국 청소년 소설 <카본 다이어리 2015>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기후위기로 국가가 개인의 탄소 배출량을 배급하고 통제하는 디스토피아적 일상을 그리고 있다. 자원 고갈로 강제로 소비를 줄여야만 하는 소설 속 잿빛 경제로 우리가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늘해진다.
시장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SNS에서는 폭등하는 일회용 컵과 뚜껑 등의 원가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우니, 카페 사장님들에게 ‘다회용기·텀블러 전환 및 일회용품 유료화’를 생존 전략으로 제안한 납품업체의 글이 공감을 얻었다. 유통업계 역시 포장을 간소화하거나 대체 소재를 개발하는 등 단가 상승 대응 흐름이 감지된다.
소비자 인식도 변하고 있다. 관련 뉴스 댓글 등에서 “그 동안 플라스틱을 너무 낭비했다”, “이참에 대체 방식을 고민하자”는 의견이 눈에 띈다. 가파른 자원 위기를 겪으며 기업과 소상공인, 시민들 사이에서 ‘플라스틱 감축’ 대안을 수용하려는 기류가 싹튼 것이다.
문제는 낡은 정책이다. 정부는 나프타 수급 불안을 막고자 공급망 조사, 대체 물량 확보, 수출 제한 등 분주히 움직이지만, 이는 단기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반복되는 자원 위기마다 국민과 기업이 가혹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과 시장은 정책적 ‘판’만 마련된다면 기꺼이 동참할 의지가 있다.
나아가 현재의 플라스틱 과의존은 내수를 넘어 거대한 수출 리스크다. 유럽연합(EU)은 포장재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을 도입해 플라스틱 포장재 감축을 엄격히 규제하며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유럽 등이 순환경제로 질주하는 사이, 쓰고 버리는 선형경제에 갇혀 있는 것은 우리 산업의 치명적인 수출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폐기물 사후 처리에 급급했던 기존 환경 정책에서 벗어나, 탈플라스틱 종합대책과 순환경제 기본계획의 핵심 지표를 ‘생산 원천 감축’으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 포장재 사용 자체를 줄이고 재사용 목표율을 법으로 강제하는 한편, 재생원료 사용을 확대하고 재활용성이 낮은 재질은 시장에서 퇴출하는 ‘한국형 포장재 규정(K-PPWR)’ 도입이 그 출발점이다. 일회용품 없이도 소비와 유통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순환경제의 ‘판’을 국가가 깔아줄 때다.
나프타 대란은 우리에게 날아온 확실한 청구서다. 플라스틱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적 혁신만이 반복되는 지정학적 위기와 무역 규제 속에서 국가 경제와 국민의 일상을 지켜낼 생존 전략이다.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텅 빈 진열대 앞에서 더 가혹한 비용을 치를 것이다.
한정희 그린피스 캠페인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