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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백조의 호수, 락’의 안재용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재용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왕자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보다 속아 넘어가는 순간, 그리고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파국의 과정에서 더없이 인간적이다.
사랑스러운 오데트를 다시 만났다. ‘평생의 짝’을 마침내 찾은 왕자는 소년이 된 것처럼 행복에 취한다. 백조 오데트의 손을 잡고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이 둘은 이제 연애를 시작한 여느 커플과 다름없다.
비극의 전조는 오데트의 몸에서 칠흑같이 검은 깃털 두 올이 튀어나왔다. 왕자가 그것을 발견하자, 오데트는 지그프리트 왕자의 손을 찰싹 때린다. “어? 오데트, 여기 뭐 묻었어. 이게 뭐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모르는 왕자는 당혹스럽다. 불과 몇 초 전과는 눈빛과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자꾸만 그녀를 살핀다. 사랑에 빠진 왕자는 의심을 의심이라 확신하지 못한다. 아니, 의심하고 싶지 않다. 찰나의 주저함과 깃털을 떼는 손끝의 떨림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속고 싶지 않은 불안 사이를 위태롭게 오간다. 순수와 불안 경계에서 흔들리는 청년이 그 자리에 있었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백조의 호수’ 3막, 무도회장 장면이었다.
안재용의 지그프리트 왕자는 춤추는 순간과 춤추지 않는 순간을 ‘일상의 호흡’으로 메운다. 과장된 마임 대신 일상의 몸짓으로 툭 흘러나온 동작. 그 짧은 여백 속에서, 객석은 고전 발레 속 박제된 왕자가 아닌 현실에 존재할 법한 뜨거운 인간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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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예술감독인 세계적인 거장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안재용의 리허설을 지켜보는 모습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재용 제공] |
그의 춤은 고난도의 클래식 테크닉 위에서 정교하게 완성됐다. 길게 뻗는 아라베스크는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았고, 중심을 깊게 누른 채 이어지는 회전은 감정을 집어삼킨 사람처럼 묵직했다. 점프는 높이의 과시이기보다 체공의 서사였다. 공중으로 치솟는 순간보다 착지 후의 표정이 잔상으로 더 오래 남는다. 마이요의 ‘백조의 호수’가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왕자님이 아니다. 무너지는 감정, 잔혹한 욕망, 순수와 불안의 공존이다. 안재용은 그 복잡한 층위를 연기하는 대신 온전히 살아냈다. 한 인물의 궤적을 그려가자, 발레는 한 편의 심리극이었다.
3년 만의 한국 공연은 마치고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안재용은 “관객을 만나는 것은 늘 소중한 경험이지만, 고국 무대는 더 특별하다”며 “한국에서 우리 발레단과 저의 무대를 보여줄 수 있어 늘 설레고, 막상 무대를 마치고 나면 뭉클해진다”고 했다.
안재용과 몬테카를로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내한이 확정된 지난해부터 이 공연은 발레계 최고의 관심사였다. 세계적인 안무 거장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이끄는 발레단이 한국에서 선보인 작품은 ‘백조의 호수 락(LAC)’은 기존의 클래식 발레를 완전히 뒤엎은 역작이다. ‘백색 발레’의 정수를 보여줬던 고전은 마이요를 만나 한 번도 본 적 없던 ‘스릴러 심리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 공연이 있던 지난 16~1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주차 대란’으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기획사는 3층 객석까지 열며
관객을 맞았다. 고전을 해체해 마이요의 언어로 재조합한 ‘백조의 호수’는 이 발레단에서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다. 그 중심엔 단연 ‘마이요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몬테카를로 수석 안재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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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수석 무용수 안재용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재용 제공] |
마이요는 그의 꿈이었다. 안재용은 사실 출발이 늦었다.
발레의 길을 걷는 대다수의 무용수는 뼈와 근육이 여물기 전인 초등학교 시절 춤을 몸에 새긴다. 안재용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8살에야 발레에 입문했다. 스노보드, 스피드 스케이팅, 산악자전거와 같은 역동적인 레저 스포츠는 섭렵했지만, 발레는 취미로도 접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소년 시절의 꿈은 “불의의 사고로 외형적 변화를 겪은 사람들의 삶을 재건해 주는 성형외과 의사였다”고 한다.
“외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외형적인 이유로 사람이 불행해지는 건 너무 부당하다고 느껴졌어요. 사람들의 회복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발레를 마주한 건 ‘한 번의 경험’ 때문이었다. 소프라노인 누나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발레 공연을 보러 갔다. 그에게 발레는 “스테레오 타입에 갇힌 미지의 영역”이었다. 무대가 시작되자, 안재용은 “남성 무용수들의 강렬하고 압도적인 에너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대사 한 줄 없어도 허공을 가르며 뛰어오르고 신체를 통해 감정이 파도처럼 객석으로 밀려들었다.
