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정덕현]관찰의 시대

사람들이 말보다 더 신뢰하는 건 한 장의 사진이다. 그것은 말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합리화나 거짓을 사진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과연 진실일까. 과거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 카메라는 우리의 시각을 확장시켜주었지만, 사실의 조작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유명한 찰스 다윈 같은 진화론자도 자신의 학설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거기에 맞는 사진만을 선별해 공개했고, 루이 아가시 같은 제국주의자들은 백인이 유색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걸 선별된 사진으로 증명하려 했다. 즉 사진은 그것이 진실의 순간으로 쉽게 믿어진다는 점에서 전체 맥락을 호도하는 역기능도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제 사진보다 더 생생한 영상의 시대다. ‘관찰카메라’라는 예능의 새로운 형식을 지칭하는 용어는 지금 우리가 관찰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는 관찰카메라로 찍혀진 부모와 자식을 각자의 입장에서 보여준다. 마치 영화 <라쇼몽>처럼 영상은 부모의 입장으로 봤을 때와 자식의 입장으로 봤을 때 다가오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드러내준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이 양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소통의 물꼬를 열어준다는 착한(?)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같은 사안에 대해 똑같이 찍혀진 영상도 어떻게 편집되느냐에 따라 이토록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소름끼치게 만든다. 우리가 보고 있는 영상은 과연 진실만을 전하고 있을까.

관찰카메라는 그 피사체를 사회적인 문제 쪽으로 맞추면 르뽀 형식의 시사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다. 숨겨져 있던 사회의 부조리를 관찰하고 폭로하는 건 언론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그래서 이 관찰카메라가 폭로하는 진실은 더 조심스럽게 다뤄진다. 편집에 의해 사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됐을 때 그 파장 역시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착각하지 않아야 할 것은 사실의 은폐나 왜곡이 과거처럼 없는 걸 만들어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저 흔해진 관찰 예능 속에서도 발견되는 것처럼 많은 것들 중에서의 선택과 편집을 통해 이뤄진다.

50대 아빠와 20대 딸 사이의 관계를 관찰카메라로 들여다보고 그 사이에 놓여진 소통의 장벽을 허물어주는 SBS <아빠를 부탁해>나, 엄마의 시선으로 자식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그 힘겨움을 공감하려 하는 JTBC <엄마가 보고 있다>. 이런 관찰카메라 프로그램들은 <동상이몽>이 보여주는 것처럼, 가족 간의 소통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각각의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서 방송 나아가 매체가 어떤 것들을 주로 다루고 어떤 것들을 배제하는가를 들여다보면 거기에 또한 왜곡과 편집의 문제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왜 이토록 사적인 예능의 관찰카메라들은 점점 늘고 있는데, 보다 심각한 사회문제나 시사문제를 다루는 관찰카메라들은 점점 보이지 않고 있을까. 그것은 혹시 세상의 눈을 자청한 매체들이 자잘한 사적 이야기들에만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의도는 아닐까. 그래서 마치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거나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는 건 아닐까. 관찰의 시대에 무엇을 어디까지 관찰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래서 현실 왜곡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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