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역습과 구조적 인플레이션’, 세계 경제의 금리 발작 [조원경의 경제·산업 답사기]

영국의 20년물·30년물 국채(gilt) 수익률은 이달 들어 1998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는 영국 국채 매도세가 이어졌기 때문인데, 그 배경에는 영국 국내 정치에 대한 우려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10년물 국채 수익률도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로이터]



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한번 격렬한 ‘발작(Tantrum)’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과거의 인플레이션이 공급망 교란이나 일시적인 수요 폭발에 기인한 ‘단기적 현상’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고물가와 고금리는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했음을 알리는 ‘구조적 경고음’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국채금리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유가는 국제 원자재 시장의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바야흐로 ‘값싼 자본’과 ‘안정된 물가’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고비용 구조가 만연한 ‘새로운 고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하에서는 영·미·일 삼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국채 금리 폭등 현상의 본질을 해부하고, 글 로벌 통계 플랫폼 스태티스타(Statista)의 데이터를 통해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실체를 진단한 뒤, 이것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던지는 함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1. 길드채 발작과 포퓰리즘의 그늘 : 영국의 경고

최근 영국의 채권 시장은 그야말로 공포에 휩싸였다 . 영국의 장기 재정 건전성을 상징하는 30년 만기 국채 (길드채·Gilt) 금리가 심리적 저항선인 6%에 육박하며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며, 전세계 자본시장에 충격파를 던진 것이다. 과거 2022년 리즈 트러스(Liz Truss) 내각의 감세안 파동 당시 촉발되었던 길드채 발작의 악몽이 2026년 현재 가시화된 재정 리스크로 재현되고 있다. 이번 발작의 근저에는 정치적 포퓰리즘과 재정 기강 해이가 자리잡고 있다. 현재 영국은 선거 국면을 지나며 정치권전체가 선심성 공약에 매몰되어 있다. 집권 가능성이 높은 유력 후보들과 정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세우는 공약의 핵심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돈을 계속 찍어내서라도 “복지와 지역 개발 지출을 늘리겠다”는 무책임한 통화·재정 확장론이다. 시장은 정치권의 이러한 거듭된 자금 살포 약속을 ‘미래 부채의 폭발’로 해석했다. 정부가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자, 채권의 공급 과잉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일제히 채권을 매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채권가격의 폭락은 곧 채권 금리(수익률)의 폭등을 의미한다. 선거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던진 포퓰리즘 카드가 부메랑이 되어 국가 신용과 거시경제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2. 미국·일본의 고금리 동조화 : 무너지는 글로벌 자산의 축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경제의 심장부인 미국과 초저금리의 보루였던 일본마저 국채 금리의 상방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글로벌 자산 가격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최근 연 5% 대를 훌쩍 넘으며 2007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치솟았다. 2025년 한때 4.5%대까지 내려앉았던 금리가 불과 수개 월 만에 52주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년물 국채 금리도 52주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연준은 관망 자세를 취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상당수는 다음 금리 조정이 인하가 아닌 인상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데이터 발 표가 연준의 수장 교체 시기와도 맞물려 있었다. 지난 5월 15일(현지시각) 제롬 파월의 마지막 근무일이었다. 그의 후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전 연준 이사 케빈 워시가 맡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금리 인하를 촉구하며 연준과 파월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행정부 차원에서 중 앙은행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왔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압박을 할 것인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고금리 장기화’ 전략을 지속하는 가운데,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멈출 줄 모르고 불어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쏟아지는 재정 지출을 메우기 위해 장기 국채 발행을 지속해서 늘리고 있으며, 이는 채권 시장의 수급 균형을 완전히 깨뜨렸다. 더욱 가공할 만한 변화는 일본에서 일어났다. 수십 년간 ‘디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하며 제로(0) 금리와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해 온 일본마저 변했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JGB) 금리는 최근 연 2.7%를 넘어서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약 2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추세라면 심리적 마지노선인 3%선을 위협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폭등의 원인은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기 대비 4.9% 급등하는 등 일본 내부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겉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은행(BOJ)은 엔화가치의 폭락(엔저)과 수입 물가 상승을 방어하기 위해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고 조기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값싼 자금의 공급처였던 일본마저 고금리 대열에 합류하면서, 글로벌 유동성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3. Statista 통계로 본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구조화

글로벌 통계 분석 기관인 스태티스타(Statista)의 ‘세계 인플레이션 통계 및 사실 (Inflation worldwide – statistics & facts)’ 보고서는 현재의 물가상승이 결코 일시적인 공급충격이 아님을 방증한다. 데이터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전세계 평균 인플레이션율은 전례 없는 변동성을 보이며 고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과거 2000년대와 2010년대 글로벌 저물가를 지탱했던 두 가지 핵심 축인 ‘중국의 저렴한노동력에 기반한 제조업 공급망’과 ‘러시아산 값싼 에너지’가 지정학적 분절화로 인해 완전히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스태티스타가 집계한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인플레이션율은 최근 다시 5.4%대로 반등했으며, 전세계적인 식료품 및 핵심 서비스 물가 역시 하방경직성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스태티스타의 거시경제 분석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인플레이션(Structural Inflation)의 세 가지 요인을 지목한다.

