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본 사람들과 고립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감정노동”

“기껏 누굴 만나기 위해 왔는데…
혼자 밥먹을땐 울고 싶은 생각이”

“화장실 빼곤 모두 카메라 설치
치부 고스란히 드러날수밖에”

“우울증 경력 숨기고 참여했는데
감정고통 너무 커 상태 더 악화”

“과거·가정사 털어놓는 촛불의 밤
괜한 얘기 꺼냈다 후회하기도”

6박7일간 인생의 짝을 찾기 위해 고립된 장소에 들어간 12명(남성 7명, 여성 5명)의 남녀에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반인 커플 매칭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SBS ‘짝’의 여성 출연자가 녹화 중 촬영지의 숙소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지난 5일 발생했다. 경찰은 촬영과정이 사고에 미친 영향을 비롯해 출연자 사이의 관계와 출연자와 제작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방송 촬영과정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사건 직후 만난 ‘짝’의 과거 출연자들은 “애정촌 ( ‘짝’의 촬영지)은 ‘그들만의 세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애정촌에 입소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공간의 이야기를 과거 ‘짝’ 출연자들을 지난 5일 만나 직접 들었다.

이들에 따르면 ‘짝’의 출연자 선발과 검증과정은 굉장히 엄격하다. 출연 희망자들은 제작진과의 사전 인터뷰를 비롯해 혼인확인서와 사업자등록증을 제출할 뿐 아니라, 두 개의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한다. 그중 하나는 이른바 ‘애정촌 12강령’이 담긴 동의서다. ‘애정촌의 생활은 모두 촬영되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가감없이 방송한다’거나 ‘애정촌에서 폭행 등의 물의를 빚으면 출연자의 의무와 자격을 상실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다른 서류는 알코올중독, 도박, 마약의 치료 경험, 정신과 처방약의 복용 유무를 묻는 질문부터 성인비디오의 출연 유무, 온라인 쇼핑몰 운영 유무 등을 묻는다. 여기에 모두 답해야 비로소 애정촌에 입소할 수 있다. 


“일단 들어가면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 말도 안 하고 촬영만 합니다. 자신의 학력이나 재력 등 이성에게 내세울 수 있는 어떠한 무기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거죠.”(2013년 출연 남성)

“그 과정이 굉장히 갑갑해요. 사실 직접 나오기 전에 짜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전화, 외출 등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당한 채 카메라 앞에 자신의 치부를 보여주는 거예요. 거실, 방, 복도 등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카메라가 설치돼 있어요.”(2012년 출연 여성)

일반인 출연자들이 애정촌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6박7일 동안 ‘애정문제’에만 몰두한다지만, 프로그램은 은연중에 상대방과 자신의 외모를 비교하고 자기소개를 통해 신상이 공개되면 서로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삼아 ‘애정 싸움’에 돌입한다. 그 과정에서 이성에게 선택을 받지 못할 때에는 극심한 수치심도 따라온다. 이 여성 출연자는 “기껏 누굴 만나기 위해 왔는데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해 혼자 밥을 먹으니 울고 싶은 심정이 든다”며 “특히 최종선택을 앞둔 날이면 심리적인 부담과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했다.

“애정촌이라는 공간에선 끊임없이 감정노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 가지에만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다 보니 애정촌에서는 상대방의 사소한 한 마디에도 쉽게 감정이 움직이고, 별일도 아닌 것을 굉장히 크게 받아들여요. 제작진이 사전에 우울증 등의 정신과 이력을 체크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아요. 우울증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별일이 아닌 것도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든요.”(남성 출연자)

이 남성 출연자가 애정촌이라는 공간이 우울증 이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든 곳’이라고 설명한 데는 본인 스스로가 우울증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촬영 당시는 호전 상태였었고, 제작진과의 인터뷰 당시에도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그는 “그런데 애정촌이라는 공간에 들어가보니 감정의 고통이 크게 와 짧은 6박7일 동안 내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 견디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함께 모인 12명의 출연자들은 기수에 따라 친밀도가 달라지지만 어찌됐건 경쟁상대이기에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다. 데이트 획득권을 얻기 위한 씨름, 달리기 등을 비롯한 각종 임무는 출연자에게 이성을 쟁취하는 데 온 힘을 쏟으라고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헐뜯기도 하고,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도 당연히 존재했다.

이 남성 출연자는 “실수와 해프닝은 매회 벌어지는데 그 방송이 되면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하게 된다”며 “‘ ‘왕따 몰카’를 당하거나 이성의 관심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감정적인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방송경험이 전무한 일반인들이기에 짧은 시간 자신의 치부를 꺼내보인 것에도 금세 후회가 찾아온다. ‘짝’의 현장에는 ‘촛불의 밤’이라고 정해진 특별 일정이 있다. 출연자들이 촛불 하나를 앞에 두고 각자 자신의 내밀한 개인사를 고백하는 것이다. 이때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자신의 과거와 가정사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대개 고백의 수위가 높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원치 않을 경우 방송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이 장면을 촬영한다. 남성 출연자는 “힐링의 시간이 돼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되는 것이 ‘촛불의 밤’이기도 하지만,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이 나에 대한 마음이 떠날 수도 있다”며 “장점도 있지만 독이 되는 코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시공간의 제약을 두고 촬영이 진행되는 애정촌의 특수한 환경에 대해선 그동안 일반인 출연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숨을 곳이 없다는 압박감이 일반인들로서는 지나친 부담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전 촬영과정에 대한 동의를 했다는 이유로 출연자들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개인의 치부까지 있는 그대로 공개하게 만드는 것도 과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출연자들 간 경쟁과 갈등을 지나치게 방관한다는 우려도 크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짝’의 촬영을 통해 얻은 것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촬영현장에서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화가 나는 돌발상황도 많지만, 이곳에 다녀온 이후엔 출연자들끼리 독특한 결속력이 생겨 도리어 더 친해진다. 현장의 고비는 있지만 이후엔 추억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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