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해외법원 관할, 구제포기 속출
알리·테무는 시정, 해외OTA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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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윤(가명) 씨는 베트남 나트랑 여행을 위해 트립닷컴에서 항공권을 예약했다가 결항으로 취소를 요청했다. 그러나 트립닷컴은 약관을 근거로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김 씨는 구제 방법을 찾아봤지만, 법적 대응을 하려면 싱가포르 법원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포기했다.
여름 피서철을 앞두고 해외 온라인여행사(OTA) 트립닷컴과 아고다가 국내 소비자와의 분쟁 관할을 해외 법원으로 정한 약관을 운영하면서 소비자 권리구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8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7월까지 접수된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아고다 2190건, 트립닷컴 1266건으로 4년 반 동안 두 플랫폼에서만 3400건이 넘는 소비자 피해가 접수됐다. 그러나 위 사례처럼 구제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이들이 더 많다. 두 OTA가 국내 이용자 약관에 분쟁 발생 시 싱가포르를 관할 법원으로 지정해놓은 탓이다.
실제 중국계 OTA인 트립닷컴 이용약관 제12조는 “본 약관 및 이로부터 발생하는 분쟁이나 소송은 싱가포르 법률에 따라 적용되고 해석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용자가 거주 국가의 법정에서 분쟁 또는 소송 처리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박탈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법조계에서는 형식적 안전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해당 조항의 단서 문구는 해석상 혼선을 유발해 소비자의 법적 예측 가능성을 저해한다”며 “약관법 제6조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고 설명했다. 약관법 제6조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거나, 고객이 예상하기 어렵거나, 계약상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을 공정성을 잃은 조항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제사법 제47조 제1항 역시 소비자계약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더라도 소비자의 일상거소가 있는 국가의 강행규정에 따라 부여되는 보호를 박탈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국내 소비자가 한국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글로벌 플랫폼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구조라면, 사실상 법망을 우회하는 약관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국계 OTA인 아고다도 마찬가지다. 결제 관련 사안에 한해서만 국내 법인인 아고다페이먼트코리아 약관을 적용하고, 예약·취소·환불 등 핵심 분쟁은 싱가포르 법원을 관할로 하는 글로벌 약관을 적용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장 빈번한 예약·취소·환불 분쟁이 정작 해외 관할로 넘겨지는 셈이다.
이런 구조는 면책조항에서도 반복된다. 트립닷컴과 아고다 모두 시스템 장애나 해킹 등에 따른 손해 책임을 폭넓게 제한하고 있어, 약관법상 손해배상 범위 제한 금지 규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안 측면에서도 두 업체는 지난해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P) 미인증 문제가 제기됐고, 트립닷컴은 중국 국가정보법에 따른 정보유출 우려가 국정감사에서 거론된 바 있다.
트립닷컴의 논란은 약관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금융위원회에 선불업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웹사이트 언어 설정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기프트카드를 판매하다 지적을 받았고, 이후 별도 사전 고지 없이 이용을 제한해 소비자 혼란을 야기했다.
무엇보다 다른 국내 기업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목소리가 크다.
공정위는 2023년 카카오모빌리티 등 국내 6개 택시호출 사업자의 약관을 심사해 데이터센터(IDC) 장애와 디도스(DDoS) 공격에 대해 사업자를 무조건 면책하는 조항을 불공정 약관으로 보고 시정 조치했다. 국내 플랫폼엔 시스템 장애 책임을 묻는 반면 해외 플랫폼의 유사 조항은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해외 관할권 지정 약관은 이미 공정위가 문제 삼은 전례가 있다. 공정위는 2024년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분쟁 관할 법원을 각각 홍콩과 싱가포르로 정한 조항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외국계 OTA의 유사 약관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해당 조항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 “약관 전체 문구와 맥락, 적용 대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판단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문제가 있는 조항인지, 조사 대상이 될 사안인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제보된 내용을 참고해 관련 조항의 의미를 확인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에서 조 단위 결제액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외 OTA가 막상 분쟁이 생기면 싱가포르 법원으로 가라는 건 소비자 기만”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알리·테무에 시정조치를 내린 것과 비슷한 수준의 조치를 해외 OTA에도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훈·양영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