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체할 수 없는…감정적·즉흥적 연결의 힘

사람의 마지막 직업 앨리슨 J. 퓨 지음 김재경 옮김 추수밭


2019년 네덜란드의 한 슈퍼마켓에는 특별한 계산대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서두르지 않을 때 가장 좋은 계산대(Kletskassa)’. 손님이 직접 물건을 결제하는 셀프계산대의 침묵 사이, 이 계산대에선 계산원이 손님을 맞으며 대화를 나눈다.

초연결의 시대다. 사람들은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초고속통신망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연결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 인간적 의미의 연결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슈퍼마켓의 셀프계산대, 레스토랑의 키오스크, 은행 창구를 대체한 애플리케이션 등 우리의 일상은 점점 기계를 대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기술이 부상하면서 사람을 대체하는 자동화는 단순업무를 넘어 상호소통과 공감,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연결노동’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동화와 기계화가 사회 전반에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비용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앨리슨 J. 퓨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저서 ‘사람의 마지막 직업’에서 이러한 현상을 ‘탈개인화(de-personalization)’로 진단한다. 개인의 행동과 선호가 데이터로 환원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고유한 개성과 독자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고 ‘재개인화(re-personalization)’를 이루기 위한 마지막 직업으로 ‘연결노동’에 주목한다. 그는 상담사, 목사, 교사, 치료사, 의사, 지역사회운동가, 미용사 등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연결노동이 알고리즘으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가치임을 강조한다.

책에서 연결노동은 상대를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인식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상황에 맞게 반응하고, 상호이해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는 “연결노동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교류라는 점에서 인간 고유의 활동이자 알고리즘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연결노동이 사라지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와 연결돼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속감을 채우는 것은 식욕을 채우는 것만큼이나 강렬한 욕구”라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사람들이 함께 형성해야 하는 인간적 연결”이라고 말한다.

물론 연결노동의 자동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자동화는 연결노동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인간은 더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컴퓨터가 정보 처리와 분석을 담당하는 대신 인간은 감정과 관계형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연결노동의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그는 “사회적 위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연결노동을 제공하는 반면 정작 자신들은 자동화된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미래가 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돌봄노동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연결노동의 가치를 다시 돌아볼 필요도 있다. 연결노동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지만 동시에 측정 가능한 성과로 완전히 환원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긱(Gig) 경제를 살아가는 연결노동자들은 일회용품처럼 취급받고 사명감이라는 이름 아래 고강도 노동을 홀로 감당한다. 저자는 “연결노동은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노동임에도 단편적으로만 이해될 뿐 충분한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결노동을 중심으로 인간다움과 사회적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해답은 기계를 몰아내는 데에 있지 않다. 특히나 연결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술의 과장된 약속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컴퓨터와 봇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효과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손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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