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한국 개봉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고로상’ 마츠시게 유타카가 메가폰 잡아
한국 남풍도·거제도 누비며 한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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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국물요리 ‘잇짱지루’를 찾는 여정에서 발견한 ‘황태해장국’. 19일 개봉하는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빌리언스플러스제공]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먹(는)방(송)’은 요즘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유튜버, 방송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먹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거나, 옆 사람을 찰싹 때리며 ‘맛있다!’고 온몸으로 만족감을 표현한다.
하지만 2012년부터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는 먹방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고로상(마츠시게 유타카)은 오히려 반응을 절제한다. 큰 제스처나 과도한 리액션은 없다. 자세히 봐야 그의 눈에서 음식을 향해 ‘하트’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입꼬리가 오른쪽 왼쪽으로 각각 10도씩 살짝 올라간 것이 보인다. 그때야 ‘아, 이 음식이 무척 맛있나보다’라며 음식의 진가를 알 수가 있다.
19일 극장 개봉하는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감독·주연 마츠시게 유타카)는 ‘이노가시라 고로’가 프랑스 파리행 일본항공(JAL)의 이코노미석 맨 뒷줄 중간열 중간좌석(최악의 자리로 일컬어지는)에 앉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이륙 후 어느덧 기내식 서비스가 시작되자 앞줄에서부터 친절한 승무원은 ‘비프 덮밥’과 ‘닭고기 난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서양인, 일본인 승객 가릴 것 없이 ‘비프’를 주문한다. 맨 뒷줄에 앉아 있던 고로상에게 불안이 엄습한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되었을 때 두 메뉴 중 무엇을 골라야 후회가 없을까 오랜 고뇌를 시작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비프!”를 외쳤을 때 승무원은 갤리에 가서 가져오겠다며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갑자기 난기류가 덮치면서 기내식 서비스는 중단되고 고로상은 혼자만 굶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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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감독·주연 마츠시게 유타카)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다. |
시작부터 경쾌하다. 누구보다 음식에 진심인 고로상이 너무 신중한 죄로 굶는 아이러니라니. 작은 웃음들이 극장 여기저기서 터진다. 화룡점정은 이 모든게 고로상의 꿈이었다는 것. 잠에서 깨니 비행기는 파리에 착륙 준비 중이고, 고로상 손에는 두 번의 기내식을 모두 놓쳤다는 알림 스티커가 붙어있다. 옆 승객은 “당신 정말 깊이 자더군요”라며 잔잔한 위로의 눈길을 보낸다. 고로상은 승무원이 챙겨준 JAL 간식 건낫또 한 봉지를 털어 넣고 비행을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이 건낫또는 고로상의 최애 음식이기도 하고, 실제로 마츠시게 감독의 최애이기도 하다. 13일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에게 영화에 나온 것과 동일한 건낫또 한 봉지씩을 건네기도 했다. 또 고로상이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도 내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발효식품을 즐겨 먹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면 보통 사람은 공항 안 프랜차이즈에서 간단한 요기를 할테지만, 미식가인 고로상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더더욱. 고로상은 파리 시내의 돌바닥을 딱딱한 드레스슈즈를 신고 뛰어다니면서 어디서 첫 식사를 할 지 분석하고 또 분석한다. 이때 한 노인이 김이 모락모락한 ‘양배추 롤’을 반으로 가르고 있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발견한다. 그리곤 ‘르 부크라’라는 프랑스 가정식 식당에 들어선다. 프랑스 요리의 에센스인 ‘어니언 스프’와 비행기에서 못 먹어 한이 맺힌 소고기 요리 ‘비프 부르기뇽’을 시킨다.
