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규제 빗장 풀어 99조 실탄…은행 75조·보험 24조 생산적 금융行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
은행의 운영리스크 손실인식 완화
구조적 외환포지션도 확대하기로
보험사 정책투자 등 위험계수 감경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생산적 금융을 위한 은행·보험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금융위 제공]


[헤럴드경제=김은희·박성준 기자] 금융당국이 생산적 부문으로의 자금 공급과 중동 피해기업 지원 등을 위해 자본규제 빗장을 대거 푼다.

은행이 3년 이상 인식한 손실사건을 운영리스크 산출에서 배제하도록 허용하고 보험사의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성 투자 또는 적격 벤처투자에 대해 위험계수를 낮추기로 했다. 이를 포함한 자본규제 합리화 조치로 은행권 74조5000억원, 보험업권 24조2000억원 등 최대 98조7000억원의 자금공급 여력이 추가로 확보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6일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이같은 은행·보험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금융의 자금 물줄기가 생산적 분야로 흐르도록 제도와 환경을 과감하게 바꾸겠다”면서 “특히 이번 조치는 일종의 ‘정책 추경조치’로 추가 자금공급 여력이 위기 극복과 경제 재도약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운영·시장·신용 리스크 규제 합리화…CET1 상승 기대


우선 은행의 경우 재발 가능성이 낮은 대규모 손실사건은 심사를 거쳐 운영리스크 산출에서 제외한다. 최근 금융사고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현행 제도상 손실이 자본비율 산정 시 10년간 운영리스크로 반영돼 상당한 자본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최소 3년 이상 인식한 국내 사건에 한해 ▷재발방지 대책 마련 ▷충분한 보상 완료 ▷법률쟁송 종료 등 요건을 충족한 경우 손실사건 배제 심사를 통해 운영리스크 산출에서 배제한다. 5대 은행지주를 기준으로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지주별로 최대 0.26%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이달 말부터 운영리스크 손실사건 배제 승인 신청서를 접수해 승인여부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최근 환율 변동성을 감안해 시장리스크 산출 시 제외되는 구조적 외환 포지션 승인 대상은 즉각 확대한다. 종전 해외점포 출자금에 해외점포 이익잉여금, 장기 해외 지분투자를 추가했다.

단기 재무적 투자가 아닌 해외진출 목적 지분투자의 경우 지분투자 전체를 구조적 외환포지션으로 인정한다. 해외점포 이익잉여금의 경우 배당·회수가 제한돼야 한다. 당기손익에 따라 이익잉여금에 변동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해 구조적 외환포지션 인정 규모는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CET1이 지주별로 최대 0.12%포인트 오르는 효과가 기대된다.

은행의 신용평가모형 변경승인에 대한 심사기간도 단축한다. 노후화된 신용평가모형을 재개발할 경우 유사사례 일괄심사, 중점사항 위주 점검 등을 통해 변경승인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 은행의 선구안 강화와 자본여력 확충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들 과제를 추진하면 은행의 자본여력이 확충되며 이를 기업대출로 활용할 경우 최대 74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개선된 자금공급 여력이 생산적 부문 등에 충분히 공급하는지 면밀히 살필 계획이다.

주택담보대출 자본규제 등 추가 개선과제도 지속 발굴한다. 스트레스 완충자본의 경우 은행의 손실흡수능력, 대내외 경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입시기를 검토해 나갈 계획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생산적 금융을 위한 은행·보험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금융위 제공]


위험계수 49→16%…보험사, 정책펀드·인프라 투자 길 넓혀


보험업권은 핵심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산출 시 적용되는 위험계수를 합리화해 24조2000억원의 추가 자금공급 여력을 확보한다. 한국 보험사 자산운용수익률이 3% 초반대로 해외 6%대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에서, 그동안 과도하게 보수적이었던 규제를 국제 기준에 맞춰 손질해 장기투자 유인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핵심은 정책펀드·벤처·인프라 투자에 적용되는 위험계수를 큰 폭으로 낮추는 것이다. 위험계수는 보험사가 일정 자산에 투자할 때 손실에 대비해 쌓아둬야 하는 자본의 비율이다. 계수가 높으면 그만큼 자본 부담이 커져 투자를 꺼리게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펀드에 장기 투자할 경우 비상장주식에 적용되던 위험계수 49%가 최대 16%까지 떨어진다. 정부가 손실을 먼저 떠안는 후순위 보강 효과를 반영하고, 10년 이상 장기보유 특례까지 중복 적용한 결과다. 신기술투자조합 등 적격 벤처투자의 위험계수도 49%에서 35%로 낮아진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나 인공지능(AI) 기반시설 같은 신산업 인프라도 도로·항만 등 전통 인프라와 같은 위험계수(20%)를 적용받는다. 그동안 요건이 불명확해 적용받지 못했던 부분이다.

도입 후 활용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던 매칭조정 제도도 빗장을 푼다. 매칭조정은 보험부채와 비슷한 현금흐름을 가진 자산에 투자할 경우, 해당 자산의 수익률을 부채 할인율로 사용해 부채 평가액을 낮춰주는 제도다. 그동안 자산과 부채의 현금흐름이 100% 일치해야 한다는 요건 때문에 사실상 사문화돼 있었다.

앞으로는 변동금리 자산도 허용되고 10% 이내 미스매칭도 인정된다. 연금보험 부채를 임대형 민자사업(BTL) 등 인프라 대출 수익률로 할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주담대에 적용되는 위험계수는 담보인정비율(LTV) 60~80% 구간에서 3.5%에서 4%로 오른다. 은행권과의 형평성을 맞추는 차원으로, 부동산 자금을 생산적 분야로 돌리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금융위는 대부분 과제를 2분기 중 감독규정 개정을 통해 시행하고, 매칭조정 제도 등 세부방안 마련이 필요한 과제는 3분기 중 발표할 계획이다. 24조2000억원이라는 추가 여력은 현재 보험사들이 주로 투자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대출 기준으로 산출된 수치로, 정책펀드·벤처투자까지 본격화될 경우 실제 자금공급 여력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억원(가운데) 금융위원장이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생산적 금융을 위한 은행·보험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금융위 제공]


이날 회의에선 민간 연구원, 전문가와 중동상황이 산업구조 등에 미치는 영향·시사점을 짚어보고 13조원 이상 규모의 금융권 자체 지원실적도 점검했다.

금융권은 은행을 중심으로 중동 분쟁지역 진출 기업, 중동 관련지역 수출입 실적 보유 기업 및 전·후방 협력사 등을 대상으로 자금을 지원 중이다. 지난 7일 기준 약 5조8000억원(1만7969건)의 자금을 신규 지원했으며 약 7조2000억원(1만8419건)의 기존 대출 만기연장·원금 상환유예를 실시했다. 보험업권과 여신전문업권의 경우 고유가·고물가 상황에 특화된 국민 체감형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은행권을 향해 “담보·보증 위주의 영업관행에서 벗어나 미래성장성 높은 분야와 전략산업, 수출현장 등에 자금을 공급해달라”면서 “보험사 또한 장기자산을 운용하는 업의 본질을 살려 국가 주요 인프라, 에너지 전환 관련 투자 비중을 과감히 늘려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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