“지루한 춤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처럼 스펙터클하게 흘러가는 서사에 영혼을 빼앗겼어요. 그때 본 발레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어요.”
이쯤 되면 지독한 ‘운명’이었다. 소년 안재용은 극장을 나서며 “발레를 해보고 싶다”고 누나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그의 인생 항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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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수석 무용수 안재용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재용 제공] |
18살의 몸이 발레를 시작하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았다. ‘발레의 문법’에 맞게 신체를 재건축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다.
또래 친구들은 이미 턴아웃과 회전을 근육 곳곳에 아로새겼고, 이미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며 발레단 입단을 준비할 때였다. 안재용은 그러나 “팔 하나를 들어올리는 기본 동작조차 버거웠다“고 돌아본다.
“당연히 육체적으로 힘들었겠지만, 사실 그때엔 힘들다고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춤에 너무 깊이 빠져 다음 동작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만 생각했어요.”
하루에 2시간짜리 클래스를 5개씩 들었다. 매일 10시간 이상 연습실에서 정직하게 땀을 쏟았다. 늦은 시작은 콤플렉스도, 약점도 아니었다.
안재용은 “친구들은 나의 경쟁상대가 아니었다”며 “그들 모두가 훌륭한 선생님이었다”고 말한다. 현미경을 댄 듯 친구들의 몸과 움직임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사람마다 달라지는 역동적 동작과 자세를 보는 것 자체가 그에겐 배움의 아카이브였다.
타인의 장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스승의 가르침을 묵묵히 따르자 성장엔 가속이 붙었다. 발레 입문과 동시에 선화예고로 편입했고, 스무 살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발레 시작 2년 차에 거둔 이 성취는 발레계의 미스터리다. 안재용은 “실력보다는 가능성을 더 많이 봐준 것 같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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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수석 무용수 안재용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재용 제공] |
마이요의 작품을 보고 발레를 시작한 그의 꿈은 마이요의 ‘예술 세계’로 향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한예종 시절 그의 스승인 김용걸도 몬테카를로 오디션을 권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오디션 당일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는 “모나코로 향해 오디션을 봤는데, 마이요 감독님이 안 계셔서 영상으로 남기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2016년 1월이었다.
“갑자기 매니저가 뛰어오더니 ‘마이요가 지금 막 극장에 도착했는데 널 찾는다’며 ‘빨리 단장실로 가야 한다’고 다급히 전해줬어요. 단장실에 갔더니 감독님이 보자마자 ‘오! 마이 뉴 보이(Oh, my new boy)’라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러곤 계약서를 줄줄 읽더니 “사인 할 거지? 그게 제일 중요해”라고 하시더라고요.”
모든 것이 속전속결이었다. 마이요 감독은 한국에서 날아온 늦깎이 발레리노를 데리고 다니며 발레단 스태프에게 ‘새로운 정단원’으로 그를 소개했다. 안재용은 몬테카를로 역사상 첫 한국인 무용수였다. 안재용은 몬테카를로 발레단 역사상 첫 한국인 무용수가 되었다. 발레에 입문한 지 고작 5년 만에 이뤄낸 꿈의 랑데부였다.
마이요 감독이 안재용에게서 발견한 것은 테크닉의 완성도만은 아니었다. 마이요의 발레는 정형화된 기교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향한다. 고전 발레의 형식을 유지하나, 그 안의 감정은 철저히 사실적이고 현대적이다. 안재용은 마이요의 만나기 전부터 발레 거장의 예술세계를 직관적으로 감각하며 자신만의 춤을 빚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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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수석 무용수 안재용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재용 제공] |
그에게 발레는 ‘몸의 언어’다. 춤은 “동작을 수행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번역하는 방식”이다. 안재용은 “과장된 표현보다 일상의 움직임을 더 중요하다”며 “손짓 하나도 우리가 일상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움직이려고 한다”고 했다. 마이요가 강조하는 ‘시네마 발레’에 최적화한 무용수가 안재용이라는 것을 발레 거장은 단번에 꿰뚫어 봤다.
안재용은 “바디랭귀지를 하는 것처럼, 어쩌면 몸의 언어는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제스처”라며 “말이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도 손짓발짓으로 소통하듯, 발레는 그것 자체로 우리의 생각과 철학을 정직하게 번역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이요 감독이 강조하는 것 역시 이 지점이다. 영화처럼 사실적으로 연기하고, 아라베스크를 하더라도 기계적인 스텝이 아니라 말하듯이 몸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을 0순위로 둔다.
“그런데 마이요 감독님의 안무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예요. 기본이 무너진 채로 연기만 한다면 그건 발레극이 아니라 연극이 되는 거니까요.”
