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한국식 장보기에 나서다

"와,김치가 이렇게 종류가 많구나! 뭘 사야되지?" 제시카가 김치코너에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다.

“와,김치가 이렇게 종류가 많구나! 뭘 사야되지?” 제시카가 김치코너에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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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 부에나팍점이 그랜드 오프닝하는 날 장보기에 나선 제시카가 마켓 입구에서 일본식 북 두드리기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마켓에서 장을 봐야 진짜 한국아줌마죠”

떡볶이와 비빔냉면을 좋아하며 아줌마들과 수다 떨기가 취미인 제시카. 자기가 생각해도 ‘한국아줌마’ 다 됐단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마켓은 그녀에게 어렵다. 무엇을 사서 어떻게 해먹어야 할지 ‘대략 난감’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마켓에 어쩔 수 없이 꼭 가야 할 일이 생겼다고.

“트레이더 조에서 김치를 사다 먹었는데…. 어쩐 일인지 더 이상 팔지 않는다고 하더라. 우리 집 식탁에도 김치는 꼭 있어야 해서…. 한국마켓에서 김치는 어떤 걸로 골라야 하나?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김치도 있나?”

마침 제시카의 집 가까운 곳에 새로운 한인마켓이 대대적인 그랜드 오프닝을 한다고 해서 그곳을 목적지로 삼았다. 부에나 팍 ‘H마트’. 지난 9일 오픈 행사가 한창인 그곳은 완전히 잔칫집 분위기였다.

한국의 사물놀이에 중국의 사자춤, 일본 전통 북 공연까지. 날짜 제대로 잡았다.

‘H마트’의 등장으로 길 건너 ‘시온마켓’, ‘한남체인’과 더불어 삼파전이 시작됐다는 설명을 듣고 급 관심을 보이는 제시카. 과거 남편이 한국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어 한인 마켓의 유통구조를 조금은 알고 있다며 흥미로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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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의 2세 경영인 브라이언 권 대표가 제시카를 반갑게 맞이하며 마켓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랜드 오픈한 마켓답게 모든 것이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다. 3만 2500스퀘어피트에 달하는 매장규모도 상당하다.

입구에서 제시카를 알아본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한 한인단체장은 제시카의 유창한 한국말에 반해 부에나팍 시청 공무원들의 한국어 교사가 되어 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H마트’의 2세 경영인 브라이언 권 대표도 반갑게 제시카를 맞는다.

본격적인 장보기에 앞서 한국의 유명 화장품 ‘아모레’ 매장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평상시에 화장을 잘 하지 않는 제시카이지만 미국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브랜드인 만큼 일단 눈도장을 찍기로 했다. 한방 제품을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는 매장 직원에게 건네는 한마디도 영락없는 ‘한국아줌마’다.

“네~. 둘러보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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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 제시카가 시식코너에서 맛보기 냉면으로 출출함을 달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시식코너의 즐거움을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99센트 파격가에 세일하는 라즈베리와 파파야가 유난히 달콤한 맛을 자랑한다. 길게 늘어선 LA갈비 시식코너를 지나 시원하고 쫄깃한 냉면 맛에 푹 빠져본다. 만족스러운 표정의 제시카.

“공짜라서 더 맛난가?”

유난히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곳이 있다. 궁금한 건 또 못 참는 성격이다. 확인 결과 그랜드 오프닝 스페셜로 배추 한 상자 99센트 코너다. 같이 구경하는 제시카가 신기하고 기특한지 구매를 권하는 한국 아줌마들.

“한 박스 담아요~. 99센트래!”

“노노노. 한 박스나 사서 이걸 다 어떡하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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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시식코너에서 공짜로 맛보기에 신바람이 났다.

열혈 동물애호가인 제시카는 채식주의자다. 때문에 유난히 살아있는 해산물이 많은 ‘수산부’ 섹션 앞에서 눈이 휘둥그래진다.

살아있는 바다 가재를 보고 슬퍼하는 그녀에게 어찌 말할 수 있으랴. 회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 줄 아느냐고. 이름만큼이나 희한하게 생긴 수조 안의 ‘코끼리조개(미루가이)’를 보고 놀라는 제시카에게 할머니 한 분이 친절히 알려준다.

“날것으로 먹어도 좋고 죽을 끓여도 맛나!!”

설상가상으로 옆에서는 참다랭이(참치) 해체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다. 두 명의 스시맨에 의해 먹음직스럽게(?) 나뉘는 장면은 제시카의 태교를 위해 관람포기. 살짝 사진으로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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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에 잔뜩 쌓인 파인애플을 살펴보고 있는 제시카

수십 여가지 종류의 반찬섹션을 지나 드디어 당도한 김치섹션. 수십 여가지가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다. 역시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포기김치, 막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파김치, 갓김치, 동치미….” 훌륭한 한국어 실력으로 하나하나 꼼꼼하게도 읽어 내려가는 제시카가 대견하게 보인다.

“김치볶음밥 만들려면 어떤 김치가 맛있어요?”

“제일 오래되어 보이는 것으로 사세요”

“여기 오늘 문 열었는데…?!!”

이리저리 많이 웃고 많이 떠드느라 정신 없었던 제시카.

2시간여에 걸친 장보기 끝에 손에 든 것은 김치 한 병과 99센트 라즈베리 두 팩이 전부지만 마음만은 어느 장바구니보다 가득 찼다.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려면 시장에 가라’는 말은 미국에서도, 미국인에게도 통하는 듯 하다.

하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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