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의 우주’ 라베크 자매 “음악은 인스턴트 커피가 아니다”

18년 만에 내한한 라베크 자매 듀오
오는 26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 연주


1970년 올리비에 메시앙의 지휘로 첫 음반을 낸 이후,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해온 피아노 듀오 카티아 라베크(Katia Labque)와 마리엘 라베크(Marielle Labque) 자매. [LG아트센터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텔레파시’라는 말은 두 사람을 위해 태어났다. 두 개의 몸이 하나가 되고, 네 개의 손이 두 손처럼 겹친다. 88개의 건반이 176개로 확장하자, 음악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가 된다. 말하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통하는 순간이 있다.

“피아노 듀오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과 무대를 나누는 일입니다. 솔로 커리어에 대한 갈증은 단 한 번도 없었죠.” (라베크 자매)

건반 위에서 반세기 넘게 공생한 피아노 듀오 라베크 듀오가 한국을 찾는다. 1970년 올리비에 메시앙의 지휘로 첫 음반을 낸 이후,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해 온 카티아 라베크(Katia Labque)와 마리엘 라베크(Marielle Labque) 자매다.

두 사람의 음악적 전위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클래식이라는 견고한 성벽에 끊임없이 균열을 내며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 왔다. 1970년 올리비에 메시앙의 지휘로 첫 음반을 낸 이후 50여년간 거슈윈의 래그타임부터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리즘은 물론, 톰 요크와 마돈나를 오가는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졌다. 이번 내한에선 현대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인 ‘오르페’, ‘미녀와 야수’, ‘앙팡테리블’ 등을 선보인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서면으로 만난 라베크 자매는 “필립 글래스는 오늘날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자 우리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 작곡가”라고 말한다.

“그의 음악은 흔히 반복적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매우 정교하고 표현력이 풍부하고 낭만적이에요. ‘반복’하는 부분을 매번 똑같이 연주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렇게 하면 음악이 살아나지 않거든요.” (마리엘 라베크)

자매가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만난 것은 2008년이 처음이었다. 런던 킹스 플레이스에서 열린 미니멀리즘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되면서다. 카티아는 당시를 떠올리며 “악보를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며 “리듬이 겹겹이 중첩되고, 전환이 많아 연주가 까다로웠다”고 회고했다. 이후 5년 뒤 두 사람은 필립 글래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악장’을 녹음했다. 이때는 “필립 글래스의 음악에 들어간 첫 발걸음”이라고 카티아는 기억했다.

1970년 올리비에 메시앙의 지휘로 첫 음반을 낸 이후,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해온 피아노 듀오 카티아 라베크(Katia Labque)와 마리엘 라베크(Marielle Labque) 자매. [LG아트센터 제공]


이번 공연은 무대 장치도 특별하다. 커다란 피아노 두 대와 샹들리에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앙팡테리블’의 침실, ‘미녀와 야수’의 성처럼 극 중 인물들의 내밀한 공간을 재현하는 장치”라고 카티아는 설명했다.

지난 3월 파리 초연 이후 다시 선보일 공연은 같지만 다른 무대다. 마리엘은 “공연마다 공연장의 음향, 관객의 반응, 피아노의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공연은 매번 새로운 모험”이라며 “음악은 인스턴트 커피처럼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무르익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매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서사다. 카티아가 18세, 마리엘이 16세이던 1960년대 후반, 보수적인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의 학풍에 맞서 카티아는 듀오 활동을 허락받았다. 당시 음악원은 솔리스트 양성에 초점을 맞춘 커리큘럼에 따라 자매의 듀오 활동을 실내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매는 설득 끝에 음악원 사상 최초로 ‘피아노 듀오’ 부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메시앙의 음반을 발표했던 것은 이들 커리어의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서로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운명 공동체’가 된 배경이다.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은 역설적으로‘다름’에서 나온다. 마리엘이 저음역의 단단한 타건을 맡는다면, 카티아는 고음역의 화려한 기교를 선호한다. 각자의 독립된 자아를 유지하는 파트너쉽이다. 카티아는 “때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긴장감이야말로 의미 있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대조’는 필요하기에”, 두 존재가 서로를 파괴하지 않으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마리엘은 “우리 둘의 다름이 듀오를 오래 이어올 수 있게 한 동력”이라고 했다.

“전 카티아처럼 연주하려 한 적이 없고, 그녀 역시 저처럼 연주하려 하지 않았어요. 저희는 무대 위에서도, 삶에서도 매우 다르죠. 서로 다른 두 개의 개성이 함께 드러날 때 피아노 듀오 음악은 더 흥미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엘)

한국 관객과의 만남은 무려 18년 만이다. 특히 마리엘에게 한국은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는 ‘교감의 장’이다. 그는 “남편인 세묜 비치코프는 지난해 체코 필하모닉과의 투어 당시 한국 관객들이 보내준 따뜻한 환대, 관객들의 젊음과 세련됨이 큰 감동과 영감을 줬다고 했다”며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가진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며 설렘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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