입단 이후 안재용의 예술적 영토는 무서운 속도로 확장했다.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그해 5월 몬테카를로 발레단으로 향한 안재용은 군무 단원으로 착실히 단원들과 어우러졌다. 큰 배역을 맡은 것은 불과 3개월 만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 주역 오베론 역이었다. 군무 단원에게 주어진 파격 캐스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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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수석 무용수 안재용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재용 제공] |
승급의 순간도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입단 후 두 시즌을 마친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이요 감독은 “아 맞다! 새로 줄 계약서가 있다”고 무심히 툭 던졌다. 수석 무용수 계약서였다. 입단 3년 차에 받아든 초고속 수석 승급이었다.
안재용은 발레의 꿈을 키운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처음 서던 그날을 떠올리며 “나도 이 위대한 세계의 한 축이 돼 나를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마이요 감독은 안재용이라는 도화지 위에서 두 얼굴을 끄집어낸다. 선역과 악역, 유약함과 마초성을 발견해 다양한 옷을 입힌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로미오와 티볼트와 신부를 오가게 했고, ‘신데렐라’에선 왕자와 아빠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부여해 무용수의 예술적 한계를 짜릿하게 깨부수고 확장한다. 발레단은 물론 평단이 안재용을 ‘마이요의 페르소나’라고 부르는 이유다. 실제로 마이요 감독은 안재용을 통해 신작의 영감을 얻는다. 2019년엔 인공지능 로봇을 다룬 신작 ‘코펠리아’의 과학자 코펠리우스 역을 안재용과 함께 창작했다.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던 발레단에 들어와, 저에게 영감을 준 안무가, 예술가와 함께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값진 경험이에요. 어떤 배역을 맡든 마이요의 세계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정말 좋아요. 그의 예술 세계의 일원이 돼서 제 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꺼낼 수 있다는 것이 매일 재밌어요. 그 감사한 경험을 깨달으며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오늘이 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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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수석 무용수 안재용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재용 제공] |
말을 하듯 자연스러운 ‘몸의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안재용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양한 경험’과 ‘내면의 수양’이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미술관을 가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경험이 그에겐 춤의 일부다.
발레를 시작한 지는 15년. 몬테카를로 입단은 어느덧 10주년을 맞았다. 이곳에서 그는 춤을 넘어 인생을 배워간다. 마이요는 안재용에게 ‘예술적 스승’을 넘어 ‘인생의 멘토’였다. 마이요가 리허설 룸에서 단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성실과 인간성이다. “무용수가 살아온 시간, 그 사람의 성격과 인성, 사소한 자기정리 습관까지도 춤에 투영된다”는 확신이다.
“기억에 남는 말씀들이 너무 많아요. 한번은 리허설 때 저 혼자 너무 열을 올리니, 감독님이 슬쩍 다가오셨어요. 그러고는 ‘재용, 내가 운전하다가 앞 차가 너무 안 가길래 답답해서 뒤에서 빵빵거렸는데, 정작 앞 사람은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몰라’라고 하시더라고요. 발레는 독단적 독무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정교한 상호작용과 호흡으로 이뤄지는 유기적인 예술이라는 걸 일상의 비유로 알려주신 거죠.”
안재용의 춤엔 사람의 온도가 담긴다. 테크닉으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구석구석에 인간적인 체온을 남긴다. 동료를 대하는 방식, 춤에 임하는 태도, 평상시의 생각이 춤으로 보이기에 그는 “매일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담금질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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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수석 무용수 안재용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안재용 제공] |
일 년 중 대부분은 투어를 다니는 데도, 발레를 사랑하는 모나코에서 안재용은 유명인사다. 거리를 오갈 때마다 사람들은 작품명을 언급하며 인사를 건넨다. “동양인이 흔치 않아 눈에 띌 것”이라며 말하지만, 그는 한결같은 꾸준함과 놀라운 성장으로 유럽을 사로잡았다.
마이요 감독과 발레단에선 “피드백을 주변 다음날 완전히 수정해 오는 것을 넘어 자기만의 새로운 해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온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안재용은 하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며 “발레단의 모든 단원이 너무나 배울 점이 많다. 아직은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면서 나를 넓혀가고 싶다”고 말한다.
발레 거장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안재용은 자신을 추고 있다. 마이요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나도 저렇게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이 길로 이끈 것처럼 그는 지금도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인간은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과 음반을 챙겨 피난길에 오르잖아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아직은 갈 길이 멀어요. 꿈이 있다면, 제 춤이 담아가는 누군가의 고독과 슬픔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나도 내 삶을 더 나답게 표현하며 살아야겠다’는 아주 작은 울림이나 치유, 영감을 주는 거예요. 제가 영감을 받아 이렇게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