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개최 2023 세계한상대회 대회장 맡은 하기환 한남체인 회장
한인사회 ‘마당발’…넘치는 단체활동경력 촘촘한 인맥
“마지막 봉사…치사하다는 소리 듣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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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사회와 한국 기업을 이어주는 글로벌 네트워킹 플랫폼 세계한상대회(World Korean Business Convention)가 2023년에는 출범 21년만에 처음으로 해외에서 개최된다. 주최측인 재외동포재단(이사장 김성곤)이 격년제 해외 개최를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750만 재외동포의 1/3이 넘는 250여만명이 거주하는 미국이 그 상징성면에서 첫 해외개최지역으로 선정됐다. 미국내에서도 5개 도시가 유치경합에 참여한 끝에 캘리포니아 남부(남가주) 오렌지카운티가 개최지로 선정됐다. 2023년 10월 11일부터 14일까지 디즈니랜드와 이웃하고 있는 애나하임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주관단체가 된 미주한인상공인 총연합회(회장 황병구·이하 미주한인상의 총련)는 지난 4월 개최도시가 결정되자마자 곧바로 조직위원회를 구성, 1년 6개월을 앞두고 준비에 돌입했다. 한국에서 열릴 때는 조직위원회 구성 등 준비과정이 빨라야 개최 10여개월전부터 시작되는 데 비하면 상당히 일찍 팔을 걷어부친 셈이다.
그만큼 미주한인상의총련측이 첫 해외개최의 성공 여부를 막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증표다. 한상대회 운영규정에 따르면 대회가 한국내에서 열리면 운영위원회가 대회장을 선임하지만, 재외동포재단 경제단체가 대회를 주관하면 조직위원장이 대회장과 공동대회장을 선임한다고 돼 있다.
조직위원장을 맡은 황병구 미주한인상의 총련 회장은 대회의 ‘얼굴’이 될 인물을 점찍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기환씨가 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씨가 누구인가.
미주 동포사회, 특히 남가주 한인커뮤니티에서 거의 모든 단체의 장을 섭렵한 주인공이다. 로스앤젤레스(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을 거의 사반세기 간격(1992~94년,2017~19년)으로 두차례나 역임한 것을 비롯,남가주한인경제단체협의회 회장,민주평통 LA 지역협의회 부회장 , LA폭동 피해지원을 위해 설립된 한미구호기금재단 회장,LA 한국의날 축제위원회 준비위원장,한국의 날 축제재단 이사장 등을 거친 끝에 2000년부터 4년 동안 2년임기의 LA한인회 회장을 연임했다.
코리아타운 시니어센터 건립위원장으로서 번듯한 커뮤니티센터를 짓는 데 큰몫을 했고 LA시 정부와 커뮤니티의 소통창구인 윌셔주민의회 의장으로서도 10여년 가까이 활동했다. 미주한인상의 총련 회장과 세계한상대회 리딩CEO로도 이름을 올렸다.
이력과 단체장직을 명함에 넣으면 앞뒷면을 깨알같이 빼곡히 채우고도 모자랄 판이다.그래서 그의 명함엔 ‘하기환’ 이름 석자 뿐이다. 굳이 그 직함들을 새겨넣어 소개하지 않아도 이름만 있어도 알 만한 이는 다 안다는 자부와 자존의 표현일 것이다.
LA시 정부는 지난 2013년 하씨의 활동과 공로를 인정해 코리아타운 한복판 LA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위치한 사거리를 ‘닥터 하기환 스퀘어’로 명명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닥터’라는 경칭을 붙였다. 한국 정부도 지난 2020년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훈포장 가운데 가장 훈격이 높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하씨에게 수여했다.
“대회가 미 서부지역에서 열리는 만큼 동부나 다른 지역에 계시는 분 보다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분을 먼저 염두에 뒀지요. 개최도시가 오렌지카운티 애나하임이지만 동포사회가 밀집한 LA지역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싶었습니다. 단체활동 경험과 경력으로 봐서 하 회장 만한 분 말고 달리 생각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한때 하씨가 미주한인상의 총련회장을 맡았던 시절 자주 소통했던 인연으로 ‘하 회장’으로 칭한 황병구 조직위원장은 “인품도 훌륭하지 않으냐”고 했다.
황 위원장은 대회장의 역할을 크게 네가지로 정리했다. 한상대회의 창립멤버랄 수 있는 60여명의 리딩CEO그룹을 한데 묶고, 미국 50개주의 한인사회 지도자들을 모으는 한편 한국 대기업의 미국법인이 많은 미 서부지역 한인경제계의 참여를 유도하고,무엇보다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을 끌어들이는 일 등이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적임이 하씨라는 데에는 개최도시의 주관단체인 오렌지카운티 한인상공회의소 노상일 회장도 동의했다. 노 회장은 내년 한상대회 본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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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위원장과 노 본부장은 지난 5월 LA에서 하씨를 만나 대회장을 맡아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허다한 단체장직 경험을 감안할 때 마다할 리 없다고 여겼지만 뜻밖에도 하씨는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내 나이 일흔 중반입니다.똑똑하고 젊은데다 능력 넘치는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데 또 나서겠어요.후진세대에 기회를 줘야지요”
하씨는 황 위원장 일행을 만났을 때 일언지하에 사양하고 돌려보냈다고 했다.
