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시인’ 신경림의 고백 “시를 쓰는 건 내 시로부터 도망치는 일” [북적book적]

2주년 유고 산문집 ‘산은 날더러…’
고인의 문학과 삶에 대한 철학 담겨
“시는 본질적으로 자기 탐구 과정”

 

신간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신경림, ‘갈대’)

2년 전 우리 곁을 떠난 ‘민중 시인’ 신경림(1935∼2024)은 시뿐만 아니라 산문으로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곤 했다. 그가 생전에 쓴 산문집만 해도 ‘바람의 풍경’, ‘민요 기행 1, 2’ 등 5권이나 된다. 신경림 시인의 2주기를 맞아 그의 짧은 글들을 모아 낸 유고 산문집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에선 그의 문학과 삶의 철학이 오롯이 담겼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6·25전쟁, 군사독재, 6월항쟁 등 아픈 현대사를 관통해 온 시인은 글을 쓰는 것 역시 고뇌의 연속이었다. 그는 저서에서 “내가 시를 쓰는 일은 늘 내 시로부터 도망치는 일의 반복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시란 본질적으로 ‘자기 탐구’의 결과물이라고 확신하면서도 굶어 죽는 거지들, 전쟁으로 인한 상이군인과 고아, 민주화를 외치다 희생된 청년 등을 보며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1950년대 ‘갈대’와 같은 서정적인 시를 쓰다가 10년간 절필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아무 상관 없는 아름다움만 좇는 시를 쓰는 일이 과연 맞는가’라는 회의감이 들어서다. 하지만 시에 대한 그리움에 못 이겨 결국 오늘의 삶에 깊이 뿌리 박힌 시를 쓰자는 생각에 시집 ‘농무’를 엮어내게 된다. ‘민중 시인’이라는 별칭도 이때 얻게 된다.

이후에도 신경림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체제에 저항하는 시, 통일이나 민족문제를 다룬 시 등 시대의 요구에 대한 답을 적다 보니 주위의 권유로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세상에서 좋은 소리는 내가 다 먼저 골라 쓰는 게 아닌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그때 시인이 찾아낸 출구가 ‘민요’다. 민요시 역시 자신을 지나치게 ‘우리 것’에 가두는 낡은 옷 같다는 생각이 들며 “시란 무엇에 구애받아선 안 되고 무엇을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는 뻔한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시란 본질적으로 자기 탐구”이자 “내가 어떠한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길 찾기이며, 다른 존재와 어떠한 관계 속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이고 모색”이라고 생각했다. 시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요, 그 아름다움은 시만이 가진 색채와 향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만이 가진 색채와 향기는 무엇일까.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또는 이 세상을 사는 많은 불행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이 되고 별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통의 매개’가 되고, 더 나아가 희망이 되길 바랐던 듯하다.

책을 엮은 도종환 시인은 “한국 현대시문학사에 대한 성찰이며 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직한 발언”이라며 “신경림 선생이 고뇌하며 걸어온 길이 곧 우리 문학이 고뇌하며 걸어온 길이며, 그 길이 한국 문학사의 뼈대가 된다”고 말했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도종환 엮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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