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재봉쇄→회항→발포·나포…호르무즈 긴장 최고조 [미·이란 강대강 대치]

이란정부 해협 개방후 혁명수비대 재봉쇄
미군, 이란 화물선 ‘투스카’ 발포·억류까지
트럼프 “봉쇄 뚫으려던 선박 기관실 구멍내”
24시간내 통항 1척 불과…종전협상 안갯속IEA총장 “튀르키예∼이라크 송유관이 대안”

 

미국과 이란의 휴전 회담 2라운드를 앞두고 회담장이 설치되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세레나 호텔로 향하는 도로가 통제된 모습. 현지 경찰이 19일(현지시간) 도로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총을 들고 있다. [AP]

 

21일(현지시간) 휴전 종료를 앞두고 2차 협상, 휴전 연장 등의 기대가 나왔던 미국과 이란이 지난 17일부터 호르무즈 해협 개방, 재봉쇄, 대(對)이란 선박 발포 및 나포, 이란의 미군함 드론 보복 공격까지 이어지며 긴장이 극에 달하고 있다. 2차 회담을 앞둔 양측의 기싸움이 강대강 대치로 이어지는 가운데, 이란은 오는 20일 파키스탄에서 2차 회담을 연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부인해 긴장 완화에 대한 전망을 흐리게 하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더 이상 호르무즈 해협에 매달리지 말고, 튀르키예와 이라크 간 송유관 건설로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17일 2차 회담에 대한 기대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소식으로 잠시 화해 무드가 흘렀던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18일부터 24시간여만에 극단의 대치로 치달았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란에 대한 역봉쇄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란 내 강경파인 혁명수비대(IRGC)는 미국의 역봉쇄에 곧 해협 재봉쇄로 응수했고, 그 즈음 해협을 지나던 인도 국적 선박 2척에 총격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이를 ‘휴전 협정 위반’이라 규정하며 이란 상선에 발포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라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이란의 모든 발전소와 모든 다리를 파괴할 것이다. 더 이상 착한 사람 행세는 끝이다!”라고 이란을 압박하기도 했다.

미군이 중국에서 이란으로 향하던 상선 ‘투스카’를 나포까지 하면서, 사실상 휴전이 깨진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됐다. 이란군은 휴전을 어겼다며 보복을 예고한 직후, 미 군함에 무인기 공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오는 20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차 회담이 열린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SNS 게시글도 정면 부인했다. 이란 국영매체 IRNA 통신은 이날 “이슬라마바드에서 2차 회담이 열린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협상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양국간 긴장만 높여놓은 채, 다시 막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글로벌 선박 추적 사이트 ‘마린트래픽’을 인용해 최근 24시간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대형 상선은 유조선 ‘G 서머’호 1척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해협을 통과한 이 유조선은 중국 소유 선박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이 유조선은 해협의 상황 악화를 감안한 듯 페르시아만 해역에서 U턴을 하는 등 여러 차례 항로를 수정하면서 가까스로 해협을 빠져나갔다. 운항하는 동안 이 선박은 자동식별장치(AIS)를 통해 ‘중국 소유 선박이고, 중국인 선원이 탑승했다’는 사실을 수차례 송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란의 군사적 위협을 회피하기 위해 이란과 우호관계인 중국 선박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선언하면서 일부 선박이 탈출을 시도했지만, 이란의 해협 재봉쇄 조치로 상황이 급변하자 대다수가 회항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18일 기준 최소 13척의 유조선이 페르시아만으로 되돌아가면서 해협 이탈 시도를 포기한 것으로 집계됐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상선에 대한 발포까지 발생하자, 영국 해상무역기구(UKMTO)는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일대 위협 수준을 최고 단계인 ‘위기’(critical)로 상향 조정했다. 총 5단계로 구성된 UKMTO 위험 경보에서 ‘위기’는 “공격이 거의 확실하거나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UKMTO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해당 해역에서 군사 활동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증가했다”라며 “상업용 선박을 공격하거나 오판에 따른 충돌 위험이 심각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UKMTO는 이란군이 전날 해협을 통과하려던 복수의 선박을 상대로 공격을 감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안감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면서 더 이상 해협에 국제 에너지 수급을 의존할 수 없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비롤 IEA 사무총장은 이날 호르무즈 해협의 대안으로 튀르키예와 이라크를 잇는 송유관 건설을 제안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이날 튀르키예 일간 휘리예트와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판도가 뒤집혔고, 사람들이 대안을 찾을 것”이라며 “바스라와 제이한(BC)을 잇는 송유관이 이라크와 튀르키예 양국은 물론 유럽의 관점에서 지역 공급 안보에 중요하고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금 조달 문제도 극복이 가능하다”며 “지금이 바로 적기”라고 강조했다.

이는 이라크 남부에 위치한 도시 바스라에서 튀르키예의 남부 항구도시 제이한까지 연결하는 송유관을 만들어, 이라크산 원유를 유럽 각국에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에서 제이한까지는 이미 ‘키르쿠크-제이한 송유관’이 건설된 상태다. 이를 이라크 남부 바스라까지 연장하기만 하면, 이라크 남부부터 튀르키예 항구도시까지 송유관으로 원유를 내보낼 수 있고, 제이한에서 유조선들이 유럽으로 이를 실어나를 수 있다.

제이한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조지아 트빌리시를 거치는 BTC 송유관의 종착지이기도 해, 구상이 실현되면 호르무즈 내 항구들을 대체하는 원유 운송 허브로 거듭날 수 있다. 현재 페르시아만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각국으로 수출되는 이라크산 석유는 90%가 바스라에서 생산된다. 도현정·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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