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너머의 시간…지근욱 ‘금속의 날개’

학고재서 개인전…5월 9일까지
시간성·행위의 의미 재고


지근욱 ‘Space Engine – MW 005~008’. [학고재]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일정한 간격과 압력으로 그어진 선들이 화면을 메우고 있다. 작업을 하며 발생한 미세한 손의 떨림과 오차는 기계적인 선형 질서를 해체하며 미묘한 질감을 형성한다. 시간이 응축된 표면은 ‘물질적 장(Material Field)’으로 실재한다.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 온 지근욱 작가의 개인전 ‘금속의 날개_Metallic Wings’가 오는 5월 9일까지 학고재에서 열린다. 2023년 이후 학고재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지근욱의 회화 59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선 긋기와 물질을 쌓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는가’의 재현적 차원을 넘어 ‘어떻게 드러내는가’라는 본질적인 존재 방식에 집중한다.

‘금속의 날개_Metallic Wings’는 시간성과 행위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데서 출발한다. 작가는 선 긋기라는 행위 이면에 잠재된 비선형적 감각에 주목하며,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회화적 경험을 제안한다. 결과를 향해 수렴하는 직선적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연대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적 장소로의 전환을 이룬다.

이번 전시의 핵심 물질인 ‘금속(Metal)’은 과거를 응축한 시간의 결정체다. 유동적 표면을 통해 단일한 현재를 넘어선 다층적 시공간을 화면 위로 끌어올린다.

금속은 회화에 광학적 변주를 입히는 핵심 장치로 작동한다. 빛의 각도에 따라 표면의 인상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보는 이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깊이와 층위를 발생시킨다. 이로 인해 화면은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감각의 장이 된다.

이러한 비선형적 감각은 작업 과정에 대한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반복되는 선 긋기는 인과적 순서를 따르는 노동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감각의 운동으로 재구성되는 수행적 기록으로 해석된다. 이는 하나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그 이전과 이후의 시간을 동시에 감각하는 경험과도 유사하다.

‘날개(Wing)’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한다. 중력과 질료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운동의 방향성이 담겨 있다. 견고한 금속성 물질이 집요한 반복을 통해 점차 비물질적인 영성의 영역으로 이행하는 과정, 즉 물질로부터 출발한 의식이 다시 비물질적 상태로 상승하는 궤적을 은유한다.

지근욱은 물질과 정신, 행위와 인식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회화를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유기적인 상태로 제안한다. 기술의 속도가 지배하는 동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 너머의 시간을 사유하며 회화의 가능성을 다시 열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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