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를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하라”는 주장은 정재계 고위인사나 흉악범에 대해 여론에 미치지 못하는 법원 선고가 나왔을 때 달리는 수많은 댓글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훗날 판사에게 최종 검토만을 남기는 ‘수석 참모 역할’을 하는 AI 구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그 효용성에 관심이 쏠린다.
새로 취임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취임식에서 “일상적 대국민 사법 서비스의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업무에 AI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재판지연 해소에 큰 도움…형량까지 결정한다면=1일 대법원 예산 자료에 따르면 ▷데이터 기반의 사건관리 및 재판 지원을 위한 AI분석 모델 구축 ▷양형 기준 운영 점검 시스템 및 양형정보 시스템의 고도화를 위한 AI시스템 구축에 총 7억1200만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과 유사한 판결문을 재판부에 자동 추천하는 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법원 뿐 아니라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피고인 진술 자동녹음 기능을 구축하고 변호사도 리걸테크(Legal Tech)를 도입하는 등 법조계에 AI를 적극 활용하는 시대는 본격적인 개막을 앞두고 있다.
전문가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딥러닝 기술에 의한 궁극적 도달점은 AI가 형사의 경우 유무죄 판결 및 형량, 민사의 경우 책임범위까지 결론 내리고 판사가 최종 검토만 하는 수준까지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AI는 인간 판사와 달리 같은 입력값에 대해 같은 결과값을 내기 때문에, AI로 양형을 한다면 유사한 사건에 대해 모든 법원이 일관된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합의부 재판이 아닌 단독 재판으로 대부분의 재판부를 구성할 수 있고, 재판속도도 훨씬 빨라질 수 있다.
▶“판결격차 줄어들 것…과도기에는 AI판사 피고인이 선택”=이찬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는 “법원이 AI를 활용할 때 주의와 겸손을 잃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는 AI가 유무죄 판결·양형을 내리는 단계까지 발전할 것으로 보고 또 실익이 있다”며 “대표적으로 사실관계가 거의 유사한 사건에 대한 재판간 편차를 줄일 수 있다. 양형위원회가 운영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판결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AI시대의 생존자세’라는 강연을 진행하고 모든 법관이 볼 수 있게 법원내부망에 공유한 강민구 전 부장판사는 “10~20년 후 과도기에는 입법에 의해 법원에 소송을 내면 당사자가 AI 판결을 받을 것인가, 인간판사의 판결을 받을 것인가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했다. 현재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그는 “이후 수년간 검증을 거쳐 AI 판사를 선택한 사람의 결론이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야말로 판사는 최종검토만 진행하는 시대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각양각색 피고인 반영 가능한가” 신중론도=반면 이종원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지난해 관련 세미나에서 “법관은 피고인의 태도, 증인의 비언어적 행위 등을 종합해 형을 선고하는데 이런 요소들은 문서화하기 어렵고 소송 기록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AI가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학습해 판단 구조를 형성하는데, 이 데이터가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면 AI가 편견을 답습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도 “양형기준 자동제시 정도까지 갈 수는 있겠지만, 피고인의 각 상황이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으며 법적 추론과 논증은 물론 감정·윤리 등 유연한 판단을 종합한 직관력을 AI가 완전히 갖출지는 의문”이라며 “이 같은 한계가 해결될 때까지 AI 활용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