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일로만 느껴진다면 슬플것”

‘은교’로 대종상·청룡상 신인상 휩쓸어
‘몬스터’로 준비된 배우임을 입증
신인·중견감독 가릴 것 없이 러브콜

풋풋한 관능미, 정형화 안된 ‘날 연기’
‘차이나타운’서 롤모델 김혜수와 호흡
“로맨스나 코미디에도 도전해보고 싶어”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20대 여배우는 단연 김고은(24)이다. 2012년 영화 ‘은교’로 데뷔한 김고은은, 그해 대종상영화제와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휩쓸며 재능있는 배우의 탄생을 알렸다. 이후 김고은은 차기작 ‘몬스터’(2014)를 통해 운 좋은 벼락 스타가 아닌, 준비된 배우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올해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ㆍ제작 폴룩스픽쳐스)을 시작으로 ‘협녀, 칼의 기억’, ‘성난 변호사’, ‘계춘할망’까지 총 네 편의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신인·중견 감독 가릴 것 없이 김고은을 바쁘게 찾는 이유는 뭘까. 게다가 김고은을 박해일 전도연 김혜수 이선균 등 베테랑 배우들 옆에 세우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은교’의 정지우 감독은 “호기심을 일으키면서도 내면에 단단함과 자기중심이 있어 휩쓸리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김고은은 선배들이나 작품의 무게에 압도 당하지 않고, 분연히 존재감을 뽐냈다. 풋풋하면서도 관능미 넘치는 소녀부터 동생의 복수에 나선 미친 여자,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차이나타운에서 자란 아이까지, 그 어느 인물도 김고은이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힘들다.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20대 여배우 김고은(24)이 올해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ㆍ제작 폴룩스픽쳐스)을 시작으
로‘ 협녀, 칼의 기억’,‘ 성난 변호사’,‘ 계춘할망’까지 총 네 편의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묘하게 시선을 끄는 얼굴, 정형화 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연기는 그의 다른 작품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차이나타운’에서 김고은은 자신이 ‘쓸모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인물을 연기하지만, 실제 김고은은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지하철 보관함 10번, 난 이곳에 버려졌다”(일영의 내레이션)=‘차이나타운’은 대부업체 겸 심부름센터인 ‘마가흥업’의 보스 ‘엄마’(김혜수 분)와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져 이곳에서 길러진 아이 일영(김고은 분)의 생존기를 그린 범죄 드라마다. 일영은 어릴 때부터 ‘엄마’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까다로운 일수 업무를 척척 해낸다. 스크린 속 김고은은 여성성의 상징과도 같은 긴 머리와 화장, 예쁜 의상을 모두 버렸다. 표정 없는 말간 얼굴로 엄마가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낼 뿐이다. 김고은은 촬영 전 한준희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일영이라는 인물에 가까이 다가갔다.

“원래 감독님과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촬영 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무언가가 있어요. 혼자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촬영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또 촬영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건 연기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촬영 전에 캐릭터에 대한 의문이나 고민 지점을 해소하려고 해요.”

고민 끝에 결론 내린 ‘일영’이라는 인물은 “살기 위해서 사는 친구”였다. ‘엄마’는 어린 일영에게 “쓸모 없어지면 죽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보통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일영은 생존 자체가 절박한 아이인 것이다. 일영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점프컷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김고은은 영화에서 생략된 세월조차 자신의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영이 ‘차이나타운’에서 살아가며 체득했을 습관이나 특징, 일에 대한 대처 방식까지 고민했다.

김고은은 ‘일영’의 외양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스태프들과의 논의 끝에 머리나 화장, 의상 모두 최소한의 것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배우니까 ‘아이라인 정도는 그릴까’도 생각도 했지만, 라인을 그리면 번지는 스타일이라 수정하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과연 첫 촬영 때 아이라인을 그렸다가 화장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김고은은 결국 맨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화면에 예쁘게 보이는 것보단 흐름이 끊기지 않고 연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친절했어”(석현에 호감을 느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일영의 답)=김고은은 ‘차이나타운’을 통해 대선배 김혜수와 호흡을 맞췄다. 김혜수는 젊은 배우들이 앞다퉈 롤모델로 꼽는 대한민국의 대표 여배우다. 김고은 역시 시상식에서 마주친 김혜수에 대해 ‘멋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실제로 만난 김혜수는 생각보다 소탈하고 푸근했다.

“김혜수 선배님은 현장에서 버팀목 같은 존재였어요. 저 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너무 잘 챙겨주시고, 한 마디라도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세요. ‘어제 편집본 봤는데 네 연기 좋더라’ 이런 얘기를 해주시는데 현장에서 큰 힘이 되죠. 덕분에 더 신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허락해 주신 건 아니지만, 가끔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물론 김혜수는 카메라 앞에서 더욱 빛났다. 촬영이 시작되면 김혜수는 ‘엄마’ 그 자체였다. 덕분에 김고은을 비롯한 후배 배우들도 각자의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다. 김고은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 캐릭터의 속내도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일영이나 엄마나 변명을 하지 않아요.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죠. 차이나타운의 다른 식구들도 모두 그래요. 그게 그들이 살아온 삶이고 그들의 방식이죠. 벌어진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는 거예요.”

일영이 채무자의 아들인 석현(박보검 분)과 만나면서 엄마와의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언뜻 일영이 엄마와 등을 지면서까지 석현을 돕는 상황은, 두 사람의 교감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은 상황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일영이 살아온 삶을 떠올려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난생 처음 누군가의 호의를 느낀 일영은 ‘그냥 친절했다’는 이유 만으로도 석현을 돕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일영과 석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어요. 감독님과 의견이 일치했던 게 ‘단순한 남녀의 멜로로 보이면 안 된다’는 점이었죠. 일영의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애정이나 사랑을 느낄 사건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이 사람 괜찮네’라는 호감 만으로도 위험 부담을 감수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제 죽을 때까지 니가 결정하는 거야”(엄마가 일영에게 남기는 당부)=이번 ‘차이나타운’ 뿐 아니라 모든 작품이 김고은에겐 필모그래피 한 줄의 의미 이상이다.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작업하는 현장에서 김고은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중이다. 그는 작품을 거듭하며 ‘과정’ 자체의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가 공동 작업이라는 점에서, 최상의 효과를 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고민해요. 특히 선배님들과 작업하면서 그분들의 세월을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감사했어요. 몸으로 부딪혀서 느끼고 배워야 하는 부분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하는 느낌? 김혜수 선배님을 비롯한 여러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다시 한 번 배우로서의 자세 등을 돌아보기도 했어요.”

김고은에게 ‘연기’는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다. 그는 “살면서 무언가에 그렇게 열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가장 부지런하게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일이 연기 밖에 없더라”고 멋쩍게 웃었다. 지금까지 무거운 작품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해 왔지만, 로맨스나 코미디 연기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연기하는 순간을 정말 즐기고 싶어요. 언젠가 연기가 단순히 일로만 느껴지는 날이 온다면 슬프겠죠. 그 점을 계속 경계하면서 나아갈 거예요.”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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