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 연쇄살인 사건 진범 찾아내
1995년 사건부터 뒤져 미제 사건 해결
“승진보다는 역사에 남는 경찰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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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수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장기실종 수사팀장이 지난 4일 서울 종암경찰서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이영기·정주원 기자] “죽어도 끝나지 않는다. 꼭 잡는다. 아니면 자수해라. 죽은 후 밝혀져서 가족 힘들게 하지 말고 죗값 받고 편하게 살아라.”
장기 미제사건의 죽은 범인을 밝혀낸 한 끈질긴 형사는 어딘가 숨어 있을 범인들을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장수(55·경감)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장기실종사건 수사팀장의 얘기다. 그는 20년간 풀리지 않던 서울 양천구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해결의 주인공이다.
김 팀장은 지난 4일 헤럴드경제와 만나 “내 모든 걸 한번 걸어볼 필요가 있겠다. 10년 남은 퇴직까지 내가 꼭 잡는다”라고 과거 다짐을 다시 한번 들려줬다. 김 팀장이 지난 2021년 미제사건 팀장에 지원하던 때 했던 다짐이다. 하지만 미제 사건 수사는 쉽지 않았다. “안갯속 같을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경찰 입직 전에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며 상무팀과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올랐다. 여전히 다부진 체격이 김 팀장의 과거 경력을 드러냈다.
1998년 일반 공채로 경찰이 된 김장수 팀장은 27년 경력 대부분을 강력계 형사로 근무했다. 미제사건 전담을 하기 전부터 그는 모두가 손대기 꺼리는 사건을 도맡아왔다.
김 팀장 특유의 끈덕진 성격은 일선 형사 때부터 빛을 발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 피해자 설득에만 4년을 쏟은 일도 있었다. 2008년 겨울 서울 성북구에서 발생한 ‘모랫말 공원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혼자 사는 여자 초등학생을 동네 청소년 10여명이 약 4개월 간 성폭행했다.
김 팀장은 “여자애가 학교를 그만두고 중학교도 안 가고 집에만 있다는 첩보를 2009년 듣고 시작했다”며 “그 친구를 직접 만나는 데도 꼬박 2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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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수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장기실종 수사팀장이 서울 종암경찰서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김 팀장은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 보호자 역할을 해줄 사람까지 직접 찾아 나섰다. 그는 “국선 변호인, 아동 보호소 등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함께 한다는 사람이 생기더라”며 “사람을 모으고 그 친구와 신뢰를 형성하고 나니 4년이 지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 친구가 수사해달라고 마음을 열면서 지방에 있는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것”이라며 “그래도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을 수 있나. 연락해서 소주 한잔 먹으면서 꼭 다 잡아넣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사건 발생 4년 후 수사를 시작하자 청소년이었던 가해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 있었다. 김 팀장은 2012년 복무 중인 가해자들을 모조리 찾아내 검거했다.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하고 나니 큰 사건도 끈질기게 붙어볼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기세를 이어 2011년 발생한 일명 ‘초안산 집단 성폭행 사건’도 해결했다. 마찬가지로 2012년 첩보를 수집한 김 팀장은 피해자를 꾸준히 설득해 사건 발생 5년 후인 2016년 가해자 22명을 밝혀냈다.
김 팀장이 미제 사건에 본격적으로 관심 갖기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동료 형사끼리 모여 식사하던 중 당시 미제사건수사팀장과 동석하면서다.
김장수 팀장은 어떤 TV 프로그램에 나온 한 미제 사건 범인의 행동 등에 대해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냈다. 범인에 대해 들을수록 ‘이상한 놈’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아 이걸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 짜릿할 정도의 도전 욕구가 솟았다. 최근 그가 해결한 ‘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 수사’의 시작이었다.
김 팀장은 2021년 당시 미제사건수사팀장이 승진을 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에 지원했다. 수사팀을 맡게 되면서 좌우명도 바꿨다. 레슬링 선수 시절 썼던 수사불패(雖死不敗·죽을 순 있어도 질 순 없다)를 ‘죽을 순 있어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뜻의 ‘수사불포’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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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수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장기실종 수사팀장이 서울 종암경찰서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미제사건 전문 역량도 길렀다. 동국대에서 범죄분석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성균관대에서는 법유전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김 팀장이 DNA에 기반한 수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래도 사건 해결은 쉽지 않았다. 그는 “미제 사건은 자신과 싸움이다. 미쳐도 안 되는 게 미제 사건”이라며 “어떤 때는 진짜 안갯속에서 방향을 못 찾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조직개편으로 팀이 형사기동대 소속으로 옮길 땐 씁쓸한 순간도 있었다. 미제사건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후배 형사들이 모두 팀을 떠났다. 결국 김 팀장은 사건을 마무리하겠다는 집념으로 혼자서 지금의 중요미제·장기실종수사팀으로 왔다.
그는 “‘실적을 보여주지 못하니 평가에서는 빠지고 나이는 먹어가고…’라며 뒷산에 있는 바위에 올라서 늘 한숨만 쉴 때도 있었다”며 “퇴직은 다가오는데 성과는 없으니 답답했던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수록 사건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까지 사건에만 몰두했다. 20년 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산화 전인 1995년 사건부터 뒤졌다. 사건뿐 아니라 복역을 마친 전과자의 임시 거처의 수년 치 명단을 구하기 위해 지역 주민센터까지 설득했다.
주말에는 신정동 주민인 양 모자를 푹 눌러쓰고 현장 일대를 배회했다. 범인이 아직 신정동에 살고 있다면 DNA 분석을 위해 가래침이라도 얻어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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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수 중요미제·장기실종사건 수사팀장이 장씨가 근무했던 건물을 현장 감식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
김 팀장은 범인의 조건을 점차 줄여나갔다. 23만명이던 수사 대상자를 사망자까지 합쳐 최종 56명으로 압축했다. 그 과정에서 사건 당시 빌딩 관리인으로 근무했던 장씨를 특정했다. 생전 방문했던 의료기관을 확인해 장씨의 검체가 아직 보관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압수수색 영장을 받기 위해 검찰에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가만히 설명을 듣던 담당 검사는 “이놈 맞는 거 같은데요”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 팀장은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장씨의 생전 의료 검체를 확보해 신정동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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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수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장기실종 수사팀장이 서울 종암경찰서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그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 갖고 있던 DNA로 범인을 밝혀낸 적은 있지만 장기 미제 사건의 새 DNA를 입수해 수사대상자를 좁혀 범인을 밝혀낸 경우는 이번이 국내 처음일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김 팀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범인들에게 경각심이 커지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해결되며 범인들한테 죽어도 끝나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며 “(사건) 20년이 지나도 수사하는 경찰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팀장은 어떤 경찰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계급보다는 역사에 남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