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유지라는 판타지에 매몰된 탓”
“부족한 프리 단계, 충분한 고민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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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의 박준화 감독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인터뷰가 시작됐지만 감독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복잡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선 그는 깊은 사과와 함께 무거운 첫마디를 꺼냈다. 사과, 변명, 부족함, 착오. 작품을 이끈 감독으로서 종영 인터뷰에서 결코 꺼내고 싶지 않았을 단어들이 인터뷰 내내 수없이 반복됐다.
“작품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드리고 싶었는데, 저의 부족함으로 이런 상황이 생겼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의 연출을 맡은 박준화 감독이 19일 공식 인터뷰 자리에 나섰다. 종반부 불거진 ‘역사 왜곡’ 논란 속에 드라마가 씁쓸하게 종영한 뒤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작품 15화에 등장한 이완(변우석 분)이 제후국 군주가 쓰는 구류면관을 착용하고, 신하들이 그를 향해 역시 제후국 군주에게 사용하는 표현인 ‘천세’를 외친 즉위식 장면이었다. 제작진의 사과와 배우들의 자필 사과문이 잇따라 공개됐지만, 논란은 작품이 끝난 뒤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부터 설정과 고증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도 박 감독은 예정됐던 언론 인터뷰를 그대로 진행했다. 쉽지 않은 결정 뒤에는 제작의 처음과 끝을 책임져야 할 당사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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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
박 감독은 “최종적으로는 나의 판단 착오와 실수가 이런 상황을 만든 계기였다고 생각한다”며 “시청자와 함께 작업한 모든 분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왕실이 존재하는 21세기 입헌군주제를 배경으로 한다. 일제강점기와 같은 ‘아픈 역사’를 겪지 않은 채 조선 왕실이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설정이다. 작품에 ‘천세’와 ‘구류면관’이 등장한 이유 역시 조선 왕실의 관례를 그대로 고증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아픔의 기억 없이 왕조가 유지되는 굳건한 나라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당초의 의도는, 결과적으로 ‘자주적 역사’를 간과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박 감독은 “역사적 아픔을 제외하다 보니 조선 왕조만 남게 됐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조선 왕조가 이어온 행사와 전통,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갔다”며 “실제 우리 역사는 판타지가 아닌데도 설정에 지나치게 매몰됐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이어 “주도적이고 자주적인 역사를 판타지 밖에서 표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며 “모든 사람이 이 드라마를 더 무겁게 고민했어야 했다. 결국 내 무지함 때문”이라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21세기 대군부인’에는 역사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자문으로 참여했다. 그럼에도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이유에 대해 박 감독은 작품의 ‘판타지’ 설정을 너무 가볍게 여긴 탓이라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초반 논란이 된 대군의 섭정은 전체 서사의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과 설명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자문을 맡아주신 분들도 현대에 존재하는 왕실이라는 설정 때문에 고증 기준을 판타지에 조금 더 맞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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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연출을 맡은 박준화 감독 |
그는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도 아쉬운 결과의 원인으로 언급했다. 박 감독은 작품의 기획과 캐스팅이 모두 끝난 뒤, 촬영 두 달 전쯤 ‘21세기 대군부인’에 합류했다.
박 감독은 “이런 드라마일수록 프리 단계가 길어야 하는데, 판타지 장르라는 인식 때문에 준비 기간을 짧게 가져간 경향이 있었다”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자문했던 분들도 충분히 검토할 여유가 부족했고, 그 과정에서 판단 실수가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무리 준비 기간이 짧더라도 자문진을 더 다양하게 구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안한 마음은 작품을 함께한 스태프와 배우들에게도 향했다. 박 감독은 모두가 열심히 준비하고 촬영한 작품임에도 함께한 이들에게 마음 편히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직접 사과문을 올린 배우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사과해야 하는 사람은 배우들이 아니라 나다. 그런 점에서 더욱 미안하다”며 “마지막 방송이 끝난 뒤 한 명 한 명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런 상황 때문에 결과에 대한 보상조차 받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고 미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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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이 된 ‘21세기 대군부인’ 속 즉위식 장면 |
방영 내내 각종 논란이 이어졌지만 ‘21세기 대군부인’ 최종회는 13.8%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신분을 뛰어넘은 성희주(아이유 분)와 이완의 사랑에 공감한 시청자들이 마지막까지 이들을 응원한 덕분이다.
박 감독은 “몇십 년 만에 연락해 온 친구가 ‘21세기 대군부인’이 큰 위로가 됐다고 말해줬다. 또 한 어르신이 서서 작품을 시청하는 영상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며 “이런 분들이 있어 나 역시 작품을 만들며 위로받는 부분이 있다. 사랑해 주신 시청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잘하고 더 깊이 고민했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며 “끝까지 이어져야 할 감동이 내 부족함으로 불편함이 된 것 같아 죄송스럽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