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년 5조원으로 또 확대…공시범위만 3171개사
거래소 공시 대신 사업보고서 법정공시로 즉시 시행
경제계 “기업 부담 가중…준비 부족에 혼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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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오른쪽)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 관련 당정 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금융위원회가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지속가능성(ESG) 공시를 의무화한다. 기존 방안이 30조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게다가 이듬해에는 자산 기준이 절반으로 다시 줄어 공시 범위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기업만 약 3200개에 육박할 예정이다.
경제계에서는 즉각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준비를 미처 마치지 못한 상장사들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처벌 핵심 기준인 고의성을 두고도 논쟁이 예고됐다.
금융위는 8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당초보다 공시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의견수렴안에서는 2028년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의무화를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최종안에서는 기준을 10조원으로 낮췄다. 2029년에는 연결자산총액 5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2030년에는 2조원 이상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공시 범위도 많이 늘어난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8년 공시 의무 대상 상장사는 107개사이며, 주요 종속회사 184개사를 포함한 공시 범위는 총 291개사다. 2029년에는 공시 의무 상장사가 157개사로 늘어나고, 주요 종속회사 3014개사가 공시 범위에 포함돼 전체 공시 범위는 3171개사에 달한다.
2030년 2조원 기준이 적용될 경우에는 공시 의무 상장사 259개사와 주요 종속회사 3490개사 등 총 3749개사가 공시 범위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공시 시점에는 대상 기업 수와 종속회사 수는 변동될 수 있다.
공시는 한국거래소 공시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법정공시로 시행된다. 금융위는 2028년부터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를 통해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재무제표와 동일한 시점에 함께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기존 의견수렴안에서는 거래소 공시로 시작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사업보고서 공시로 즉시 시행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기업 부담을 고려한 면책 장치도 마련된다. 제도 시행 초기 3년 동안은 기업의 적극적인 공시를 유도하기 위해 공시정보 전반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손해배상과 행정제재, 형사처벌을 한시적으로 면제한다.
그러나 고의적인 그린워싱(위장된 ESG)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과 행정제재를 그대로 적용해 공시 신뢰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고의성을 따져서 필요한 경우에는 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스코프3 공시는 예정대로 3년 유예된다. 스코프3는 협력업체 등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산정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필요한 점을 고려했다.
이와 관련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 관련 당정 협의’에서 “일본보다 더 적극적인 안”이라며 “국내외 투자가들로부터도 공시 대상 확대, 법정 공시 조기 전환 등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ESG 공시는 기업이 기후를 비롯한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리스크와 기회를 식별하고 이에 대한 기업의 의사결정, 리스크 관리 체계 전반을 새롭게 구성하도록 해 경영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경제계에서는 즉각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경제단체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30조원을 기준으로 잡은 초안은 ESG 공시를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이었는데 그게 사라졌다”며 “이제는 당장 직접 공시대상 기업만 107개사에 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2028년 시행이라고 하지만 2027회계연도 정보를 2028년에 공시하는 것이어서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당장 내년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법정공시로 시작하는 점도 부담으로 꼽힌다. 당국이 3년간 처벌을 면제하겠다고 했지만 고의성 여부를 따지겠다고 한 만큼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거래소 공시 수준이었다면 형사처벌 우려는 상대적으로 작았겠지만, 법정공시가 되면서 기업들이 처벌 리스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당국이 3년 면책을 두겠다고 했지만 고의성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도 또 다른 혼란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계는 전날에도 공식 성명을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법정 공시가 바로 시행될 경우 이런 불확실성에 따른 법적 리스크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공시 대상을 넓힌 것은 매우 악수”라며 “현재 미국은 ESG 공시에 소극적이고 유럽연합(EU) 정도가 적극적인데, 우리가 굳이 이렇게 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 제도 변화와 기업 준비 상황을 더 지켜본 뒤 단계적으로 추진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