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조주택 지붕 경사·창·복도 통해 공간변주
집안에 미끄럼틀·계단 있어 놀이터로 활용돼
목조건축·리모델링 등 재활용의 가치 중요시
이재혁 에이디모베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직접 설계한 건축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600년 전부터 작은 필지와 한옥들이 모여 있는 서울시 종로구 명륜1가는 획일화되지 않은 도시조직에 건물과 건물 사이가 유난히 좁고 밀도 있는 동네다. 빽빽한 건물 가로수길이 형성된 느낌마저 드는 이곳을 걷다 보면 시선을 강탈하는 경사진 하얀 집이 보인다.
이곳의 이름은 우다당(友多堂)이다. ‘친구가 많은 집’이라는 의미의 해당 집에는 직업이 화가인 건축주가 예전부터 사람이 많이 살던 동네에 갤러리·작업실과 사는 공간을 한 집에 마련해, 많은 이들이 찾고 놀러 오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는 염원이 담겼다. 이 집은 담장지정선(지구단위계획)까지 정해진 대지면적 72㎡ 규모의 작은 땅에 지어져, 각종 건축심의와 문화재 조사를 거치고 2022년 11월 완공됐다. 1층과 2층에는 갤러리와 작업실이 통유리로 개방돼 있고, 3층부터 5층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단독주택이다.
서울시 종로구 명륜1가에 시선을 강탈하는 경사진 하얀 집 우다당(友多堂) 전경 [김현수] |
이 건축물을 설계한 건 건축사사무소 ‘에이디모베’의 이재혁 건축사다. 이 대표는 “서울의 작은 필지에 여러가지 형태로 활용될 공동주택을 짓다 보면 일조권 제한·공간 활용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며 “건축 허가를 받고 절차를 거치는 일도 어렵고, 그만큼 구시가지에 주택을 지을 때 설계를 세심하게 해야한다”고 했다.
실제로 우다당은 공간 활용 측면에서 재미난 요소가 많다. 1층과 2층에는 작은 규모의 기획전을 무료 관람할 수 있는 갤러리 ‘공간아래’가 마련돼 있다. 이곳은 통유리로 개방돼 있어 외부에서도 작품을 구경할 수 있으며, 주출입구를 중심으로 스킵플로어(skip Floor· 바닥 일부 층 높이를 다르게 해 설계하는 방식)로 만들어진 두개의 층은 작은 오픈 공간을 가진 복층형 구조로 전시 개방감을 준다.
우다당 1층 갤러리 모습 |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진입하는 3층부터 5층까지는 단독주택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4층까지 오를 수 있으며 해당 층에는 주방과 식당, 그리고 아담한 규모의 야외 테라스가 있다. 이곳은 마당의 역할을 하고 여름철에는 수영장으로도 활용된다. 5층의 작은 공간은 서재로 꾸며졌다. 한 층의 면적이 전용면적 36㎡를 조금 넘는 점을 고려하면 가히 협소주택의 ‘끝판왕’이라 부를 만하다.
이 대표는 “협소주택을 지을 때 좁은 집을 넓게 보이게 하기 위해 다양한 건축기법을 사용한다”며 “우다당의 4·5층은 전면에서 보면 왼쪽 부분 모서리에 삼각형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겼다. 이곳에 큰 창을 달아 그림을 밖에서도 보일 수 있도록 연출해달라는 건축주의 요청 사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내부에서는 계단과 계단 사이 공간에 유리창이 마련돼 일조권과 넓은 시야가 확보된다. 이 대표는 “협소주택은 일반적인 형태로 만들면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다”며 “쓸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특정 계단실을 만들지 않고, 계단을 다양한 곳에 위치시켜 그로 인해 발생하는 크고 작은 틈 공간을 활용한다”고 했다.
