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 기자의 채널고정] 미스터리의 힘…학교드라마, 학교에 갇힌 틀을 벗다

정형화된 학교물에 쌍둥이 설정 흥미 유발
예측 못하는 장르적 플롯 가미 긴장감 불러
‘나는 누구지?’청소년시청자에 끝없는 질문
피해-가해자 바뀐 설정…기성세대 비판까지

살벌하고 잔혹하다. 이번에도 학교는 병든 공간이었다. 집단폭력ㆍ왕따ㆍ성적 비관 등 지옥같은 고교생들의 하루살이가 에피소드로 나왔다. 그 나이의 풋풋함도 그대로였다. 열여덟 살 소년ㆍ소녀 로맨스는 젊어진 부모 시청자의 마음도 흔들었다. 청소년 드라마의 정통적인 방식이다. 주시청층은 10대와 40대, “자녀와 부모가 함께 혹은 따로 시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학교’ 시리즈가 올해에도 돌아왔다.

KBS2 ‘후아유-학교2015’는 전작(블러드)의 부진을 이어받은 3%대로 출발, 9일 방송된 14회 기준 8.1%(닐슨코리아 집계ㆍ전국 기준) 기록하며 두 배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1999년 첫 출발한 KBS 드라마국의 간판 브랜드로, ‘학교’ 시리즈는 지난 10여년간 익히 봐왔던 소재로 또래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후아유’는 첫 회 방송부터 아역배우 김소현의 1인2역으로 시청자의 혼을 뺐다. 기존 청소년드라마에선 볼 수 없었던 ‘미스터리’ 문법이 가미되자 이 드라마는 흔해빠진 틀을 벗게 됐다. 너무 많이 봐왔기에 진부한 그림에 자살ㆍ실종ㆍ역할바꾸기 등의 양념이 더해지니 전혀 새로운 형태가 됐다.


경남 통영의 한 보육원엔 쌍둥이 자매가 살았다. 일찌감치 부잣집으로 입양된 언니 고은별은 서울에, 동생 이은비는 통영에서 각자의 삶을 보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자매는 처한 현실도 전혀 달랐다. 언니는 학교폭력의 가해자, 동생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통영 수학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동생의 행적을 밟던 언니의 죄책감은 이 드라마가 12회 동안 끌고온 미스터리를 완성시키는 힘이었다. 왕따 피해자였지만, 가해자로 뒤바뀌며 퇴학까지 당한 현실을 비관한 동생은 통영의 한 다리에서 몸을 던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 고은별은 동생을 구하며 자기반성을 시작한다. 기억을 잃은 동생의 손에 자신의 상징인 손수건을 남겨두는 것으로 ‘역할 바꾸기’를 꾸몄다. 왕따 가해자라는 죄책감, 동생 대신 입양됐다는 미안함에 언니 고은별은 자신의 삶을 동생에게 남기고 사라졌다. 뒤바뀐 피아(彼我)는 새로운 국면을 불러왔다. 고은별은 한동안 드라마에서 죽은 존재였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며 학교의 민낯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했던 보통의 청소년드라마와 달리 ‘후아유 학교2015’는 다분히 드라마틱한 요소를 미스터리하게 버무렸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학교 시리즈는 학교폭력 등 예상가능한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루며 예측 가능한 구도로 나아갔는데, ‘후아유’의 경우 정형화된 부분을 해소할 방편으로 일란성 쌍둥이 설정을 가져왔다”며 “미스터리한 구성이 긴장감을 불러오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전개하며 드라마는 중반 이후 힘을 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변주였다. ‘학교’ 시리즈는 앞서 2년 전 방송된 ‘학교2013’을 통해 학교폭력으로 얽힌 두 명의 남학생 중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모호한 설정으로 첫 실험을 거친 뒤 ‘후아유-학교2015’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미스터리를 녹였다. 김선영 평론가는 “기존의 청소년드라마가 학생들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던 것과 달리 지난 몇 해 사이 장르적인 플롯을 가미하며 서사를 다양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학원물 내에서 장르적인 기법을 도입하는 서사의 실험이 꾸준히 트렌드를 형성했다. ‘후아유’는 굉장히 파격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미스터리’ 장르는 성장기에 놓인 청소년 시청자에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장치로도 활용됐다. 드라마는 마치 태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제목 그대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진짜 이름을 지운 채 언니의 삶을 살아가는 이은비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키는 상황을 통해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세상을 겨냥한다. ‘검사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이은비를 자살로 몰아넣은 ‘10대 악녀’ 강소영(조수향)을 통해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기성세대의 세계를 청소년의 세계로 적용한다. 10대 소녀가 보여주는 이유없는 악행의 잔혹함에 “기성세대의 힘의 논리를 투영해 학교권력까지 겨냥, 이 역시 우리 사회의 축소판”(윤석진 교수)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하는 것이다. 청소년드라마가 가지는 존재의의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도 학생들은 언제나 성장한다. 하지만 ‘문제아도 성장한다’는 희망에 집착해 “권선징악의 결말로 나아가는 기존 청소년드라마의 한계”(윤석진 평론가)를 답습한다기 보단, “갈등에 초점을 두고 문제제기를 한 뒤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김선영 평론가)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몇 해 사이 10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콘텐츠가 힘을 잃었다. 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숱한 청춘스타를 배출했던 청소년드라마는 수십년간 같은 학교문제를 반복 재생했다. 한 때는 흥행불패였으나 소재의 한계에 부딪혀 흥행력을 잃었고, KBS를 통해서만 일 년에 한 편 정도 선보이는 수준이 됐다. ‘후아유-학교2015’는 “기존 청소년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실험”(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으로 한국형 청소년드라마의 새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준 의미있는 성과로 읽힌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제공=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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