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10개월간 60회 이상 만나 가격 7차례 올려
할인율 축소·기준가 인상 병행하며 인상 지속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반기 보고 의무 부과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국내 인쇄용지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6개 제지사가 4년 가까이 담합을 반복하다 3000억원대 과징금과 함께 20년 만에 가격 재결정 명령을 받게 됐다. 과징금 규모는 제지업계 최대 수준으로, 국내 담합 사건 기준으로는 다섯 번째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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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 책이 진열돼 있다. [연합] |
공정거래위원회는 23일 무림에스피·무림페이퍼·무림피앤피·한국제지·한솔제지·홍원제지 등 6개 제지사의 인쇄용지 담합 행위에 대해 법 위반 행위 금지명령, 독자적 가격 재결정명령 등 시정명령과 함께 총 3383억2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한국제지와 홍원제지 등 2개 법인은 위반 행위와 관여 정도,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들 제지사는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3년 10개월간 정기·비정기적으로 최소 60회 이상 회합을 열고 총 7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을 합의·실행한 혐의를 받는다. 담합에 따른 관련 매출액은 약 4조300억원 규모로 추산됐다.
이들은 7차례에 걸쳐 할인율을 최대 15%포인트 축소하거나 기준가격을 최대 15% 인상하는 방식으로 판매가격을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인쇄용지 가격은 품목별 기준가격에서 거래처별 할인율을 차감해 산정되는 구조로, 할인율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별도의 기준가격 인상 없이 실제 판매가격을 높일 수 있다.
제지사 임직원들은 가격 인상 통보 순서까지 사전에 합의하고 합의가 지연될 경우 동전이나 주사위를 던져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 공중전화나 타인 명의 휴대전화 사용, 이니셜·가명으로 연락처를 관리하는 등 조직적인 은폐 정황도 확인됐다.
6개 제지사는 교과서·단행본·잡지·화보 등 각종 인쇄물에 쓰이는 인쇄용지 시장에서 약 95%(수입물량 포함 시 약 81%)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담합에 나서면서 인쇄용지 판매가격은 합의 초기 톤당 약 84만1000원에서 종료 시점 약 143만9000원으로 올라 약 7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지사들은 디지털 전환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코로나19·우크라이나 전쟁·환율 상승 등으로 원가가 오르자 가격 경쟁을 회피하고 담합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영업이익은 안정적으로 확보된 반면, 가격 상승 부담은 인쇄업체와 출판사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이 사건의 과징금 규모는 공정위 담합 사건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크며 제지업계 기준으로는 최대 수준이다. 과거 제지업계 담합 사건의 최대 과징금이 2016년 1108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3배 이상 큰 규모다.
공정위는 담합 금지명령과 함께 각 제지사가 담합 이전 수준으로 가격을 독자적으로 재결정하도록 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보고하도록 했다. 이는 담합으로 형성된 가격 구조를 직접 낮추기 위한 조치로,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두 번째 사례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마지막 7차 합의 이후에 전체 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기준가격이 변경되지 않고 아직 합의의 영향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라며 “이번 제재로 인쇄·출판업계와 중소 유통업체의 부담 완화와 함께 소비자 생활비 상승 요인을 줄이고 시장 경쟁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