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F 모델로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 재정의
4년 연속 CES 혁신상, 산업의 해답 내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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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욱 버시스 대표가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은지 기자.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비가 오네. 취업 준비로 힘든데 마음이 가라앉아. 내 심정을 담은 랩을 만들어 줘.”
오늘의 생각, 기분 등 원하는 내용을 간단하게 입력하면 인공지능(AI)이 가사와 곡은 물론 랩, 뮤직비디오까지 만든다. 버시스(Verses)의 멀티모달 생성형 AI 엔진 ‘버즈원(Verse One)’이다.
AI를 이용해 누구나 쉽게 창작 뮤지션이 되는 시대, 아티스트와 팬을 연결하는 뮤직테크 산업을 이끄는 이성욱 버시스 대표(55)의 눈빛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2020년 3월 버시스를 설립하며 음악 산업의 새로운 판을 짜기 시작한 그는, 예술적 감수성과 고도의 기술력, 그리고 냉철한 비즈니스 감각을 두루 갖춘 뮤직테크 산업의 독보적인 인물이다.
이 대표는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에서 진행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음악이라는 미디어는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후로 너무 기술적 진보가 없었다”며 “이제는 AI를 통해 음악을 단순히 듣는 대상을 넘어, 아티스트와 팬이 상호 작용하고 함께 창조하는 ‘참여형 미디어’로 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시작은 음악이었다.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내로라하는 선배들 밑에서 예술의 낭만을 배웠다. “바바리코트를 끌고 다니며 막걸리를 따라드리고 옆에서 귀동냥하며 예술을 배웠다”는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고3 때 뒤늦게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컴퓨터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1993년 이 대표의 컴퓨터 영상과 음악을 결합한 공연을 눈여겨 본 삼성에 일종의 ‘캐스팅’이 됐고, 이후 삼성물산에 입사하며 비즈니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삼성물산에서 그는 전략 사업 기획과 IT 분야 투자 심사를 담당하며 ‘이 기술이 정말 돈이 되는가’를 묻는 비즈니스의 냉혹함과 매너를 익혔다.
2001년, 그는 삼성전자, KBS 등과 손잡고 조인트 벤처 ‘다이렉트 미디어’를 설립했다. 모바일 미디어가 태동하던 시절, 그는 실시간 방송 형태의 모바일 TV 서비스를 국내외에서 선도적으로 상용화했고, 유명 음악 서비스인 ‘도시락(현 지니뮤직)’의 모태가 된 프로젝트를 이끌며 매출 1000억원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이렉트 미디어를 떠난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했다. 그는 “눈밭을 걸으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며 “그러다 문득 내가 태어나서 꼭 해보고 싶었는데 못 했던 게 실리콘밸리에 가보는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 길로 미국으로 향했다. 카네기 멜런 대학교에서 ‘탱저블 인터랙션 디자인(Tangible Interaction Design·피지컬 컴퓨팅)’ 석사 과정을 밟으며 기술의 정수를 익혔다. 보이지 않는 음악을 물리적 실체로 구현하는 법을 배운 그는, 2018년 인천 차이나타운의 한 공연장에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며 다시 한번 음악 혁신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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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퍼 기리보이의 미니홈피. [버시스 제공] |
이 대표가 주창하는 버시스의 핵심 미션은 ‘관계 중심의 인터랙티브 음악 경험’이다. 그는 현재 음악 산업이 겪고 있는 수익 불균형 문제에 주목한다. 스트리밍 수익의 90%가 상위 1% 아티스트에게 쏠리는 기형적인 구조에서, 중견 및 인디 아티스트들이 살아남을 길은 아티스트와 팬이 직접 연결되는 ‘D2F(Direct to Fan)’ 모델이라고 강조한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음악의 복제본(Copy)을 팔았다면, 이제는 아티스트와 팬 사이의 관계(Relationship)를 비즈니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시스의 무기는 자체 개발한 멀티모달 생성형 AI 음악 엔진 ‘버즈원’이다. 가사, 음악, 목소리, 아바타, 3D 오브젝트를 통합 생성하는 이 엔진은, 음악적 지식이 없는 팬들도 간단한 텍스트 입력만으로 고품질의 음악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돕는다.
버시스의 혁신성은 이미 세계 무대가 증명했다. 2022년 가수 수민과 협업한 ‘인터랙티브 싱글’로 첫 CES 혁신상을 받은 이후, 2023년 ‘AI 메타 뮤직 시스템’으로 최고혁신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2024년 ‘비트 기반 뮤직비디오 생성’, 2025년 ‘에스파 월드’까지 4년 연속 CES 혁신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론칭한 ‘에스파 월드’는 방문객 약 105만명, 타 사이트 대비 10배 이상의 체류시간을 기록하며 참여형 음악 문화의 폭발력을 입증했다.
현재 버시스는 유니버설뮤직그룹(UMG), 워너뮤직그룹(WMG), 락네이션 등 글로벌 메이저 레이블들과 긴밀히 협업 중이며, 구글과 엔비디아로부터 클라우드 및 고성능 GPU 등 파격적인 기술 지원을 받는 테크 기업으로 우뚝 섰다.
버시스에는 이 대표만큼이나 독특한 이력을 가진 8명의 정예 멤버가 모여 있다. UC버클리 자퇴하고 음악의 길을 선택한 매니저부터, 실력파 엔지니어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 대표는 이들의 열망을 존중하며 업무 지시 대신 목표만을 공유한다. 그 결과, 버시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수준의 ‘랩 엔진’을 보유하게 됐다.
버시스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텍스트 한 줄로 랩과 영상을 만드는 ‘래피(Rappie)’를 통해 일반 대중의 창작 시대를 열었으며, 최근 래퍼 기리보이와 선보인 ‘AI 미니홈피’를 통해 팬 참여형 모델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음악 시장에 새로운 전환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에 대한 해답을 내는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작곡가의 감수성과 비즈니스 전략가의 혜안을 동시에 가진 이성욱 대표. 그가 그려갈 미래 소통의 화음이 멈춰있던 글로벌 음악 산업의 시곗바늘을 다시 돌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