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대못이라도 뽑아달라”…불황에 울고 규제에 또 운다 [2025 RISK가 온다]

대형마트 휴일 의무휴업 13년째 제자리
실효성 논란 속 야권은 규제 강화 추진
영세 프차 가맹사업법·근로기준법 우려


소비자심리지수 및 소비지출전망지수 추이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지만 유통업계에는 어느 때보다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고물가·고환율, 경기 부진 등으로 흔들리던 소비심리는 비상계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 세밑에 잇따라 터진 비극으로 인해 꽁꽁 얼어붙을 위기다. 설상가상으로 정국 불안이 이어지면서 현 정부의 유통산업 규제 완화 정책도 동력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소비 침체와 규제의 ‘이중고’에 처한 유통업체들은 냉가슴만 앓고 있다.

유통업계의 대표적인 규제인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은 지난해에도 정치권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1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12년 제정된 유통법은 대형마트에 대해 월 2회 휴일 의무 휴업, 영업시간 제한(0~10시), 의무 휴업일 및 영업제한시간 중 온라인 배송 금지 등 규제를 적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법안이지만, 그 사이 시장 환경과 소비 트렌드가 변하면서 실효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시장의 중심 채널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코로나19 등으로 비대면 소비 흐름이 가속화되면서다. 이처럼 시대가 달라지면서 유통법의 입법 취지가 약화되고, 되려 국민 불편을 키운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평일에 장보기 어려운 대도시 1인 가구나 맞벌이 부부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현재 대형마트는 온라인 새벽배송을 물류센터를 갖춘 수도권 및 일부 대도시에서만 할 수 있다. 물류센터 없이 점포에서 직접 배송할 수 없다는 법령해석 때문이다. 도서·산간 지역은 물론, 물류센터가 없는 지역에서는 새벽배송이 불가능하다. 지방의 정주여건이 더 열악해지는 부작용도 낳았다.

국민들의 인식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선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시도에도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동대문구, 충북 청주시 지역 소비자 520명을 대상으로 의무 휴업일 평일 전환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1%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53.8%)은 의무휴업 평일 전환이 다른 지역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국 혼란으로 정부 정책이 ‘올스톱’ 될 위기가 커진 데다, 야권에선 유통법 규제를 오히려 더 강화하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정혜경 진보당 의원 법안에는 규제 대상을 백화점·면세점·복합쇼핑몰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 법안은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지정할 수 없도록 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이 썰렁한 모습이다. [연합]


면세점 업계는 정국 불안과 환율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특허수수료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허수수료는 면세점 이익의 사회 환원을 위해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징수하는 제도다. 제도 초기엔 매장 면적이 특허수수료 기준이었지만, 업계가 호황이던 2014년 매출액으로 기준이 변경됐다.

정부가 지난해 말 특허수수료율 50% 인하 방침을 발표했지만, 업계는 이마저도 부담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 이후 계속된 중국인 관광객 급감과 고환율 영향 등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적자일 때는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는 지난해 4월 정부에 ‘킬러·민생규제 개선과제’를 전달하면서 특허수수료 산정 기준을 매장 면적 또는 영업이익 기준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규제 강화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가맹점주에게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가맹점주들이 연합회를 구성해 가맹본부와 거래조건을 협의하도록 하거나, 점주단체의 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을 때 가맹본부를 제재하는 등을 담은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민주당이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하는 법안도 발의한 만큼, 관련 이슈가 프랜차이즈 업계 및 편의점 등 관련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해 말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근로기준법이 소상공인 사업장까지 확대되면 PC방, 대리운전, 숙박업, 편의점 등 소상공인 업종 대다수가 폐업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정부와 국회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 채소판매대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고르는 모습. [연합]


홈쇼핑 업계는 송출수수료를 둘러싼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CJ온스타일이 송출수수료 갈등을 빚던 딜라이브, 아름방송, CCS충북방송 등 일부 케이블TV 유료방송사업자(SO)에 방송 송출을 중단하는 ‘블랙아웃’ 갈등은 정부 중재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아직 수수료 인하와 관련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불씨가 여전한 상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홈쇼핑 업계와 SO 채널 간 논의 테이블인 대가검증협의체를 수시로 열어 불리한 송출 대가 강요 금지 등을 담고 있는 ‘홈쇼핑 방송 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을 각 사업자가 준수했는지, 또 대가 산정 협상에서 고려할 요소가 적정했는지 등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업계는 협의체가 강제로 조율할 수 있는 게 아닌 데다, 양측 간 입장 차가 큰 만큼 송출수수료 기준을 적정 수준에서 손볼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그 밖에도 섬유업계에서는 환경오염시설 통합관리에 관한 법률(환통법)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폐수를 일일 700㎥ 이상 배출하는 염색가공업종 1~2종 기업에 대해서도 환경오염물질 배출 통합허가 완료를 마치도록 했는데, 영세업체가 대다수인 업종 특성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당국에 제출해야 하는 통합환경관리계획서는 폐수 배출 영향 분석, 통합공정도 작성 등을 위해 전문 컨설팅업체를 활용해야 해 비용이 불가피하다. 법률 적용 대상인 약 250개사가 쓰는 컨설팅 비용은 약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적용 대상을 일일 폐수 배출량이 2000㎥ 이상인 염색가공업종 1종 기업으로 조정하고 통합환경관리계획설 승인 완료 기한을 2027년 12월까지로 유예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의 모습 [연합]


한편 경기 부진과 탄핵 관련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가중되며 소비심리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 대비 12.3포인트 하락했다. 낙폭은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2020년 3월 이후 최대 수준이다. 현재와 비교해 6개월 뒤 지출 수준을 보여주는 소비지출전망CSI 역시 102로 전월보다 7포인트나 내렸다. 승용차 등 내구재(93→90)는 물론 준내구재인 의류비(97→91), 외식비(95→89) 등에서 지출을 줄일 것이란 응답이 많았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