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타이어, AI 시뮬레이터로 개발 시간 절반 ‘뚝’…“R&D 혁신으로 판 뒤집는다” [르포]

넥센타이어, 마곡 중앙연구소 ‘더넥센유니버시티’ 르포
“트랙 대신 실험실서 타이어 감성까지 평가”
개발 기간 최대 50% 단축…OE 수주 경쟁력↑
소음·마모·전비까지 실험실서 검증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넥센타이어 중앙연구소 ‘더넥센유니버시티’에 구축된 다이내믹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모습. 넥센타이어는 해당 장비를 활용해 가상 환경에서 차량 거동과 타이어 성능을 평가하고 있다. [넥센타이어 제공]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넥센타이어가 인공지능(AI)과 가상 주행 시뮬레이션을 앞세워 글로벌 타이어 시장에서 ‘퀀텀점프’를 노린다. 전통적인 장치산업으로 분류돼 온 타이어 산업에서 후발주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연구개발(R&D) 방식 자체를 디지털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지난달 29일 방문한 서울 마곡 중앙연구소 ‘더넥센유니버시티’는 이 같은 변화의 핵심 거점이다. 2019년 문을 연 이곳은 미국·독일·중국 기술연구소를 통합 관리하는 글로벌 R&D 허브다. 연면적 5만7171㎡, 지하 2층~지상 8층 규모의 건물에는 연구원 약 500명과 사무직 인력 약 200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설은 지난해 8월 도입한 고성능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다. 넥센타이어는 영국 앤시블모션과 협력해 국내 타이어 업계에서 처음으로 하이 다이내믹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구축했다. 고성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실내에서 차량 거동과 타이어 반응을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장비다.

누적 400억원 규모의 버추얼 장비 투자는 강호찬 넥센타이어 부회장의 주도로 추진됐다. 넥센타이어는 국내 시장에서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금호타이어와 함께 시장을 과점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매출 기준 10위권대 업체로 분류된다. 해외에서는 미쉐린, 브리지스톤, 굿이어 등 선두권 업체와 중국·인도계 신흥 업체 사이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규모의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기 어려운 만큼 넥센타이어는 개발 효율과 속도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강 부회장은 AI와 가상현실(VR) 등 디지털 기술을 R&D 전반에 적용해 개발 기간을 줄이고 제품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AI 기반 성능 예측과 가상 주행 시뮬레이션을 통해 글로벌 선두권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넥센타이어 중앙연구소 ‘더넥센유니버시티’에 구축된 다이내믹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모습. 넥센타이어는 해당 장비를 활용해 가상 환경에서 차량 거동과 타이어 성능을 평가하고 있다. 정경수 기자


“실험실서 타이어 감성까지 평가”


이날 체험한 시뮬레이터를 살펴보면, 432장의 LED 패널로 구성된 높이 5m의 곡면 스크린 앞에 실제 차량 캐빈이 놓여 있었고, 바닥의 레일과 전기모터가 가속·감속·차선 변경 때의 움직임을 구현한다.

체험 차량은 폭스바겐 골프 8세대와 넥센타이어가 공급하는 OE 타이어 모델이었다. 10㎞ 길이의 가상 노면에서 차선을 바꾸자 차체가 좌우로 밀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전문 드라이버가 아니라 타이어별 차이를 세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웠지만, 실제 도로 위에서 차선을 변경할 때의 울렁임과 조심스러운 조향 감각은 비교적 또렷했다.

시뮬레이터의 목적은 실차 시험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다. 개발 초기에 여러 설계안을 가상으로 걸러내고, 실제 시제품 제작과 주행시험 횟수를 줄이는 데 있다. 기존에는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성능 목표에 맞추기 위해 시제품을 만들고, 트랙에서 평가한 뒤 다시 설계를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넥센타이어 중앙연구소 ‘더넥센유니버시티’에 구축된 다이내믹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모습. 넥센타이어는 해당 장비를 활용해 가상 환경에서 차량 거동과 타이어 성능을 평가하고 있다. [넥센타이어 제공]


곽재련 넥센타이어 차량동역학팀장은 “컴퓨터 해석만으로는 운전자가 느끼는 감성 영역을 알기 어렵다”며 “시뮬레이터는 가상 타이어를 실제 운전자가 타보고 핸들링, 안정감, 코너링 반응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장비”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도입 초기라 구체적인 절감 수치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번의 물리 개발 루프를 줄이면 비용과 기간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 기간 최대 50% 단축…OE 수주 경쟁력도 높인다


넥센타이어는 단기적으로 개발 기간과 비용을 30%, 장기적으로는 최대 50%까지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가상 시험·개발 프로세스를 확대하는 추세인 만큼, 시뮬레이터 역량은 OE 공급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넥센타이어는 현재 전 세계 30여 개 완성차 브랜드, 약 120여개 차종에 신차용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6·코나EV, 기아 EV 시리즈, 포르쉐 카이엔·파나메라·마칸, BMW X1·X3·X4·iX,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등이 주요 공급 차종이다.

전기차 대응도 핵심 과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무겁고 정숙해 타이어의 마모, 하중, 소음, 전비 성능이 더 중요하다. 넥센타이어는 지난해부터 출시되는 신제품에 ‘EV 루트’ 마크를 적용하고, AI와 가상 검증 기술을 활용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전기차까지 모두 대응 가능한 성능을 구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넥센타이어 마곡 중앙연구소 더넥센유니버시티. [넥센타이어 제공]


소음·마모·전비까지 실험실서 검증…EV 타이어 대응 속도


연구소 곳곳에서는 이 같은 방향성이 확인됐다. 실차 반무향실은 외부 소음을 차단한 상태에서 타이어 소음을 측정하는 공간이다. 최고 시속 250㎞ 주행 상황과 영하 5도에서 영상 40도까지의 온도 조건을 구현할 수 있다.

음향 분석실에서는 실제 주행 중 녹음한 타이어 소리를 들으며 고객이 느끼는 ‘좋은 소리’와 ‘불편한 소리’를 분석한다. 소음은 단순히 낮추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차량 성격과 소비자 선호에 따라 듣기 좋은 소리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타이어 소음 관리가 중요한 전기차 시대를 겨냥한 연구실이다. 내연기관차와 달리 엔진음이 거의 사라지면서 주행 중 노면과 타이어가 맞닿을 때 발생하는 소리가 실내로 더 또렷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정숙성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만큼, 타이어 소음은 승차감뿐 아니라 전기차의 상품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넥센타이어 마곡 중앙연구소 ‘더넥센유니버시티’에 마련된 실차 반무향실. [넥센타이어 제공]


“재래식 개발로는 한계”…풀 버추얼 개발에 승부


넥센타이어는 지난해 4월 ‘Vision 2030: Next Level 5.0’을 선포하고 판가, 생산역량 제품 및 유통 경쟁력 강화를 중심으로 글로벌 지속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R&D 디지털 전환은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릴 핵심 축으로 꼽힌다. 마곡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기술 혁신으로 업계 선두권과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겠다는 구상이다.

김종명 넥센타이어 최고기술책임자(CTO·부사장)는 “좋은 타이어도, 나쁜 타이어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어떤 차에 끼웠을 때 궁합이 맞느냐가 중요하다”며 “기존처럼 타이어를 세 번, 네 번 만들어 시험하는 재래식 개발 방식만으로는 경쟁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와 시뮬레이션으로 최적의 스펙 조합을 빠르게 찾고,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통해 차량과 타이어의 궁합까지 확인하는 풀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완성하는 것이 미래 타이어 기술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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