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다” vs “만능 아니다” 찬반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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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법소년 연상 일러스트. [제미나이로 제작] |
[헤럴드경제=이영기·김도윤 기자] “압도적으로 다수의 국민들에게 한 살은 낮춰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있는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 지난 2월 말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을 지시한 이후 정부와 시민사회가 열띤 논의를 벌이고 있다. 그간 촉법소년은 ‘처벌 자체를 회피할 수 있다’는 오해와 함께 청소년이 저지른 강력범죄가 조명되면서 기준을 낮춰야 한단 국민적 공감대까지 커졌다.
실제로 매년 촉법소년의 범죄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성범죄와 절도 등 특정 범죄가 크게 늘었다. 이를 근거로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청소년들이 ‘흉포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맞선다. 엄벌보다는 교육과 교화에 더 초점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촉법소년 기준 나이대를 낮추는 건 국제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다고 한다.
촉법소년을 둘러싸고 의견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성평등가족부는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숙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정책 결정 관련 권고안을 정리해 4월 30일 사회적 대화협의체 전체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후 국무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하향 여부의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 (소년법 제4조)
1953년 제정된 형법은 만 14세 미만 청소년은 형사처벌 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에 대해선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내리는데, 바로 이들이 ‘촉법소년’이다.
촉법소년 사건은 일반적 형사 절차와 달리 진행된다. 경찰 수사 후 법원 소년부로 전건 송치한다.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 법원에서 죄를 가리는 일반 형사사건과는 다르다.
사건을 받은 법원 소년부는 촉법소년의 보호처분을 결정한다. 보호자 위탁 및 수강명령 등 1·2호 처분부터 소년원 송치인 8·9·10호 등 총 10단계로 나뉜다.
촉법소년 개념에는 신체·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소년이 저지른 죄는, 처벌하기보다는 교화와 보호를 통해 사회 복귀를 돕는 게 옳다는 취지가 반영돼 있다. 그러나 촉법소년의 범행이 사회적으로 조명될 때마다 ‘보호’의 실효성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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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특공대가 수색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 |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에 폭탄을 설치하고 폭파하겠다는 협박 글이 온라인에 올라왔다. 대규모 경찰·소방력이 투입되고 시민 4000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백화점 영업도 중단돼 추산된 매출 손해액만 6억원에 달했다.
당시 사건의 협박범은 제주도에 사는 중학교 1학년 A군으로 촉법소년이었다. A군은 형사처벌을 피했다.
극악무도한 성폭행 사건에서도 형사처벌을 피하는 사례도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2024년 발생한 충북 충주시의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들도 촉법소년이었다. 총 5명의 피의자 중 촉법소년 3명은 청주지방법원 소년부에 송치됐다.
이들은 법원에서 유죄 취지의 처분을 받았는데도 처분 내용이 피해자들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또 다른 ‘몰카’ 범죄 사건에서는 경찰이 수사 단계에서 일부 피의자의 휴대전화를 확보하려고 했으나,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경우도 있다.
2021~2025년 촉법소년 처리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촉법소년 처리 건수는 1.8배 증가했다.
2021년 1만2026건으로 1만건을 조금 웃돌던 처리 건수는 ▷2022년 1만5468건 ▷ ▷2023년 1만9884건 ▷2024년 2만1139건 ▷2025년 2만1958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매년 범죄를 저질러 법원 소년부로부터 처분 결정을 받는 촉법소년의 수가 2만명을 넘는다는 의미다.
특히 강력범죄가 늘어나는 점이 주목된다. 경찰청이 집계한 ‘2022~2024년 범죄유형별 촉법소년 현황’을 보면 2022년 557건이었던 촉법소년 강간·추행 건수는 2024년 883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절도는 7874건→1만416건 ▷폭력은 4075건→4873건으로 늘어났다.
이번 22대 국회에선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촉법소년의 연령 하향을 위한 소년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꾸준히 소년 범죄의 형사처벌 여지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있어 왔다.
촉법소년 나이 기준을 낮추자고 주장해 온 손정숙 울산지방검찰청 검사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촉법소년 범죄의 발생 건수와 함께 강력 범죄도 증가했는데, 객관적인 통계를 봤을 때 (연령) 하향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들 사건을 접하다 보면 합동 강간 등 죄질이 나쁜 사건도 많다”며 “모든 범죄에 대해서가 아니라 특히 중한 범죄에만 범죄 예방을 위해 형사처벌의 가능성을 열어놓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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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소년 재판을 묘사한 이미지. [제미나이로 제작] |
특히 소년재판의 폐쇄성 때문에 강력범죄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배제되는 일도 많다. 손 검사는 “일반 형사 재판과 달리 소년 재판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처분 결과도 알 수 없다”며 “향후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을 위해서라도 처분 결과를 알아야 하는데 피해자조차 알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엄벌주의는 범죄 예방 효과 적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성평등가족부·교육부·법무부 등이 공동 주최한 ‘형사미성년자 연령 기준 제도 보완 방안’ 포럼이 열렸다. 전문가들은 형사미성년자 기준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정의롬 부산외국어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선언적·상징적 차원에서라도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3세로 낮춰 국민의 법 감정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덕주 안산 상록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SPO)은 “‘촉법이라 괜찮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범죄 억제력이 약화하고 있다”며 “오히려 아이들을 더 큰 범죄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문조사에서도 국민의 95%가 촉법소년 범죄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다수가 연령 하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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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형사 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 기준에 관한 제도적 보완 방안’을 주제로 전문가들이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김도윤 기자. |
반대로 촉법소년의 기준연령을 낮추는 게 소년 범죄를 차단하기 위한 근본적 해법이 아니란 의견도 맞섰다. 교육·복지·수사 분야 전문가들은 처벌 연령 하향은 상징적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면서 피해자 보호와 재범 방지, 교육적 개입 등 핵심 과제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강조했다.
배상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필요한 것은 연령 조정이 아니라 절차 정비와 처우 개선, 피해자 권리 보장”이라며 “14세를 13세로 낮춘다고 해도 실제 처벌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상징적 조치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역시 형사책임 연령을 14세 미만으로 낮추는 데 반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 전문가들도 엄벌주의 접근의 한계를 짚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엄벌 중심 정책은 범죄 예방 효과를 높이지 못할 뿐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을 뒤로 밀어낼 수 있다”며 “소년보호사건은 피해자 권리 보장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엄벌 담론에 치우치면서 교육적 개입과 피해 회복이라는 핵심 가치가 소외됐다”며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가 타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직면하게 하는 회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모 역할 강화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신혜진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부장검사는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등과 달리 자녀의 잘못에 대해 부모를 형사 처벌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은 부모에게 엄격한 형사책임을 묻는 법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부모 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는 시스템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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