첫째, 공급망의 블록화와 탈중국화이다. 비용 효율성 중심의 글로벌 분업 체계가 안보와 동맹 중심의 블록 경제로 재편되면서 제조 원가 자체가 구조적으로 상승했다.

둘째, 인구 구조의 격변이다. 스태티스타의 세계 인구 전망에 따르면, 한국을 필두로 한 주요 선진국 뿐 아니라 중국마저 ‘노년부양비’가 급증하며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노동력 부족은 임금 상승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서비스 물가를 밀어 올리는 ‘임금-물가 악순환’을 낳고 있다.

셋째, 그린플레이션이다. 친환경·탄소중립으로 전 환하는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비용과 원자재 수요가 폭증하며 대안 에너지가 완전히 정착하기 전까지 물가를 상방 압박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4. 고유가의 고공행진과 지정학적 리스크의 상시화

이러한 구조적 고물가를 고착화하는 가장 직접적인 도화선은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이다. 국제 유가(브렌트유 기준)는 배럴당 1000달러선을 오르내리며 고공비행을 지속하고 있다. 한때 팬데믹 초기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했던 원자재 시장이 이제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과 지정학적 갈등의 볼모가 되었다. 최근의 유가 상승은 단순히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 고조, 특히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 격화로 인해 글로벌 원유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거나 극심한 통행 차질을 빚으면서 물류비와 원유 할증료(Premium)가 폭증했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제조업 제품 생산 원가뿐 아니라 운송, 유통 등 산업 전반의 비용을 전방위적으로 밀어 올린다. 헤드라인 물가가 기저 효과로 낮아지더라도, 유가발(發) 2차 파급 효과로 인해 근원물가가 다시 살아나는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다.

5. 우리 경제에 던지는 웅장한 함의와 생존 방정식

영국의 길드채 발작,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일본의 금리 인상, 그리고 고유가라는 사면초가의 글로벌 환경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시험대를 제안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일시적인 경기 순환의 침체가 아닌, 국가 경제 체질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구조적 위기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구체적인 함의와 대응 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한미 금리 차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과 환율 변동성 확대는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30년물 금리가 5%를 넘고 한국과의 기준금리 차가 역대 최대 수준에서 고착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상시적인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일본마저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과거 엔저에 기대어 연명하던 글로벌 유동성이 위축되면, 신흥국 마켓에 속한 한국 자본시장으로부터의 외국인 자금 이탈 리스크가 커진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더욱 밀어 올려 국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수입형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유발한다.

둘째, 고유가·고금리의 가계 및 기업 부채 압박 지속이다. 스태티스타의 인구 구조 통계에서도 지목되었듯,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다. 성장 잠재력이 저하되는 상황에서 만성적인 고유가는 경상수지 흑자 폭을 깎아 먹고 제조업의 마진을 극도로 위축시킨다. 더욱이 구조적고금리는 가계부채와 한계기업의 이자 부담을 임계점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폭탄이 여전히 잠재적 도화선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장기 금리의 상승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용 경색을 촉발할 수 있다.

셋째, 포퓰리즘 배격과 엄격한 재정 기강 확립이다. 한국 경제가 영국의 길드채 발작에서 얻어야 할 가장 뼈아픈 교훈은 ‘시장 신뢰의 무서움’이다. 한국 역시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급증과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정치권의 선심성 예산 증액 압박에 노출되어 있다. 대외 신인도가 취약한 원화의 한계를 고려할 때, 국가 부채 관리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가거나 “돈을 찍어 해결하겠다”는 식의 포퓰리즘적 접근이 가시화되는 순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가차 없이 한국 시장을 이탈할 것이다. 재정준칙의 법제화를 통해 재정 건전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만이 글로벌 ‘부채의 역습’ 시나리오에서 한국의 국채 시장과 원화 가치를 지키는 유일한 방파제다.

1990년대 이후 인류가 누려왔던 ‘대안정기(The Great Moderation)’는 끝났다. 저물가, 저금리, 원활한 글로벌 분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으며, 그 자리를 고금리, 고물가, 자국 우선주의가 채우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시장이 정치권의 방만한 부채 관리에 던지는 엄중한 경고장이다. 한국 경제는 이제 과거의 문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선심성 재정 지출을 극도로 자제하여 시장에 건전성 시그널을 보내야 하며, 기업은 공급망의 다변화와 고비용 구조에 적응할 수 있는생산성 혁신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구조적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지금, 튼튼한 재정 방파제와 냉철한 현실 인식을 갖추지 못하면 우리가 쌓아 올린 경제적 성취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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