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옥과 범실, 산돌(연준석), 개덕(이다윗), 길자(주다영)은 섬에서 나고 자란 둘도 없는 친구들이다. 번갈아가면서 수옥을 등에 업고, 같이 걸어주고, 의기투합해 멀리 보이는 섬에 수옥을 데려가고, 마을 노래자랑 무대에 함께 올라주는 애틋한 우정이다.

웃고 떠드는 우정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발견하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범실은 수옥의 방 창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서 밤새 서성거리고, 수옥이 보건소에 갈 때마다 수옥이 보건소 의사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오해하고, 수옥이 끝내 울 때는 “평생 지켜주겠다”고 고백한다.
영화는 ‘순정’이라는 제목만큼 솔직하다. 진부한 제목이지만, ‘순정’이라는 단어가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를 충실하게 담는다. 순수한 우정, 소년의 성장과 아픔, 성인이 된 주인공의 회상 등, 제목을 보고 기대할 만한 감동 코드는 충분히 충족된다.
다만 영화의 설정으로 인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나 2011년 개봉한 영화 ‘써니’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추억의 팝송이나 가요가 회상의 연결고리가 되는 설정도, ‘비 오는 시골마을’이라는 공간적 배경도 마찬가지다.
1991년이라는 시간적 배경 설정도 몇 해 사이 흥행 코드가 된 복고 설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1991년이라는 시간은 올드 팝송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 촌스러운 옷이나 헤어스타일, 필름 카메라 등의 소품에서 단편적으로만 보여질 뿐이라 설득력이 약하다.
때문에 영화는 현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박제된 ‘순정 박물관’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실에선 찾기 어려운 ‘순정’들이 그 섬에는 있었다.
영화는 장편소설 ‘홍합’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한창훈 작가의 경장편소설 ‘순정’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여수 거문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된 소설이다.
라디오 생방송 도중 DJ가 된 범실에게 도착한 한 통의 편지로 과거를 불러오는 액자식 구성은 영화에 소소한 재미를 준다. 성인 범실 역의 박용우를 비롯해 이범수, 김지호, 박해준 등은 영화에 무게감을 더한다.
주연으로 처음 영화를 이끈 도경수의 연기는 안정적이었다. 영화 초반 스스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설렘을 표현한 부분에서 보여 준 도경수의 눈빛이 오래 남았다. 아역 배우로 오래 경험을 쌓은 김소현의 연기도 순수한 모습의 수옥에게 적절하게 녹아있다.
2월24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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