계단실에 마련된 유리창 공간 |
복도와 창을 통한 공간 변주도 있다. 이 대표는 “시각적인 변주를 줘 같은 면적 내에서도 3차원적인 공간인식을 가능하게끔 디자인에 신경쓴다. 우다당의 삼각형 모서리 공간을 통해서 계단실이 좀 더 커보이게 만들고, 해당공간은 서재로 사용하는 식이다”며 “문을 다 열어놓고 생활할 수 있는 포켓도어 구조로, 문에 창과 유리문을 만들어 닫혀 있어도 개방감을 주고 평소 문을 열어놓을 때는 복도까지 이어져 공간이 훨씬 넓어지는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슷한 방식으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협소주택을 이미 2016년에 지은 적이 있다. 바로 자신이 직접 살고 있는 ‘달_놀이집’이다. 우다당과 같은 동네에 위치한 이 집은 구조와 사용목적 또한 유사하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이 사무실, 2층이 임대공방, 3층과 4층이 주거공간으로 구성된 해당 건축물은 기울어진 지붕으로 낮에는 풍부한 일조량, 밤에는 달빛이 들어온다 해서 ‘달_놀이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달_놀이집 전경 [에이디모베] |
이 대표는 “양평에서 단독주택을 많이 짓던 즈음 비슷한 구조로 서울에 직접 살 집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집 전체를 알뜰하게 활용하고, 사무실과 거주공간이 하나의 주택에 있어서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고 했다. 이어 “주택의 장점은 원하는 곳에 원하는 크기로 창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는 점이다. 아파트는 욕실에 대부분 창이 없는데 이 집은 창살이 있는 큰 창이 화장실에 있어 안방과 외부를 잇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안방을 꼽았다. “안방에서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코너 창을 통해 달과 별이 보인다. 잠에 들기 전 달이 신기해 침대 쿠션에 기대 앉아 책을 읽는 것이 버릇이 됐다”고 할 정도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달 구경’이 가능해진데에는 역설적으로 일조권 제한을 받아 경사진 지붕 설계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기울어진 지붕 모양으로 최고층을 설계하면 자연스럽게 사다리꼴 테라스 공간이 확보된다”며 “이곳에서 텃밭도 가꾸고 빨래도 널며 비나 눈이 많이 올때는 자연스럽게 쌓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방수 효과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형태가 될 수 있는 좁은 건물에 창의성을 더하기 위해 신경쓴다는 그는, 건축물 설계 시 건축주의 개성과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사전 설문조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 대표는 “개성을 잡아야만 그 사람의 집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설문지를 드려서 취미나 집에서 하고 싶은 것 등을 조사한다”며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나올수록 집은 재밌어지고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무한궤도 하우스 모습 [에이디모베] |
그는 이어 건축주의 개성 넘치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한데 어울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양평에 있는 ‘무한궤도 하우스’다. 이 대표는 “어린 아들과 딸이 있는 4인가구 집이었는데 가족회의를 거쳐서 가족 구성원 각각이 집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며 “아빠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큰 계단, 엄마는 집 안에서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걸 볼 수 있는 큰 창틀, 큰 아들은 집 안에 미끄럼틀, 딸은 다락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구체적인 요구사항에 설계도까지 그려준 가족을 위해 이 대표는 이 모든 걸 한데 버무려 재밌는 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이 집은 거실이 없다. 대신 커다란 계단이 펼쳐지고, 2층 복도에서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방으로 연결되는 미끄럼틀이 있다. 미끄럼틀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도는 집을 만들었다”며 “나중에 완성되고 가보니 집 계단에서 마을 사람들 30명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미끄럼틀이 온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해당 집에서 안 쓰는 책꽂이를 활용해 새로운 가구로 재활용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이 대표는 “애들이 사는 집이라 장난감이나 책이 많았다. 기존 집에 책꽂이가 많아 이를 재활용해 새로운 집에 계단 속에 들어간 책꽂이로 재탄생시켰다”며 “원래 쓰던 가구를 어울리게 재배치 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이처럼 건축에 있어 재활용의 가치를 중요시 여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누리게 될 공공건축물의 리모델링·증축·설계를 맡을 때 이러한 부분을 더 신경 쓴다고 한다. 이 대표는 “기존의 것을 최대한 보존하고 이질감 없게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충신연극공유센터의 경우 옛날 건물을 최대한 안 건드려서 당선돼 설계하게 됐고, 가회동 주민센터도 옛 동네에 어울리는 기존의 모습을 없애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외관에 쓰였던 기존 벽돌을 재활용했다”고 했다.
이러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 대표는 친환경 건축 자재의 필요성과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목조건축협회 건축가위원장으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입선을 한 경력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목조건축투어를 진행한 경력도 있다. 이 대표는 “목조 건축은 목구조 공사 내내 구성 과정을 볼 수 있어, 건축활동 중에는 거푸집 때문에 진행 상황을 볼 수 없는 콘크리트 구조보다 재밌다”며 “환경적으로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에너지가 덜 드는 자재라는 점이 매력적이고 건축물 폐기 후에도 재활용도가 높아 친환경적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대표는 사는 모습이 고정되지 않은 것처럼 시기 시기마다 관심 분야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건축을 지향한다고 했다. “최근에 개인적인 주택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때그때 프로젝트의 취지와 요구사항에 맞게 충실한 집을 만들면 재밌는 집이 나오더라”며 “건축에 완성은 없기 때문에 의뢰에 맞게, 테마에 맞게, 목적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건축가로 활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주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