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감성 노랫말·멜로디 대중화 큰몫
서양의 록음악 한국적 감성으로 풀어내
80년대 밴드 음악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
메인보컬 10명 교체불구 ‘부활’은 아직 청춘
‘전설 김태원’의 네버엔딩스토리는 진행중
낡은 LP판을 고르는 손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앞에 멈췄다. 이를 꺼내 전축에 올려놓자 음악이 시작됐다. 부활의 보컬 김동명이 무대 조명 장치에 앉은 채로 등장했다. “박수 한 번 주세요.” 너나 할 것없이 하나둘 파도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여기에 ‘떼창’까지 얹으니 아이돌 인기 부럽지 않았다. 관객 연령대는 평균 40~50대, 부활과 함께 30년을 거쳐온 사람들부터 오늘 첫 입문인 사람들까지 이날 만큼은 모두 청춘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부활 라이브 콘서트 프렌즈(Friends)’가 열렸다. 초대 보컬 김종서와 4대 보컬 박완규가 한 무대에 나란히 섰다. 현재 보컬인 9대 김동명을 가운데 두고 ‘우 종서 좌 완규’ 구도로 부활 30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보컬이 10번이나 바뀌었다는 건 그 만큼 록 밴드 음악을 하기 참 척박한 환경이라는 걸 말해줍니다.”(부활 리더 김태원) 밴드의 간판이 10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부활’은 건재했다. 김종서는 “기적적인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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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살’ 부활은 아직도 청춘이다. 30주년을 맞은 부활을 두고 김태원(왼쪽 사진)은‘ 기적’이고‘ 축복’이라고 했다. 척박한 한국의 록 음악 시장에서 부활은 그렇게 묵묵히 인내하며 30년을 지속해 왔다. 사진은 지난 15일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부활 라이브 콘서트‘ 프렌즈(Friends)’ 모습. [사진제공=쇼노트] |
▶30년을 버텨왔다는 것, 우여곡절과 화려한 부활= 평론가들은 “한 밴드가 한 이름으로 30년을 버텨왔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태원의 이야기처럼 대한민국 록과 밴드 환경은 열악하다. 대중음악 시장은 아이돌 팬덤 시장으로 재편됐다. 한 때는 ‘젊음의 음악’이었던 록은 EDM과 힙합에 자리를 내주며 서서히 마니아의 음악이 됐다. 무대 위에 서보지도 못한채 해체를 거듭하는 밴드의 숫자만 늘어가는 때다.
부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보컬이 10번이나 바뀐 것은 물론 리더 김태원이 2집 앨범을 낸 뒤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암흑기를 거쳤다. 이후 김태원은 폐인 생활로 은둔하며 부활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 이후 3집을 준비하지만 새 보컬로 영입한 김재기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끝에 다시 희망은 찾아왔다. 2002년 부활은 이승철과 다시 뭉쳐 ‘네버엔딩스토리’를 탄생시키고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다.
▶록 음악의 대중화 이끌어, 한국식으로 풀어낸 ‘록’=살아남았기에 강한것이 아니다. 부활은 오래 버텼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록 밴드 음악계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성시권 대중음악평론가는 “우리나라 80년대 밴드 음악을 대중화 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록음악이라고 하면 거부감이 있었는데 록 음악의 파격적인 멜로디에 감성적인 발라드를 도입해서 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부활은 기존의 록 밴드와는 다른 선에 있었다. “샤우팅 창법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거친 목소리의 창법”(이헌석 대중음악평론가)이 아니었다. 1986년 이승철을 보컬로 발매한 부활의 1집 앨범은 부드러운 록의 산실이었다. 1집 앨범으로 부활은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 대중음악계로 떠올랐다. 록 밴드의 대중화를 앞서 이끌었다. 이헌석 대중음악 평론가는 “부활은 록이 비주류 언더그라운드 장르라는 틀을 깨줬다. 록밴드가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작법과 방식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록 음악을 한국식 어법으로 풀어낸 것”도 하나의 비결이었다. 이헌석 평론가는 “록 음악은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장르가 아니고 수입해 온 장르지만 부활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 모두에 한국적 정서과 감성이 베어있다”고 설명했다.
▶부활 리더 김태원, 좋은 보컬을 보는 안목과 그가 남긴 명곡들=부활의 보컬들은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출중한 인재들이다. 전문가들은 “김태원의 안목”이라고 분석한다.
이헌석 평론가는 “김태원은 뛰어난 기타리스트이기 이전에 탁월한 작곡가 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부활은 ‘희야’, ‘네버엔딩스토리’, ‘사랑할수록’ 등 지금까지도 불리는 명곡들을 많이 남겼다
명곡을 부를 보컬 영입에도 김태원의 역할이 컸다. “부활이 국내 보컬리스트의 사관학교”라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
이헌석 평론가는 “김태원은 혜안이 있었다. 김종서, 이승철, 박완규, 정단, 정동하 등 여러 보컬리스트를 배출했다. 이들은 부활 탈퇴 이후에도 국내 대중음악계에 족적을 남기며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대중음악계에 길이 남을 인재를 배출했다는 점에서 부활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김태원은 “보컬 10명이 다 모이는 날까지 부활은 계속 될 것이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면 그 소울의 무게가 엄청 날 것”이라고 했다. 30주년, 10명 보컬의 “무게”는 감히 가늠할 수도 없었다.
이헌석 대중음악평론가는 “부활은 척박한 한국의 록 음악 시장에서 때로는 여느 대중 가수들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고 때로는 힘든 시기를 묵묵히 인내하며 30년을 지속해 왔다”라며 “지금도 록밴드는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부활은 지금의 국내 록 밴드들도 충분히 롱런할 수 있는 팀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leunj@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