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부터 황당 설정 직설화법 뻔한대사…
느닷없는 멜로에 캐릭터 일관성도 잃어
김태희의 변화무쌍한 감정변화 돋보여
흉작은 깊었다. ‘별에서 온 그대’(SBSㆍ2014년 2월 종영) 이후 방송 3사에선 히트작이 나오지 않았다. ‘용팔이’(SBS)는 가뭄을 끊었다. 시청률 하향평준화가 이어지던 드라마 시장에서 1년 6개월 만에 20%를 넘겼다.
방송관계자들은 물론 드라마 작가들 역시 ‘용팔이’를 통해 희망을 봤다. “시청률은 더이상 안 되는 건가” 싶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혼란스러울” 즈음 이 드라마가 등장했다. ‘용팔이’의 흥행에 작가들은 “재밌는 드라마는 보는구나. 시청층이 이탈한 것은 아니구나”(SBS ‘육룡이 나르샤’ 김영현 작가)라며 안도했다.

‘용팔이’의 초반 상승세는 숨가쁜 전개에 있었다. 배경은 병원이었다. 도로 위 만큼이나 빈부격차의 구조화가 고착된 공간이다. 양극화가 빚어낸 사회문제가 툭툭 튀어나온다. 온갖 계층이 드나들지만 결코 섞이는 법은 없다. 가진 자의 세계는 범접할 수 없는 특수공간이며, 그 안의 월급쟁이는 철저한 갑을관계로 산다. 6인실의 환자는 홀대받는 지도 모른채 홀대받는다. ‘용하다’는 의사는 동생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불법 왕진의가 된다. 그에겐 환자 대신 ‘고객’이 있다.
4회까진 ‘주원의 원맨쇼’가 신통방통했다. 주원은 1회 이후 ‘연기신’이 됐다. 김태희는 매회 후반부 깨어날 뿐인데 ‘미친 존재감’이 됐다. 극단적인 계층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자 시청자의 쾌감은 날개를 달았다. 사실 드라마는 복수극이다. ‘그렇다’고 김태희는 드라마 시작 전 본지 방문에서 이야기했다. 이 모든 판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김태희ㆍ한여진 역)을 위해 짜여졌는데, 애당초 남자 캐릭터를 위한 설명이 길었던 셈이다. “병원 세트에 돈을 많이 들였다”는 관계자의 귀띔이 있었다. 공주는 왕관을 써야하나 이복오빠의 음모로 3년간 잠들어 있었다. 모든 음모를 자는 동안 목격했으니 깨어나면 당장 복수를 시작할 기세였다.
드라마가 치밀함을 잃은 건 김태희가 눈을 뜨면서였다. 사실 여주인공은 죄가 없다. 캐릭터가 궤도를 이탈했다. 드라마는 ‘용한 돌팔이’ 주원의 도움으로 깨어난 공주님을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로 만들었다. 공주님의 타오르던 복수심은 ‘수퍼 히어로’ 앞에서 와르르 무너진다. 의사 선생님 역시 정의 대신 사랑을 택한다. 시청률도 17%대로 떨어졌다. 시청자는 드라마를 의심했다. 결국 ‘기승전멜로’냐는 조롱이 나왔다. ‘복수’ 대신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인 ‘멜로’가 맥을 끊었다. 기존의 공식을 따르지 않아 훨훨 날던 드라마는 공식(기승전멜로)를 답습하자 뭇매를 맞았다.
멜로가 훅 들어와 지지부진해진 ‘용팔이’는 11회부터 다시 복수극을 예고했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겠다는 선전포고가 10회 말미 등장했다. ‘낚시’ 만큼은 수준급이었다. 예고와 달리 지난 11, 12회에서 빚어지는 사건에 긴장감은 실종됐다. 전반부에 무기들을 다 써버린 탓인지 사건은 ‘전환의 연속’이지만, ‘용팔이’는 이미 심심해졌다. 여주인공은 또 다시 돌팔이 의사를 기다리는 순정녀가 됐다.
방송사 드라마국 관계자들은 히트 드라마의 요건은 “대본, 연출, 연기의 조화”라고 말한다. 그 가운데 “가장 기본은 대본”이라고 꼽는다. 드라마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용팔이’의 현재는 구멍난 스토리가 빚어낸 참사다. 심지어 표절 의혹에도 휘말렸다.
‘용팔이’가 초반부터 보여준 황당한 설정들은 둘째치자. 드라마는 시작부터 노골적이었다. ‘은유의 미덕’을 모른다. 흔해빠진 계층사회도 뻔하지 않게 버무리면 호평이 따라온다. ‘용팔이’는 그러나 끊임없는 직설화법으로 계층사회를 구분하고, ‘현대판 히어로’의 입을 통해 뻔한 대사를 전달한다. 그러다 주연 캐릭터는 일관성을 잃었으니, 이쯤하면 드라마 초반 시청자의 열광엔 실체가 없다.
드라마가 산으로 가니 버려야 할 장면은 많아졌다. 허술한 스토리는 멜로로 치장해 시간을 잡아먹는다. 보여줄 게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덜컥 든다. 배우들도 캐릭터가 헷갈릴 법 하다. 변화무쌍한 감정변화를 보이는 김태희는 이전만큼 논란을 부르는 연기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김태희가 등장하는 장면은 CF가 따로 없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포착한다. 눈물도 미소도 분노도 저마다의 각도에서 최상의 것을 연출한다. 캐릭터 해석력 등 배우의 연기를 볼 겨를이 없다. 제작진의 가장 치밀한 연출력이다.
완성도가 떨어진 공간엔 PPL(간접광고)이 자리를 차지한다. 방구하기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생수 브랜드를 노출한다. 점심식사는 죽과 비빔밥이다. 공주님의 손엔 명품 USB 키링을 쥐어준다. 시청자는 굳이 ‘매의 눈’이 될 필요도 없다.
이 드라마는 누구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시청률을 써냈다. 매회 생방송 스케줄을 소화해 낮은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숫자는 건재하다. 12회분에선 다시 19%대로 올랐다. 그 여세에 힘 입어 2회 연장을 확정했다. 이미 ‘용팔이’는 첫 회부터 광고도 다 팔아치웠다.
방송사 입장에선 수입도 쏠쏠한 흥행작이다. 드라마 역시 복수가 미적지근하니 보여줄 게 남아있다. 이제라도 구멍은 메워줄 필요가 있다. 드라마의 기본은 ‘대본’이다. 아무리 길고 나는 배우라도, 간만에 독을 품은 배우라도 이런 드라마라면 오점이다. 물론 시청률은 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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