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영화계도 울린 진도발 비극, 참사는 ‘현재진행형’

정지영·장준환 감독, 심재명 대표 등
특별법 요구 단식투쟁 동참한 영화인들
표현의 자유 위협받거나 외압 의혹
‘다시 사월’ ‘다이빙벨’확장판 등
추모열기 타고 독립영화관서 속속 개봉

“여기까지만 하고 멈추라 하는 사람들 / 가만 있으라는 말보다 더 아픈 건 없는데” (세월호 1주기 추모 단편 ‘다시 사월’ 중)

다시 ‘잔인한 사월’이다. 2014년 4월 16일, 탑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차가운 바닷에 침몰했다. 정부 당국이 ‘전원구조’를 발표하고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달아난 사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던 이들은 공포에 떨다 눈을 감았다. 참담한 국가적 재앙 앞에서 누구 하나 반성하는 이 없었다. 책임을 떠넘기기 바쁜 권력에 대한 혐오감, 무고한 목숨들을 허망하게 잃은 무기력감 속에서 사회는 우울증에 빠졌다. 


세월호 참사의 상처에 딱지도 앉기 전에, 사회는 또 다른 비극을 맞았다. 전 국민이 애도해야 마땅한 국가적 재앙이 이념 논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참사의 전말을 밝히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자며 거리로 나선 유가족에게 누군가는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쳤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유가족이 자식의 목숨값을 흥정하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됐다. 생떼 같은 자식을 잃고 식음을 전폐한 이들 앞에서, 치킨을 먹으며 조롱하는 상식 밖의 퍼포먼스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년 간, 영화계도 세월호 참사의 후폭풍과 마주했다. 당시 영화인들은 특별법 제정 요구에 힘을 보냈고, 세월호 참사 관련 영상물로 목소리를 냈다. 돌아온 건 영화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었다. 세월호 참사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상영한 영화제는 부당한 외압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영화를 통해 세월호의 비극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작업은 이어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성 보장을 요구하는 영화인 단체들. [사진제공=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

▶거리로 나온 영화인들, 스크린에 펼쳐진 세월호 비극=지난 해 8월 9일, 정지영 장준환 류승완 감독과 심재명 명필름 대표 등 영화인 20여 명은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라며 “유족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과 배우 문소리 등도 세월호 특별법을 지지하며, 일일 단식 농성에 동참하는 등 힘을 보탰다.

그 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선 특정 영화가 상영 취소 압력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영화제 상영작은 일반 개봉 영화들이 받는 등급 심의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상식이다. 부산시는 이 상식마저 뭉개가며 세월호 구조 과정의 의혹을 담은 ‘다이빙벨’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다이빙벨’ 상영 철회를 요청했지만,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예정대로 상영을 강행했다.

영화제 이후에도 ‘다이빙벨’은 눈엣가시 취급을 받았다. 10월 23일 개봉이 확정됐지만 대형 멀티플렉스에선 단 한 곳의 스크린도 확보하지 못했다. 영진위는 자신들이 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에서의 ‘다이빙벨’ 상영을 불허해 영화인들의 반발을 샀다. 코미디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한국 독립영화의 인정 기준이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이슈 등 주류 영화산업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들을 과감히 다루는 영화’인데,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독립영화를 볼 수 없는 아이러니가 빚어진 것이다.

▶‘다이빙벨’상영 후폭풍? 영화계 표현의 자유에 불똥=지난 해, 세월호 참사에 애도하고 분노했던 영화계에 돌아온 것은 ‘표현의 자유 제약’이라는 구시대적 유물이었다. ‘다이빙벨’ 상영 문제로 불거진 부산시와 부산영화제의 갈등은 올해 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부산시가 지난 해 영화제 감사 결과를 토대로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또 부산시는 영화제 측의 소명이 이뤄지지도 않은 감사 결과를 시의회에 보고하고, 영화제 측의 직원 채용 과정과 지출 내역 등을 문제 삼았다. 이용관 위원장은 “특정 영화 상영에 따른 보복 감사는 아니라고 본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영화계는 대체로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데 따른 후폭풍으로 해석했다.

영화계는 부산시의 ‘영화제 때리기’를 영화계 표현의 자유를 흔드는 엄중한 문제로 판단했다. 결국 지난 2월, 영화인 단체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 이후 10여년 만의 일이었다. 이들은 부산시의 이용관 위원장 사퇴 종용은 물론, 영진위의 영화제 출품작 사전 심의 움직임 등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세계 유수 영화제들도 부산 국제영화제의 독립성을 지지하는 의사를 전해왔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측은 “우리 영화제는 정부와 베를린 시가 공동 소유하고 있어도 프로그램 구성에 어떤 방해도 받은 적이 없다. 영화제와 프로그래머의 독립성은 보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잊지 않겠습니다”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외압 속에서도 사건을 기억하려는 영화계의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사고 200일을 맞은 지난해 11월 1일, 다큐멘터리 제작그룹 다큐창작소는 세월호 특집다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선보였다. 29분짜리 단편은 세월호 구조 활동의 문제점, 수사 과정의 의혹 등을 짚어간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21만 건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5개월여 만에 다큐창작소는 세월호 추모 1주기 단편 영화 ‘다시 사월’을 공개했다. 영화는 세월호 사건이 어느덧 잊혀져 가는 현실을 통해 우리의 무관심을 돌아보게 한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선 오는 18일까지 ‘4.16 추모 기획전-우리 함께’가 마련된다. ‘다이빙벨-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를 비롯해 ‘바다에서 온 편지’, ‘416 영화인 단편 프로젝트’, ‘416 시민참여 공모작’ 등이 상영된다. 416 영화인 단편 프로젝트는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의 민병훈 감독 등이 참여한 단편 8편을 묶은 것. 특히 ‘다이빙벨’의 확장판인 ‘다이빙벨-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는 이번 상영 외에도 인디스페이스와 아트나인 등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서 16일 정식 개봉한다.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이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영화를 작업 중인 감독들이 더 있다. 유가족들의 아픔을 나누려는 작품들이 나온다면 우리 극장에선 반드시 상영할 것”이라며 “국가의 지원을 못 받고 경영상 위기를 겪을 수도 있지만 굴복하지 않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 할 것이다. 그게 영화관이, 영화감독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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