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가업 잇는다”…전통 제조업 흔드는 40대 우먼 파워


남성 중심 이미지가 강했던 전통 제조업 경영 전면에 40대 여성 오너 경영인들이 잇따라 올라서고 있다. 농기계, 제지·생활용품, 페인트처럼 오랜 설비와 영업망, 대리점, 공장 운영 역량이 핵심인 업종들이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가 쌓아 올린 제조 기반 위에 AI, 로보틱스, ESG, 해외시장, 첨단소재 등을 가미해 사업 활력을 불어넣는다.

가장 최근 전면에 등장한 인물은 김소원 TYM 대표다. 1978년생인 김 대표는 김희용 TYM 회장의 장녀다. TYM은 지난 4월 김소원 최고전략책임자 겸 TYMICT 대표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TYM측은 “기존 농기계 제조업체에서 글로벌 AI·로보틱스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행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2005년 입사 이후 홍보, 경영지원, 전략, 정보통신기술 계열 업무를 거쳤고, 2020년 자율주행 농기계·스마트팜 기술 개발을 맡는 TYMICT 설립을 주도했다.

TYM의 변화는 농기계 업종 자체의 변화를 보여준다. 트랙터와 콤바인을 잘 만드는 회사에서, 데이터를 읽고 농지를 분석하며 자율주행 기능을 가미한 회사로의 변화다. 김 대표가 내세운 방향도 이와 같다.

TYM은 ‘제조업에서 전자산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농기계 회사가 더 이상 철판과 엔진만으로 경쟁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깨끗한나라의 최현수 회장도 같은 세대다. 1979년생인 최 회장은 최병민 명예회장의 장녀다. 깨끗한나라 대표, 총괄사업본부장, 생활용품사업본부장을 거쳐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최 회장이 내세우는 키워드는 제조 혁신과 ESG다. 후공정 자동화 설비를 통해 생산과 재고 효율을 높이고 주문관리 시스템과 VOC 시스템을 고도화해 고객 대응 체계도 손보고 있다. 특히 동종업계 최초로 AI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통합방재센터’를 구축해 공장 내 안전사고와 위험 상황 예방 체계를 갖췄다.

해외시장도 넓히고 있다. 깨끗한나라는 지난 2022년 2월 베트남 지사를 설립했고, 회사 측은 2021년 대비 베트남 및 인근 국가 수출이 최근 약 20% 증가했다고 밝혔다.

유럽과 아프리카 백판지 시장 공략도 본격화해 2021년 대비 2024년 수출 규모가 450% 이상 늘었다. 생활용품 부문에서는 쿨링 생리대, 쿨링 타월, 물티슈 등 기능성 제품을 늘렸고, 2023년 7월 반려동물 브랜드 ‘포포몽’을 론칭했다. 2023년 11월 개설한 자사 온라인몰은 2025년 9월 기준 회원 수 20만명을 넘겼다.

ESG 성과도 가시권이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제지산업 특성을 고려해 깨끗한나라는 태양광 발전설비, 스팀 차압 발전설비, 질소산화물 및 TOC 저감 설비 등에 투자했다. 또 깨끗한나라는 2015년 이후 중대재해 0건을 유지하고 있고, 2022년에는 안전관리 우수사업장으로 산업부 장관표창을, 지난달 ‘제53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85년생인 김현정 SP삼화 대표는 변호사와 회계사 자격증을 보유한 인재다. 김 대표는 고(故) 김장연 전 회장의 장녀다. SP삼화는 지난 1월 김현정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하고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배맹달·김현정 2인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김 대표는 고려대 졸업 후 2012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뒤 2018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김 대표의 이력은 전통 제조업 오너가의 전형과 조금 다르다. 회계와 법률 자격을 모두 갖춘 뒤 다소 늦은 지난 2019년 삼화페인트에 입사했다. 이후 글로벌전략지원실장, 경영지원부문장 등을 맡아 해외 사업, 구매, 재경 업무를 총괄했다. 회사 측은 김 대표가 해외 계열사 관리와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 해외 사업 모델 기획과 설계를 담당해 왔다고 설명했다.

SP삼화는 사명부터 바꿨다. ‘삼화페인트공업’이라는 이름의 회사는 SP삼화로 회사명을 바꾸면서 이제 종합화학기업, 나아가 첨단소재 기업으로의 전환을 내세우고 있다. 페인트는 여전히 본업이지만, 자동차·전자·반도체·태양광 등 고부가 영역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혀 나갈 계획이다. 김 대표의 회계·법률·해외사업 경험이 주목받는 이유다.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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