“2년전 한국정부가 고맙게도 훈장까지 줬잖습니까. 그걸로 동포사회 봉사는 잘 마감한 거지요. 이제 개인적인 재미(personal fun)를 최우선으로 삼고 남은 인생을 신나게 살겠다고 맘 먹었는데…”
황 위원장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처음 대회장직을 제안하고 거절 당했지만 그 뒤로도 서너번 더 전화하고 또 만났다. 플로리다 올랜도에 거주하는 황 위원장은 한달이면 두세차례씩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본업인 화훼비즈니스는 뒷전이었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역시 없다. 하씨는 황 위원장의 집요한 설득과 5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다하지 않고 오가는 열성에 결국 대회장을 맡기로 했다. 재외동포재단 김성곤 이사장은 하씨가 거의 수락할 듯하다는 황 위원장의 전언에 ‘정치인 출신답게’ 쐐기를 박는 한수를 뒀다.공식 보도자료를 발표해버린 것이다.
“거의 모든 매체에 도배가 되다시피 했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거지요. 허허”
하씨는 ‘더 이상 단체활동에 관여 안하겠다’던 공언이 실언이 돼버렸음에도 황 위원장과 재외동포재단 김 이사장의 ‘영입작전’에 기분 상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일단 약속을 했으면 반드시 지킨다는 게 내 좌우명입니다. 의리를 가장 중요시하거든요”
하씨는 대회장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에 미국내에서는 물론 한국과 세계 각지의 단체와 지인들로부터 축하전화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사는 곳이 어디건 간에 우리 한인동포들은 하나라는 믿음이 새삼 강하게 굳어지더군요. 축하 인사 끝에 뭐든 도울 일 있으면 알려달라고들 하니 내년 한상대회는 잘 치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씨는 8월말 조직위원회와 대회장 자격으로 처음 회의를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적어도 1500명은 참가하는 큰 대회인만큼 보통 일은 아니지요. 조직위원회에서 애나하임 컨벤션센터 인근에 호텔 객실 750개를 벌써 예약했다더군요. 오렌지카운티랑 LA의 상공회의소 멤버들끼리 잘 협력하도록 기능도 세분해야하고…1년 이상 남았다지만 벌써 마음이 급해져요”
한국내에서 열린 한상대회는 대략 15억~20억원의 예산으로 치러진 것으로 알려진다.동포재단과 개최 지자체에서 80% 가량을 지원했다고 한다.
내년 21차대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첫 해외개최 예산은 433만달러로 책정돼 있다. 이 가운데 30% 정도인 130만달러를 조직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나머지 300만달러 이상을 한국정부의 지원에 기대하고 있다. 만만찮은 일이다.
황 위원장과 노 본부장은 7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 2주 이상 한국에 머무르며 염천 더위 속에 중앙정부와 국회, 지자체 등을 순방하며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오렌지카운티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돼야 2025년,2027년 등 격년마다 개최하게 될 해외 한상대회가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한국에서 관계기관을 방문하고 다니는 데 독립운동하는 기분이 이렇겠다 싶더라고요”
아직 시간이 많다고 여겨서일까, 한국쪽의 반응은 그리 달아오르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럴 겁니다. 조직위원회와 회의를 갖고 10월에 한상대회 운영위원회에서 대회장 선임을 승인하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겁니다. 그때까지 나름대로 내 인맥을 정리해서 접촉계획을 구상하고 구체적으로 뭘 요구할 건지 밑밥을 뿌리고 있어야지요.”
하씨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내에 7개 대형 슈머마켓을 거느린 한남체인 소유주로서 연매출 2억달러 기업의 최고경영자다. 한국산 농수산식품을 1년에 5천만달러 가까이 미국으로 수입하는 바이어로서 한국 지자체와 정재계에 걸친 네트워크가 폭넓다.
부동산관리회사도 따로 운영하면서 그의 자산은 5억달러는 족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년 한상대회가 만에 하나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면 하씨 개인의 재력이 ‘보험’ 노릇을 할까.
“하하하,그런 얘길 왜 해요. 내 푼돈 아니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어요.”
씨줄 날줄이 얽히고 설킨 그의 촘촘한 인맥이 발휘할 성과를 지켜보라는 말이다. 게다가 그 또한 쐐기를 박는 한수를 둔다.
“마지막 봉사로 임하는 건데 하 아무개 치사하더란 소린 듣고 싶지 않습니다”
황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