드디어 고로상의 첫 먹방. 역시 원조의 품격은 다르다. 마음속 독백뿐, 후르릅 짭짭 소리도 없이 조용한 식사지만 미식을 접한 희열이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 마츠시게 감독은 “실제로 모든 먹는 장면을 배가 고픈 상태에서 찍었다. 그때 무언가를 입에 넣고 순간적으로 나오는 표정에는 어떤 거짓도 묻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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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고로상이 먹고, 13일 시사회에서 나눠준 것과 동일한 건낫또[JAL 제공] |
첫 식사를 파리에서 시작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오늘 이곳에서 고로상은 헤어진 옛 연인(현재는 세상에 없는)의 아버지를 만나서 그림 한 점을 배달해야 한다. 파리에 터를 잡고 산 지 오래된 노인은 남부러운 것 없는 넉넉한 환경에도 오래전 떠나온 고토열도의 시골 마을이 그립다. 고향을 그린 그림에 이어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던 지역 향토 음식인 ‘잇짱지루’를 구해다 달라고 고로에게 두 번째 임무를 제시한다. 고로상도 피로한 중년이지만,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막상 고토 열도의 섬을 현지답사 하면서 ‘잇짱지루’를 수소문하지만, 하나같이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다. 결국 노인이 설명해 준 맛 묘사를 떠올려가며 국물 재료 하나씩을 추리해 나간다. ‘궁극의 국물찾기’에 고로상이 어찌나 진심인지, 패들 보트로 섬과 섬 사이를 건너겠다고 객기를 부리다 결국 조난을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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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진이네 식당’에서 세계 최고 미식가 고로상의 먹방을 직관하는 법무부 입국심사관 역의 배우 유재명 |
고로상이 눈을 뜬 곳은 한국의 남쪽 섬 남풍도. 무인도인 이 섬에 몇 년 전부터 여자들만 들어와 살고 있다. 섬과 바다에서 나는 천연재료로 음식과 조리법을 연구하는 여자들. 비밀조직처럼 섬에 숨어들어 자기들끼리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고로상에게 내어준 음식 ‘닭고기 보쌈’도 모두 이곳에서 직접 채취한 재료들만 쓰였다. 맛있는 한 상을 먹었지만, 밀입국이다. 한국 출입국 관리소에 인계하기 위해 큰 섬 거제도로 옮겨간다. 배를 모는 의문의 미군 ‘대니얼’은 고로상에게 “거제도에 내리면 꼭 황태해장국을 먹어보라”고 조언한다. 이어 “한국 사람들이 먹는 정말 맛있는 국물 요리”라고 설명을 덧붙이자 국물을 찾던 고로상의 뇌리에 ‘황태해장국’이라는 이름이 새겨진다.
거제도에 내린 고로상은 법무부 입국심사관(유재명 분)을 기다리다 인근 ‘진이네 식당’을 발견한다. 가게 외관만으로도 진짜 맛집을 찾아낼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오늘도 성공했다. 대니얼이 그토록 먹어보라 신신당부했던 황태해장국을 여기서 만난다. 마침 음식이 나올 때 도착한 입국심사관은 어쩔 수 없이 고로상이 점심을 먹는 동안 기다려 주기로 하고 옆에 앉는다.
하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는 미식가의 먹방을 직관한 탓에 배고픈 심사관은 심히 부러운 눈길로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별 대사도 없이 두 사람의 표정 연기로 채워진 짧은 황태해장국 먹방이 영화에서 가장 웃긴 장면으로 등극했다.
황태는 일본에서는 즐겨 먹는 생선이 아니다. 마츠시게 감독도 말리기 전 명태로는 많이 먹어봤어도 건조한 황태와 황태 국물은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처음 맛봤다고 한다. 특별히 한국 로케 촬영으로 판을 벌인 영화판 ‘고독한 미식가’가 이토록 황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과연 노인은 죽기 전에 ‘잇짱지루’를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아울러 영화에 등장한 황태해장국도, 어니언수프도 모두 진짜 가게에서 파는 음식들이다. 프랑스의 ‘르 부크라’ 식당에서 주문을 받은 마담도, 거제도 ‘진이네 식당’의 주인장도 실제 그곳 사장님들이라고 한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은 3월, 뜨뜻한 국물 요리 한 그릇 하러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성지순례를 떠나볼 수 있겠다.