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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의 본질은 독점이다. 기술을 공개하는 대신 일정 기간 배타적 권리를 부여해 연구개발 투자와 사업화를 촉진하는 것이 특허제도의 핵심이다. 공공 연구개발(R&D) 성과 역시 이 원리에 따라 운영돼 왔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은 특허를 확보하고, 기업은 기술이전을 통해 이를 활용한다. 기술료는 연구기관의 재원인 동시에 연구자에게는 중요한 보상 체계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공공특허를 둘러싼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현장에서 특히 중소기업 대표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국민 세금에 기반한 국가 R&D로 개발된 기술인데 왜 다시 높은 비용을 내고 활용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기술료 부담, 복잡한 협상 절차, 법적 불확실성 때문에 공공특허 활용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상당수 공공특허가 실제 산업 현장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범용 기술이나 플랫폼 기술, 초기 단계 기술처럼 산업 확산 가능성은 높지만 독점 사업화에는 적합하지 않은 특허들이 대표적이다.
현재 제도 역시 독점과 공공성 사이에서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 R&D 성과의 기술이전에서 원칙적으로 여러 기업이 활용 가능한 ‘통상실시권’을 채택하고 있다. 특정 기업에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전용실시권보다 공공성을 고려한 방식이다. 하지만 기술을 도입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경쟁사 역시 같은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 유인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의 공공특허 제도는 독점과 공공성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다 어느 쪽에서도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원화된 특허 운영 체계를 고민해 보면 어떨까? 즉, 독점성이 필요한 기술은 ‘전용특허’ 트랙으로 운영하고, 산업 확산 효과가 중요한 기술은 별도의 ‘개방특허’ 트랙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전용특허는 특정 기업에 독점 또는 준독점 권리를 부여해 과감한 투자와 사업화를 유도할 수 있게 하고 개방특허는 누구나 비교적 낮은 비용과 간단한 절차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기술 확산을 촉진하는 모델이다. 특히 개방특허는 우리나라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는 일종의 ‘방어특허’ 전략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해외 기업이 관련 기술을 독점하기 전에 국내 기업들이 폭넓게 활용하도록 함으로써 기술 주도권을 지키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있었다. 영국의 ‘이지 액세스 IP’는 대학이 보유한 일부 특허를 로열티 없이 간단한 계약만으로 기업에 제공해 초기 기술의 시장 진입을 촉진했다. 대규모 수익 창출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기존 독점 사업화 구조에서는 활용되지 못했던 기술이 산업 현장으로 확산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개방특허는 연구현장의 특허 유지 부담을 줄이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연구과제는 종료되더라도 특허는 장기간 유지해야 하며, 매년 발생하는 유지 비용은 연구자와 연구기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개방특허를 통해 다수 기업이 기술을 활용하게 되면 특허 유지 비용을 사회적으로 분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개방특허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발명자에 대한 새로운 보상 체계 수립도 필요하다. 논문의 가치를 피인용 횟수로 평가하듯, 개방특허 역시 활용 기업 수와 기술 확산 효과를 새로운 성과 지표로 삼을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기술 확산에 기여한 연구자에게 별도의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공공 R&D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한 기술료 회수가 아니라 산업 발전과 사회적 가치 창출에 있다. 독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기술이 독점만으로 가장 잘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독점이냐 개방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기술의 특성과 산업적 파급력을 고려해 두 방식을 유연하게 병행하는 새로운 공공특허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병권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연구전략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