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옛 서울역사가 문을 닫고 지금의 서울역이 문을 열었다. 새 서울역에는 대형할인마트, 레스토랑, 쇼핑시설 등이 빼곡히 들어섰다.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 ‘한국 경제사’의 상징물이었던 인근 회사를 다니는 월급쟁이들, 외국인 관광객 등으로 서울역은 언제나 북적인다.
번화한 지상과는 달리 그 아래는 딴세상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서울역에 산다. 밤이 되면 노숙자들은 지하철 광고판을 들어올려 모포를 꺼내 덮는다. 대로에서 보이는 번쩍번쩍한 서울역 뒤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개발이 덜 된 낡은 주택가의 좁은 골목이 빼곡하다.
이곳에 위치한 한 여관방, 가출 소녀 혜선(심은경)이 혼자 잠에서 깨어난다. 동거하는 남자친구 기웅(이준)은 어디로 갔는지 자리에 없다. 방 안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술병, 옷가지, 짐가방 등으로 어수선하다. 기웅을 찾아나서려는 혜선에게 여관 주인은 “밀린 방세를 내지 않으면 짐을 다 갖다 버릴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다시 서울역 앞 광장. 목을 물린 상처로 피를 뚝뚝 흘리며 한 노인이 걸어가고 있다. ‘보편적 복지’를 소리높여 말하던 남자는 노인을 도우러 다가가지만, 코를 찌르는 냄새 탓에 뒤로 물러선다. “뭐야, 노숙자잖아. 에이….” 애니메이션 ‘서울역’(감독 연상호)의 시작이다. 서늘한 ‘도시괴담’의 탄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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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영화‘ 서울역’ 스틸컷. [사진제공=NEW] |
알려졌다시피 올해 첫 1000만 영화로 이름을 올린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이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잔혹 현실 애니메이션’으로 주목받아온 연상호 감독 작품이다. 개봉 순서는 ‘부산행’이 먼저였지만, 제작은 ‘서울역’ 부터다. 연 감독은 “좀비를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다가 ‘실사 영화로 만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제안을 받고 ‘부산행’을 연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는 ‘부산행’ 속 KTX가 출발하기 전날 밤 서울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펼쳐놓은 작품이다. 재난 상황에서 생존만을 향해 직선적으로 달리다가 언뜻 언뜻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줬던 ‘부산행’과 달리, ‘서울역’은 대놓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가출 청소년과 노숙자의 삶이라거나, 공권력의 무자비함 앞에서 무기력한 민중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보여진다.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인지, 표현 방법이 직관적이고 직설적이다. 과감한 돌직구에 위험 수위는 없다.
목소리 더빙에는 심은경, 류승룡, 이준 등 배우들이 참여했다. 15세 관람가. 93분.
jin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