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못 행사하는데 왜 돈 내나”…독일 내 불만 고조
![]() |
| 지난 4일 14일 미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보리 회의가 진행 중인 모습 [AP]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독일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탈락한 뒤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야권이 이를 ‘외교 참사’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유엔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는 독일이 기여금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5일(현지시간)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에 따르면 비상임이사국 선거 탈락 소식이 전해진 직후 헤센주 정부는 유엔 분담금 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집권 기독민주당(CDU) 소속 만프레트 펜츠 헤센주 국제장관은 “세계 최대 경제국 가운데 하나인 독일이 중요한 국제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유엔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왜 그렇게 많은 돈을 계속 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독일유엔협회(DGVN)에 따르면 독일이 2024년 유엔에 지출한 금액은 약 44억유로(약 7조9000억원)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독일은 의무 분담금이 미국·중국·일본보다 적지만 난민·식량·보건·아동 등 개별 기구에 자발적 기부 형식으로 내는 돈이 전체 기여액의 80%를 넘는다. 유엔은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재정난을 겪고 있다.
분담금 축소 주장은 독일 정부가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고도 국방비와 인프라 투자를 위해 막대한 빚을 내는 와중에 나왔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내년에 새로 조달해야 하는 부채가 1965억유로(351조9000억원)에 달한다.
요한 바데풀 외무장관은 비상임이사국 투표에서 탈락한 당일 정부 재정적자를 언급하며 “(유엔 프로젝트) 참여 여부는 개별 사안을 살펴봐야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독일의 이익을 좀 더 분명히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사국 탈락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지자 이튿날 “지금까지 한 것처럼 유엔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며 분담금 삭감에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유엔에 막대한 돈을 내고서도 회원국들에게 외면받자 정부 외교정책의 총체적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스라엘을 감싸고 미국 눈치를 보느라 글로벌사우스(남반구 신흥국과 개도국) 국가들의 반감을 샀다는 것이다. 녹색당은 “독일은 지난 몇 달 동안 국제무대에서 신뢰를 크게 잃었다”며 남미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의 무관심과 오만한 발언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해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연 브라질을 깎아내리는 발언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는 브라질에서 귀국한 뒤 “(기내에서) 함께 있던 기자들에게 ‘여기 남고 싶은 사람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모두들 독일로 돌아오게 돼 기뻐했다”고 말했다. 에두아르두 파에스 리우데자네이루 시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나치’, ‘히틀러의 부랑자 아들’이라고 직격했다.
독일은 지난 3일 투표에서 104표를 얻는 데 그쳐 오스트리아(134표)와 포르투갈(131표)에 서유럽·기타그룹(WEOG) 몫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내줬다. 이사국으로 선출되려면 전체 회원국의 3분의 2 이상, 최소 127개국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독일이 2018년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될 당시 전체 회원국의 96.8%가 찬성했으나 이번에는 54.7%에 그쳤다.
다른 나라들도 독일의 대외정책에 국제사회가 반대표를 던졌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오스트리아 ORF방송은 베아테 마이늘라이징거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에게 중동전쟁 등에 대한 독일의 입장을 국제사회가 거부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마이늘라이징거 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오스트리아가 작은 나라지만 믿을 만한 파트너이자 가교 역할을 한다는 신호”라고 답했다.
유로뉴스는 “독일은 명백히 신뢰를 잃었다. 정치적으로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경제적으로는 쇠퇴하는 국가로 여겨진다”며 “독일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논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