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팔이 족속들’ 시의원 억대 배상에 되레 항소…유족 두 번 울리는 2차가해, 경찰 상시 수사 [세상&]

참사 피해자·유족 향한 ‘2차가해’에 칼 빼든 경찰
2차가해 전담 수사팀 꾸려 전보다 강경한 단속 예고
유족 “두려워 댓글 못 본다…툭 던진 말에 트라우마”


지난 2023년 1월 서울 용산구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에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추모하고 있다. 김아린 기자


[헤럴드경제=김아린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한 골목에서 159명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향한 여전한 2차가해에 경찰은 단속 의지를 다졌다.

경찰은 지난 7월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2차가해범죄수사팀을 꾸렸다. 그간 경찰은 참사 발생 후 임시 조직을 만들어 2차가해나 허위정보에 대해 단속을 벌였지만, 주무 부서를 따로 두고 대응을 상설화한 것은 처음이다.

이재웅 경찰청 2차가해범죄수사팀 계장은 29일 헤럴드경제에 “수사팀이 상설화된 만큼 댓글을 계속 보고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악성댓글은 피해자를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심각한 범죄”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로 스물아홉 생을 마감한 이주영 씨의 아버지 이정민 씨는 두려워서 댓글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이씨는 “초기부터 워낙 2차가해 댓글이 많아서 상처를 많이 받고 너무 괴로웠다”며 “신고를 위해 수집하는 절차도 상처가 돼 포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려워서 댓글을 아예 보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조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툭툭 던진 말 한마디에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사람이 스러지는데, 이건 절대 표현의 자유가 아닌 가해”라고 했다.

지난 2022년 12월 10일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故 이주영 씨 아버지 이정민 씨(맨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김아린 기자


이태원 참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았던 한 10대 학생은 2차가해에 괴로워하다 세상을 등졌다. 그는 생전에 인터넷에 직접 댓글도 남겼다. 참사를 다룬 탐사 보도 프로그램 댓글창에 자신이 생존자임을 밝히며 “시간이 늦어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인파 속에 끼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참사가 벌어진 그 좁은 골목길로 쓸려 들어갔다”며 절절히 설명했다. 왜 사람들이 많은 곳에 찾아갔느냐며 피해자들을 탓하는 악성댓글에 맞섰다.

그러면서 “10대 사망자 중 두 명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이라는 사실이 너무 받아들이기 싫다” “그 둘에게 너무 미안하고 모든 게 내 잘못같고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남겼다. 하지만 그에게도 악성댓글이 따라왔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는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했지만, 피해자들을 향한 조소는 계속 이어졌다.

2차 가해는 인터넷 공간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사가 있고 100일도 안 된 추운 겨울. 갓 떠나보낸 사랑하는 이를 추모하는 합동분향소에도 상처를 주는 세력이 따라붙었다. 시민단체 신자유연대는 분향소가 설치된 주변에 추모하는 가족들의 눈에 보이도록 “국민에게 더 이상 슬픔을 강요하지 마라” 등이 적힌 현수막을 버젓이 내걸었다.

지난 2023년 1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주변에 “국민들에게 더 이상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등이 적힌 2차가해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아린 기자


지난달 유족들은 참사 피해자들에게 막말을 쏟아낸 김미나 창원시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김 의원은 참사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소리 나온다” “시체 팔이 족속들” 등 유족들을 모욕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김 의원이 유족들에게 총 1억433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김 의원의 언사가 “인격권을 침해하는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한다”고 했지만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김 의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되레 항소했다.

이씨는 “김 의원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의 말이 언론에도 나오고 공식적인 석상에서 언급됐다”며 “공적으로 그런 인터넷 댓글과 같은 말을 한 것이 엄청난 충격”이라고 했다.

단순 모욕이나 욕설을 넘어 음모론으로 소비되는 2차가해도 있다.

유족들이 간첩이라거나 매수된 연기자라는 식의 근거 없는 괴담에 대해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는 “음모론은 공론장이 아닌 같은 경향성을 띈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확산하면서 반박도 받지 않고 자신감이 붙게 되는 것”이라며 “자신들이 인정하는 곳에서만 대화하면서 확증편향을 키우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큰 병폐”라고 했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 관련 2차가해 사건 166건을 접수해 121건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 설명에 따르면 가해자의 연령대는 10대에서 60대까지로 직업도 다양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각종 소셜미디어, 기사나 유튜브 댓글 창에서 주로 적발됐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뿐 아니라 사회적 재난·대형 참사 관련한 기사에 달린 댓글 등을 상시 모니터링하면서 언제든지 인지수사에 나서겠단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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